
(서울=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 한국을 찾은 외국인에게 가장 높은 문턱은 '결제가 안 되는 나라'라는 첫인상이다.
대중교통을 타기 위해 현금을 인출해야 하고 온라인 쇼핑은 본인 인증 단계에서 멈춰 선다. K-콘텐츠 열풍 속에서도 외래객 소비가 늘지 않는 이유가 관광 콘텐츠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식 인증·결제 구조'라는 진단이 국회에서 쏟아졌다.

10일 오전 '외래객 교통·온라인 쇼핑 결제 편의 개선 토론회' 발제를 맡은 서지용 상명대 교수는 한국의 결제 구조가 "해외 이용자를 완전히 배제하는 시스템"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먼저 "외래객의 1인당 지출액이 2019년 대비 17% 감소했다"며 "소비 의지가 아니라 '결제를 시도조차 할 수 없는 환경'이 근본 원인"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한국의 결제·인증 체계를 △휴대전화 기반 본인 인증 △해외 카드 승인 거절 △모바일 호환성 부족이라는 '3중 장벽'으로 설명했다.
그는 "한국은 결제 단계마다 휴대전화 인증을 요구하는데 대부분의 외국인은 한국 번호가 없다"며 "이 과정에서 사실상 결제가 종료된다"고 했다.
이어 "해외 카드 승인 거절률도 20~30%대에 달한다"며 "(카드 결제 대안으로 꼽히는)NFC 결제 인프라의 경우 싱가포르는 90%에 달하는데 한국은 10%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교통 결제 문제도 지적했다. 서 교수는 "해외 주요 도시는 카드 한 장으로 지하철·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한국은 카드 구매·충전·앱 설치를 모두 거쳐야 한다"며 "관광객의 첫 이동부터 막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서 교수는 해외 사례로 싱가포르·일본·호주를 제시하며 "한국은 글로벌 표준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며 법·제도·기술 전반의 정비를 요구했다.

패트릭 스토리 비자코리아 지사장은 "한국은 결제 시스템 자체는 세계 최고지만, 외국인 관점에선 가장 사용하기 어려운 나라 중 하나"라며 발언을 이어갔다.
스토리 지사장은 4년 전 한국 첫 방문 당시를 떠올리며 "여의도역에서 지하철을 타려 했지만 카드가 안 돼 결국 ATM을 찾아 현금을 뽑아야 했다"며 "한국은 체계적이지만, 외국인은 출근길을 내딛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오픈루프(해외 카드로 바로 교통 탑승)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 세계 870개 도시가 이미 사용 중이며 아시아에서도 싱가포르·홍콩·오사카가 표준화했다.
실제 중국과 유럽 등 해외 주요국은 '컨택리스'라는 표시의 NFC 기능이 있는 카드라면 현지 승차권을 구매하거나 현금을 지불할 필요 없이 카드를 갖다대 교통비 처리가 가능하다. 국내에서 교통카드를 '찍고' 타는 경험이 해외에서도 그대로 연결된다.
반면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은 '원화'로 교통카드를 사거나 앱을 설치해 원화로 충전을 한 이후에야 교통이용이 가능하다.
스토리 지사장은 "오픈루프가 도입되면 여행자의 소비가 평균 15% 증가한다는 '후광 효과'가 있다"며 "관광 편의를 넘어 소비 진작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문제를 "폐쇄형 교통카드 구조가 너무 견고하다"고 진단했다.
스토리 지사장은 "현재 시스템에서는 외국인이 교통 인프라를 이용하려면 새 앱을 설치하고, 교통카드를 사서 충전해야 한다"며 "한국이 아시아 최고 관광지로 가기 위한 마지막 남은 과제가 바로 이 '결제 접근성'"이라고 짚었다.
이어 그는 제주도가 최근 오픈루프를 도입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서울·부산·전주·나주 등 주요 관광도시는 2030년보다 더 빨리 도입할 수 있다"고 했다.

토론회 마지막에서는 기재부·문체부·국토부 등 관계 부처가 나섰다. 모두 "문제는 명확하다"고 인정했지만, 제도·비용·규제라는 현실의 장벽을 동시에 지적했다.
박은수 기획재정부 서비스경제과 사무관은 외래객 불편의 핵심을 "본인 인증과 해외 카드 승인 거절 문제"라며 "부처 간 인식은 이미 공유돼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2026년부터 외국인 인증·결제 인프라 개선 사업을 단계적으로 착수할 계획이다. 그러면서 박 사무관은 "다만, 해외 소비 데이터가 국내 통계 체계에 거의 잡히지 않는 점이 한계"라며 "정책 타깃팅을 위해선 데이터 기반 정비가 먼저 필요하다"고 했다.

김은희 문화체육관광부 관광기반과장은 결제 불편이 관광의 모든 소비 영역을 제약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쇼핑 비중이 낮아진 건 트렌드 변화도 있지만, 결제 불편은 식도락·체험·교통 전반에서 소비를 막는다"며 "문체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용 인증체계 도입(여권 기반 인증 등)을 검토하고 NFC 인프라의 지역 격차 해소를 주요 과제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특히 지방의 결제 인프라 개선이 향후 분산관광 정책과 직결된다"고 덧붙였다.
류나린 국토교통부 생활교통복지과 사무관은 오픈루프 도입에 대해 "필요성 100% 공감"이라고 밝히며 "서울시와 함께 2030년 이전 도입 로드맵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다만, 해외 카드 충전 시 발생하는 수수료(약 2%) 부담 주체가 법적으로 불명확하다는 점을 가장 큰 제약으로 꼽았다. 류 사무관은 "여신전문금융업법상 수수료 전가 금지가 있어 제도 설계에 제약이 있다"고 말했다.

장명현 여신금융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민간사업자의 현실을 보완하며 "단말기 교체 비용보다는 '왜 지금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인센티브 부족이 더 큰 문제"라면서 "사업자들이 움직이려면 수수료 구조 조정과 정책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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