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빅쇼트'는 2008년 금융위기를 예견한 헤지펀드 사이언 캐피털 대표 마이클 버리의 이야기입니다.
마이클 버리는 최근 인공지능(AI) 거품을 경고하며 다시 주목받고 있는데요. 그가 팔란티어에 숏(매도) 포지션을 취했다고 밝힌 뒤 주가는 이달 17% 넘게 하락했습니다.
그가 주택시장 거품을 어떻게 예견했는지 돌아보면 지금 투자자들이 왜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영화는 2000년대 중반 미국 주택시장이 절정의 호황을 누리던 시기, 누구도 붕괴를 예상하지 않던 상황에서 시작됩니다.
은행들은 대출 자격이 떨어지는 서브프라임 차주에게까지 대출을 남발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대출들을 묶어 만든 부채담보부증권(CDO)에 신용평가사는 AAA 등급을 붙였습니다.
CDO는 쉽게 말하면 '온갖 사람들의 대출을 한데 섞어 만든 과일 바구니'입니다. 따로 팔면 안 팔릴 사과(부실 대출)들을 좋은 사과와 섞어 바구니로 만들어 판 것입니다.
만약 사과가 하나 둘 썩기 시작하면 바구니 전체가 쓰레기가 될 테지만 당시 금융업계는 "집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막연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이클 버리는 주택담보대출의 연체율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고, 만기가 2~3년 후 도래하는 변동금리형(ARM) 대출이 대거 금리 인상 구간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즉, 일정 시점이 되면 수백만 명의 차주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쓰러질 것이 자명했습니다.
버리는 이 부실 위험이 곧 CDO를 붕괴시키고, 주택시장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판단하고 시장이 이해하지 못할 선택을 합니다.
부도스와프(CDS) 계약을 은행들과 체결해 '주택시장이 무너지면 돈을 버는' 이른바 '빅쇼트'(거대한 공매도) 포지션을 취한 것입니다.
CDS는 쉽게 말해 보험입니다. 버리는 보험료를 주기적으로 내고, 은행은 보험료처럼 돈을 받습니다.
버리는 CDO를 가진 사람도 아니었는데 CDS 보험을 샀습니다. 그만큼 은행들은 이 보험을 팔아도 절대 손해가 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버리의 펀드 투자자들도 그의 전략을 이해하지 못하고 반발했지만 그는 "데이터가 말한다"며 묵묵히 포지션을 유지합니다.
영화는 집을 여러 채 가진 투기꾼, 직업도 없이 대출을 받은 사람들, 기초자산의 질과 상관없이 AAA 등급을 남발하는 신용평가사들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실제 2007~2008년 금리가 인상되자 ARM 대출이 일제히 재조정됐고, 서브프라임 차주의 연체율은 폭등했습니다.
초기에는 시장이 하락을 인정하지 않아 버리와 투자자들은 오히려 평가손실을 떠안습니다. 은행이 의도적으로 CDS 가격을 왜곡하며 손실을 숨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을 기점으로 시장은 결국 붕괴를 인정합니다. CDO 가치는 사실상 0이 됐고, CDS는 천문학적인 보상금 지급으로 전환되며 '빅쇼트'를 친 투자자들은 엄청난 수익을 올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요. 버리는 엔비디아와 팔란티어 같은 기업이 AI 시대의 혁신기업과 무한 성장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업고 단기간에 주가가 급등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AI 하드웨어(GPU, 서버 등)에 대한 자본지출(CAPEX)이 지나치게 빠르고 과도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러한 장비는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는 '감가성 자산'이지만 기업들은 감가상각 기간을 길게 잡아 당장의 이익을 키우고, 자사주 매입·주식보상 등을 활용해 비용을 희석시키고 있다는 겁니다.
그는 지금은 AI 기업의 실적이 좋아 보이지만 칩·데이터센터가 금방 진부화되거나 수요가 꺾이면 밸류에이션(가치)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버리의 경고가 현실이 되기는 바라지 않지만 "AI 기업의 주가는 멈추지 않는다"는 기대가 얼마나 단단한 기반 위에 있는지는 진지하게 점검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o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