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정부가 원자력추진잠수함(원잠) 확보를 위해 미국과 새로운 협정을 체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12일 알려졌다.
뉴스1의 취재를 종합하면 그간 정부는 원잠 도입과 관련해 기존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또는 별도 협정 체결이라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두고 검토를 진행해 왔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때는 기존의 원자력 협정을 개정하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었지만, 최근엔 새 협정을 추진하는 쪽으로 기조를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원자력법 제123조에 근거해 체결된 한미 원자력 협정은 기본적으로 '핵물질 및 기술의 평화적 이용'에 국한된다.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선 '123 협정'으로 불리기도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국의 원잠 건조를 '승인'한 것과 별개로, 기존의 원자력 협정 개정을 위해선 결국 미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미국 의회에선 여전히 '핵 비확산'이라는 명제가 대세라는 것이 외교가의 평가다. 그 때문에 핵연료의 평화적 이용에 국한된 기존 협정을 군사적 사용이 가능하도록 개정하는 것에 대해 의회의 호응을 얻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이에 정부는 한국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권한을 확장하는 쪽으로 원자력 협정을 개정하는 것과 별개로, 원자력잠수함 도입과 관련한 쟁점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별도의 협정을 체결하는 게 미국 의회를 설득하는 데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2035년까지 유효한 현행 원자력 협정은 미국의 사전 동의가 있어야만 20% 미만의 저농도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으며,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는 금지돼 있다. 한미는 미국의 사전 동의 없이도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등 자율적인 '핵연료 주기 활동'이 가능하도록 협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이는 일본의 권한과 비슷한 것으로, 일본은 이른바 '포괄적 승인'을 통해 특정 원자력 운용 시설과 범위를 미국과 협의한 뒤 이 범위 내에서 미국의 개별 승인 없이 독자적으로 핵연료 주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이같은 협정 개정을 통해 산업 분야에서 원자력 활용 범위가 넓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원잠 도입을 위한 별도 협정으로는 지난 2024년 3월 미국·영국·호주가 체결한 안보 협정인 '오커스 협정' 사례를 참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 원자력 협정에 군사적 색채를 더하지 않으면서, 인도·태평양지역의 안보 협력 강화라는 명분을 통해 미국 조야를 설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미국은 지난 2021년 오커스 체제를 출범하면서 인·태지역의 역내 안정을 이유로 호주에 원자력추진잠수함 기술 이전 및 건조 지원을 약속했다. 이후 원자력잠수함 도입 방안과 핵 비확산 안전장치 마련, 군사기밀 보호 등에 대한 검토 및 법률화 과정을 거쳐 지난해 3월 3국 대표가 별도 협정에 서명했다.
오커스 협정이 '전례'가 됐다는 점에서 정부도 이와 비슷한 방식의 협정을 체결해 원잠 도입에 속도를 낸다는 구상으로 보인다. 다만 오커스 협정이 지난 2021년 오커스 체제 출범 후 미국의 핵 관련 기술 또는 소재·부품·장비 등을 해외로 이전하기 위한 미국의 법 개정과 이에 대한 의회의 동의를 얻는 등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 3년 뒤에나 체결됐다는 점에서, 한국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원잠 도입 사업의 본격적인 개시 시점이 3년여 뒤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정부 소식통은 "아직은 원잠 도입과 관련한 한미 협상 시나리오의 스펙트럼이 너무 다양하다"라며 "핵연료 공급 등 각론으로 들어가면 실제 실무 협의 기간이 얼마나 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다만 일각에선 한국이 30여년간 원잠을 비닉(秘匿)사업으로 추진해 온 결과 상당한 기술력을 축적하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미국에 '어필'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미국 의회의 입장에선 호주의 사례와 달리 미국의 핵심 기술이 한국으로 필요 이상으로 이전될 우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측면에서다.
최근 국방부는 이재명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현재 원잠에 탑재할 원자로, 무장체계 등 원잠 건조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확보 중이고 안전성 검증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원잠용 핵연료를 확보한다면 2020년대 후반 건조 단계에 진입해 2030년 중후반에는 선도함 진수가 가능하다고 전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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