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문대현 기자 = 미국이 제약·바이오 산업을 국가안보 전략자산으로 재정의하고 공급망의 미국 회귀를 본격화하면서, 우리나라 역시 국가안보 관점에서 정책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관세와 투자 압박을 결합한 리쇼어링, 프렌드쇼어링, 연구보안 강화가 동시에 추진되는 만큼 부처별 대응을 넘어서는 일원화된 거버넌스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1일 업계에 따르면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은 최근 '미국 제약·바이오 공급망 정책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를 공개하고, 미국의 공급망 안보 정책이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 구조에 직접적인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미국이 국가안보 관점에서 의약품 공급 안정화 전략을 강화하고 있으며, 고율 관세와 투자 유치 압박을 결합해 생산 기반의 '미국 회귀'를 가속하고 있다고 짚었다. 한미 관세 협상에서는 '제네릭 무관세+의약품 최혜국(MFN)' 구조가 확립되며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방향이 명확해졌다는 점도 거론했다.
보고서는 한국이 원료의약품(API) 등 기초 원자재 공급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고, 고가의 특허·브랜드 의약품은 미국과 유럽 의존도가 매우 높은 '이중 의존' 구조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글로벌 제약·바이오 GVC(Global Value Chain)가 재편될 경우 한국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국내 산업 구조에 대한 평가도 이어졌다. 위탁생산(CMO)·위탁개발생산(CDMO) 중심으로 성장해 대규모 생산·공정 역량을 축적한 것은 성과지만, 기술·브랜드 경쟁력을 기반으로 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도약에는 구조적 한계가 남아 있다고 봤다.
mRNA, 항체치료제, 이중항체접합체(ADC) 등 차세대 기술 분야는 글로벌 빅파마 위탁생산 의존도가 높아 산업 구조의 비대칭성이 드러났고, 첨단 바이오기술 기반 특허나 신약을 자체 개발해 미국 등 메이저 시장에 단독 진입할 역량은 아직 미흡하다는 평가다.

보고서는 미국의 생산시설 유치가 현실화할 경우 국내 산업이 맞을 역풍을 구체적으로 경고했다. 고부가가치 생산공정 설비가 미국으로 대거 이전되면 한국이 축적해 온 고분자 CMO·CDMO 역량을 상실하고, 저분자 화합물만 생산하는 단순 하청국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백악관과 협상을 진행 중인 글로벌 빅파마들이 미국 내 생산을 확대할 경우 국내 기업이 담당하던 위탁생산 물량이 미국으로 이전돼 생태계 전반의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도 언급했다.
이에 INSS는 국가안보적 관점에서 제약·바이오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안보실을 중심으로 '국가바이오안보전략' 같은 국가급 전략서 발간과 대통령 직속 정책 조정기구 설립이 필요하며, 현재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확대·개편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미국의 국가바이오기술조정국(NBCO)과 같은 형태의 조정기구·위원회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INSS는 "현재 보건복지부는 공중보건 접근성,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첨단기술 육성, 산업통상부는 제약·바이오 산업경쟁력 확보, 외교부는 통상 협상에 초점을 맞춰 부처별 칸막이를 넘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미국 국가바이오기술조정국(NBCO)과 같은 대통령 직속 정책 조정기구·위원회 설립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이어 "한반도 주변 특수한 안보 환경 등을 고려해 우리나라 실정에 부합하는 바이오안보 거버넌스를 설계하고, 국가안보적 관점에서 정책들의 실무 집행을 주도할 수 있는 국가급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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