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김학진 기자 = 20년 넘게 폐암 연구와 진료를 이어 온 세계적인 폐암 치료 권위자로 불리는 미국 콜로라도대 암센터의 로스 카미지(58) 박사가 자신이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수천 명의 환자를 만나 왔던 전문의가 어느 날 스스로 환자의 위치에 서게 됐다는 점에서 국내외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카미지 박사는 2022년 여름 숨을 내쉴 때 들리는 쌕쌕거림과 어깨 통증을 느껴 흉부 엑스레이를 촬영했고, 영상을 본 직후 스스로 "폐암이 맞다"고 판단했다.
검사 결과는 4기 '비소세포 폐암'이었다. 그는 진단 다음 날부터 치료 계획을 조정하고 표적 치료제를 시작했지만, 가족 외에는 알리지 않은 채 연구와 진료를 계속했다.
최근 항암치료 부작용을 다룬 논문을 발표하면서 자신의 사례 일부가 연구와 연결된다는 점을 이유로 투병 사실 공개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표적 치료제, 방사선 치료, 전신 항암치료를 병행하면서도 치료 반응을 직접 확인하고 영상 판독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환자의 위치에서 약제 반응을 경험하는 것이 연구적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폐암이 '조용한 암'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대부분의 환자가 초기 증상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는 점 때문이다. 기침, 가슴 통증, 체중 감소 등이 나타날 수 있지만, 종양이 상당히 커질 때까지도 무증상인 경우가 많다.
폐 조직에는 통증을 느끼는 신경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환자가 병을 알게 된 경우 카미지 박사의 경우처럼 이미 진행된 상태(3기·4기)인 경우가 많아 생존율이 낮아진다.
서울대 의대·국립암센터에 따르면 국내 비소세포 폐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1기에서 60~90%까지 보고되지만, 4기에서는 10% 미만으로 떨어진다. 국내에서도 매년 1만8000명 이상이 폐암으로 사망하며, 전체 암 사망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과거 폐암은 주로 흡연자 중심의 질환으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비흡연자·여성·2030세대에서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동아시아 비흡연 여성에서 흔한 EGFR 변이는 서양보다 3~4배 높게 나타난다.
서울대·삼성서울병원 연구에 따르면 한국 비흡연 여성 폐암의 절반 이상에서 EGFR 변이가 발견되며, 이는 환경적 요인·호르몬 변화·실내 공기질 등과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흡연 외에도 대기오염, 라돈, 주방 매연, 중금속·석면 등 환경 노출이 주요 위험 인자로 꼽힌다. 미국 존스홉킨스의대는 COPD·폐섬유증(폐 조직이 굳어지는 만성 질환)과 같은 환자에서 폐암 위험이 4~8배 높다고 발표했다.
1~2기 폐암은 수술로 치료할 수 있으며, 3기는 항암·방사선 동시요법 후 면역항암제 유지 치료가 표준이다. 4기는 전신 항암치료와 표적 치료가 중심이 된다. 또한 특정 유전자 변이가 있는 환자는 표적약제 효과가 높아 생존 기간이 과거보다 2~3배 연장되는 경우도 있다. 서울대병원은 "면역항암제와 표적약제 개선으로 예후가 과거보다 의미 있게 좋아졌다"고 설명한다.
최근에는 영상 검사에 더해 혈액 기반의 폐암 위험도 검사가 주목받고 있다. 혈액 속 단백질 7종을 분석해 비소세포 폐암 위험도를 수치화하는 방식으로, 방사선 노출이 없고 채혈만으로 위험군 선별이 가능하다. 기존 영상 검사로 조기 발견이 어려운 환자에서 새로운 선택지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기 검진이 생존율을 가장 크게 바꾸는 요소라고 강조한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저선량 CT는 조기 발견율을 기존보다 3배 이상 높인다. 특히 흡연력, 가족력, 장기적 환경 노출이 있는 경우 검진 주기를 더욱 짧게 가져가는 것이 권고된다.
치료 과정에서는 일상 관리도 중요하다. 미국종양학회와 서울대병원은 규칙적 운동, 정상 체중 유지, 금연, 실내 라돈 저감, 미세먼지 노출 최소화가 도움이 된다고 안내한다. 항암 치료 중에는 피로·구내염·감염 위험이 흔해 무리한 활동보다 회복 중심의 일상 관리가 필요하다.
카미지 박사는 자신의 병기와 세부 영상 소견을 모두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암 진단이 곧 삶의 종료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며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여전히 연구실에서 후학을 지도하고 환자 진료에도 부분적으로 참여하면서 "환자의 시간 속에서 살고 있는 지금 또 다른 입장에서 폐암에 대해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khj8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