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보니 죽어있었다"…'바둑살인' 간접증거뿐인데 왜 범인 [사건의 재구성]

피고인 "술 취해 기억 안난다"며 무죄 주장
1·2심 "간접증거 종합 합리적 의심 여지 없어"…징역 15년 선고

제주지방법원 제201호 법정. ⓒ News1 오미란 기자
제주지방법원 제201호 법정. ⓒ News1 오미란 기자

(제주=뉴스1) 강승남 기자 = 제주 서귀포시의 한 건물에 각각 세 들어 홀로 지내던 두 사람이 처음으로 술을 마시고 바둑을 뒀는데, 다음 날 한 사람이 숨진 채 발견됐다.

A 씨(69)와 B 씨(50대)는 2023년 7월 8일 사건 당일 이전까지만 해도 오고가며 얼굴 정도만 알고 있던 사이였다.

첫인사는 이랬다. 2023년 6월 말쯤 마당에서 기계를 쓰면서 작업을 했던 A 씨가 사건 당일 B 씨에게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며 막걸리를 나눠줬다. A 씨는 이미 막걸리 1병을 혼자 마신 상태였다.

B 씨는 A 씨에게 "함께 술을 마시자"며 말을 건넸다. 둘은 집에서 멀지 않은 식당에서 소주 3병을 나눠 마셨다.

둘의 이날 술자리는 A 씨의 집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날 오후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둘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A 씨의 집으로 함께 들어갔다.

A 씨와 B 씨는 바둑을 두면서 도수가 40도인 고량주 1병 더 마셨다.

이렇게 긴 시간 이어진 두 사람의 술자리는 '비극'이 됐다.

다음날 새벽 B 씨는 A 씨의 주거지 거실에서 가슴과 목, 배 등을 9차례나 흉기로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피를 흘리고 쓰러져 B 씨를 발견한 A 씨는 건물 2층에 있는 주인집에 올라가 직접 신고를 부탁했다.

경찰과 검찰은 B 씨와 함께 술을 마시고 바둑을 둔 A 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법정에 선 A 씨는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사람(B 씨)이 죽어 있었다"며 "너무 무서워서 휴대폰을 찾다가 2층에 있는 주인집에 올라가 신고를 부탁했다"고 무죄를 주장했다.

또 사건 당일 첫 교류였던 B 씨를 살해할 동기가 없고, 제3자의 침입 및 범행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했다.

하지만 1심과 2심 재판부는 A 씨의 살인죄를 인정하고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가 A 씨를 살인혐의를 유죄로 본 이유는 무엇일까.

사건은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를 토대로 심리가 이뤄졌다.

재판부는 사건 당일 A 씨가 "너 죽을래" "내가 너 못 죽일 것 같냐"며 일방적으로 수차례 협박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증언을 토대로 A 씨가 B 씨에게 극도의 분노와 적대감을 드러냈던 것으로 판단했다.

또 A 씨가 B 씨에 대해 별다른 원한이 없었다고 해도 술에 취한 상태에서 바둑을 두던 중 순간 격분해 살해할 수 있다고 봤다. A 씨가 과거(1973년) 공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가 '하지 말라'는 요구에도 술에 취해 계속 장난을 걸자 격분해 흉기 등으로 상해를 가해 숨지게 한 전력(상해치사)이 있기 때문이다.

범행도구 손잡이 부분에 A 씨와 B 씨의 DNA외에는 제3의 인물의 DNA는 검출되지 않은 점, 체포 당시 A 씨가 입고 있던 러닝셔츠와 바지에서 B 씨의 혈흔이 발견된 점도 재판부가 유죄로 판단하는 근거가 됐다.

또 재판부는 제3자 침입 및 범행 가능성에 대해선 외부인의 침입 흔적이 전혀 없었고, CCTV에서도 외부인의 드나듦이 나타나지 않았다며 일축했다.

재판부는 "살인죄 등 법정형이 무거운 범죄도 직접증거 없이 간접증거만으로도 유죄로 판단할 수 있다"며 "이 사건 역시 확인된 사실관계와 증거들을 종합하면 A 씨가 B 씨를 살해한 사실을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 없이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ks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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