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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버리려 중국서 제주 온 아버지…그 아이는 지금[사건의 재구성]

아들과 공원 노숙하다 짐 가방·영어편지 남기고 사라져
고의성 부인하다 혐의 인정해 징역 1년→집유 2년 석방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2024-02-11 09:14 송고
A씨가 지난해 8월25일 서귀포시의 한 공원에서 자신과 함께 노숙하고 있는 아들 옆에 두고 간 편지. 말미에 '실패한 아버지가'라는 말이 영어로 쓰여 있다.(제주경찰청 제공)
A씨가 지난해 8월25일 서귀포시의 한 공원에서 자신과 함께 노숙하고 있는 아들 옆에 두고 간 편지. 말미에 '실패한 아버지가'라는 말이 영어로 쓰여 있다.(제주경찰청 제공)

여름 해가 떠오르던 지난해 8월25일 오전 7시50분쯤 서귀포시의 한 공원 공중화장실 앞.

한 아이가 막 잠에서 깬 듯 담요를 추켜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갑자기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마구 서성이기 시작했다.
남자화장실 안을 뒤져봐도, 공원을 한 바퀴 빙 돌아봐도, 공원 앞 거리까지 내다봐도 무언가 보이지 않자 문득 겁이 났는지 아이는 이내 엉엉 울음을 터뜨리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출근길에 우연히 이 아이를 발견한 서귀포시 공무원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곧장 경찰에 신고했고, 다행히 아이는 40분 뒤인 오전 8시30분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의 품에 안겨 무사히 구조될 수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당시 아이가 애타게 찾고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아버지 A씨(38)였다.
지난해 8월25일 오전 서귀포시의 한 공원 공중화장실 앞을 홀로 서성이는 A씨의 9살 난 아들.(제주경찰청 제공)

중국 산둥성에 사는 A씨는 9살 난 아들을 데리고 11일 전인 같은 달 14일 제주국제공항을 통해 우리나라 땅을 밟았다. 오로지 아들을 버리기 위해서였다.

A씨는 허리 디스크 등 건강 악화로 일이 끊긴 뒤 중국 아동보호시설에 아들을 맡기려고 했는데 부모가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자 이 같은 '원정 유기'를 계획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A씨 부자는 입국 후 일주일은 숙박시설에서 지냈지만 그 이후부터는 돈이 없어 노숙을 했다.

이 같은 상황 속 A씨가 아들을 유기한 것은 자신과 함께 노숙하던 아들이 잠에서 깨기 2시간 전인 오전 6시13분쯤. A씨는 B군 옆에 짐 가방과 영어로 쓴 편지만 남긴 채 홀연히 사라졌다.

편지에는 '생활고로 인해 아이를 더이상 키울 형편이 안 된다', '아이를 낳은 것은 나의 잘못이다', '아이가 한국의 기관이나 가정에 입양돼 좋은 교육을 받고 자라기를 바란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말미에는 '실패한 아버지가'라는 말과 함께 아이의 생일이 적혀 있었다.

제주지방법원 법정. © News1 오미란 기자
제주지방법원 법정. © News1 오미란 기자

이튿날 서귀포시에서 경찰에 붙잡힌 A씨는 결국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유기·방임)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1심에서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인정하면서도 "한국 아동복지시설도 아들을 맡아주지 않으면 아들과 함께 중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다"며 고의성은 부인했다.

그러나 제주지방법원 형사3단독(배구민 부장판사)은 지난해 11월15일 A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검찰이 구형했던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보다 더 높은 형이었다.

이후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한 A씨는 1심과 달리 2심에서는 혐의를 모두 인정하며 거듭 선처를 호소했다. 이에 제주지방법원 제1형사부(재판장 오창훈 부장판사)는 지난 1월18일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뒤늦게나마 혐의를 인정하며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 점 등을 고려했다"며 "아이가 경찰 조사에서 힘들고 배고파도 아빠와 함께 지내고 싶다고 한 말을 명심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렇게 석방된 A씨는 5개월 만에 중국으로 돌아가 아이와 만나게 됐다. 아이는 수사가 진행될 동안 아동보호시설에서 머물다 일찌감치 지난해 9월 중국에 있는 친척에게 인계됐다.


mro122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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