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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스틸러] '극한직업'·'1987'·'미생'의 교집합, 36년차 배우 김종수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2020-01-17 07:00 송고 | 2020-01-17 11:11 최종수정
배우 김종수 / 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배우 김종수 / 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바야흐로 '신스틸러'(Scene stealer)를 넘은 '심스틸러'(心 stealer) 시대다. '심스틸러'는 단순히 특정 장면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선보이는 것을 뛰어 넘어, 혼신을 다한 스크리 속 연기로써 관객들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때론 그 파급력이 주연에 버금갈, 아니 넘어설 때도 있다. 
'심스틸러'의 기본은 탄탄한 연기력이다. 여기에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났을 때 진정한 '심스틸러'가 탄생한다. 

관객들의 마음을 빼앗는 '심스틸러'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요즘 영화계이기에, 뉴스1은 다양한 성향의 '심스틸러'를 집중조명하고자 [心스틸러] 시리즈를 준비했다. 허심탄회한 인터뷰를 통해 '심스틸러'의 스크린 안팎 희로애락을 고스란이 전하며, 이들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한다. 

그 네 번째 주인공은 김종수(56)다. 

배우 김종수는 tvN '미생'의 김부련 부장부터 '극한직업' 치킨집 사장, 최근에는 영화 '시동'의 공사장과 '나를 찾아줘'의 최반장까지 다채로운 역할을 소화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빼앗은 심(心)스틸러다. 오랫동안 얼굴이 눈에 익었기 때문일까. 2007년 개봉한 '밀양'이 영화 데뷔작이라는 점이 의외다.

1985년 울산에서 연극 '에쿠우스'를 통해 배우로 데뷔한 이래 평생을 배우로 살아왔다. 각종 연극제에서 수상을 하기도 하고, 연극 연출가를 하기도 했으며 울산배우협회의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그러다 찾아온 색다른 기회가 '밀양'의 조연 오디션이었고, 부동산 사장 역으로 데뷔한 후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조연으로 활약하며 얼굴을 알렸다.
그간 출연한 영화만 봐도 굵직한 작품이 많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스물' '소수의견' '검사외전' '터널' '아수라' '보안관' '1987' '암수살인' '극한직업' '증인' '나를 찾아줘' '시동'까지. 출연 드라마도 영화에 뒤지지 않는다. '미생' '징비록' '프로듀사' '뷰티풀 마인드' '아르곤' '해치' '배가본드' '모두의 거짓말' 등이다. 

"어떻게 35년간 같은 길을 걸었느냐"는 질문에 김종수는 "경력 프레임을 씌우는 건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고 답했다. 이어 대수롭지 않은 듯 "재밌어서 연기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생존을 위해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했고, 때로는 스스로 인간 구실을 못하고 사는 것 같아 울기도 했지만 그 시간이 지금의 자신을 포장하는 눈물겨운 경험담이 되기를 원치 않았다. 그저 후배들에게 술과 밥을 대접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연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오늘이 행복할 뿐이다. 
배우 김종수 / 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배우 김종수 / 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연극, 모든 게 끝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고 원상태…매력적이었다."

-독자들에게 자기 소개를 한다면 어떻게 하고 싶나.  

▶어쩌다 어린 시절에 연극을 접하고 흥미로워서 직업을 택했다. 그때는 용기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연극에 문을 두드려서 엉터리 같은 시간을 보냈고, 지금은 매체(영화나 드라마)에 들어와서 조금 뭐라고 할까? 민폐 끼치지 않고 열심히 하려는 배우다.

-엉터리 시간이란 게 무슨 의미인가.

▶잘해서 했던 게 아니라 하고 싶어서 했던 거니까. 그게 정확하게 뭔지 모르고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남다른 느낌의 시간을 경험한다. 무대 위에서 앙상블이라든지 뭔가를 맞추는데 연극은 흔적이 남지 않는다. 우리 손으로 세트를 만들고 무대 미술과 조명과 의상을 구하고, 그런 과정을 거치고 끝이 나면 다시 원상태로 가는 그런 게 멋있었다. 분장을 하고 지울 때 느낌이 뭔가 남기기 위해 했던 작업이 아니니까. 그 과정이 재밌고 흥미로워서 잘해보려고 했다. 잘했는지 모르겠다. 그게 어떤 기준이 있는 건 아니다. 이번 빼고는 같은 공연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력적이지 않나 싶다. 엉터리 같다고 한 건 뭘 잘 알아서 그런 게 아니라 하고 싶어서 했던 시간이기 때문이다.

-무대에서 했던 첫 대사가 뭐였는지 기억이 나나.

▶연극 데뷔작이 '에쿠우스'였다. '에쿠우스'는 긴 대사가 있다. 연극할 때 선배들이 워낙 대본 전체를 외우라고 거짓말을 해서, 남의 대사까지 다 외웠었다. 어쨌든 틀리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기도 했다. 지방에서 예식장 빌려서 하는 공연이다. 공연장이 갖춰져야 연극을 하는 건 아니고 배우와 관객이 있으면 공연장이 된다. 대사를 안 틀려야겠다 했었고, 대사를 안 틀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사를 입에 달고 살았겠다. 

▶외운다기 보다는 익힌다. 아무 의미없이 외우는 게 아니라 상황 전체를 넣어야 하는 거라서 틀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컸다. 연습 과정이 사실은 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때 연출하시던 형님이 어떤 신을 다시 해보라고 해서 똑같이 내가 괜찮게 했다고 느낀 장면을 했는데 다르더라. 어떠냐고 묻길래 앞에 한 연기는 자연스러운데 뒤에 한 연기는 어색하다고 했더니 그 때 형에게는 귀에 박힌 얘기고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나에게 '네가 꾸미기 시작해서 그렇다. 그래서 어색해진 것'이라고 하더라. 글로 배울 수 없는 어떤 감성이 있고, 거기서 매력을 느꼈다.

-첫 상대역은 누구였나.

▶이름은 잊었다. 내가 알런 스트랑 역을 맡았고, 그 때 질 앤더슨 역할을 했던 친구가 내 첫 상대역이다. 나와 같은 울산대학교 대학생이었다. 잘 지내고 있겠지. 나와 동갑이다. 연기는 안 하고 있을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와 배우가 있다면.

▶매번 바뀐다. 워낙 좋은 작품이 많고, 매력적인 배우가 너무 많이 나온다. 각자 색깔이 다르니까. 요즘에는 '천문:하늘에 묻는다' 한석규씨도 너무 좋았고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도 좋았다. 너무 강렬하고 배우로서 어떻게 보면 느끼는 바를 많이 준다. 내가 아직 갈길이 멀구나 느끼게 해준 그런 사람들이다.

-내가 한번쯤 '스틸' 해보고 싶다 싶은 배역도 있었나.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저 매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특정 배역을 마음에)담아두고 있지는 않다. 배우는 캐릭터를 잘 입아야 하기도 하지만, 잘 벗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잘 잊어버린다. 막 작품에 임할 때는 환경에 심리 상태를 맡기는 편이지만 끝나고 나면 연을 끊듯이 놓아 버린다. 싹 원상복구를 시키고 나면 쾌감이 있다. 원래 없던 그 자리로 다시 가는 것 같다.
'1987' 스틸 컷 © 뉴스1
'1987' 스틸 컷 © 뉴스1
◇ "'1987' 박종철 아버지 역할, 누 끼치지 않으려 고민 많았다."

-출연했던 작품의 대사 중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면

▶실화 기반 영화인 '1987'에서 박종철 아버님 역을 맡았다. 그때 한 그 대사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이게 배우로서 '캐릭터가 멋있는데' '연기할 수 있겠는데' 하는 차원을 넘어서 부담스럽기도 했어서 기억에 난다. 연기를 어떻게 하는 것보다 어떻게 해야 누를 끼치지 않고 감정을 표현할까 고민을 많이 했던 대사이고 장면이었다.

-'1987'에서 아들의 유골을 꽁꽁 언 강에서 뿌리는 장면은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을 울게 했다.

▶첫 테이크에서 '오케이'가 나기는 했다. 하지만 영화의 앵글이 바뀌고, 사이즈가 바뀌고 하기 때문에 여섯번을 찍었다. 얼음이 깨지는 건 2~3번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첫 테이크를 썼고, 감독님이 대사가 조금 더 들리기를 원하셔서 대사 때문에 몇 번 더 찍었는데 대사에 신경쓰다 보니까, 첫번째 감정은 잘 안 나오더라.

-연기하기 전에 유족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한 적은 있나.

▶없었다. 듣는다고 참고할 수는 없으니까. 나도 그 시대에 대한 부채의식을 갖고 살아온 사람이다. 끝나고 영화 개봉할 때 가서 아버님을 조용히 뵙고 왔다.

-무슨 얘기를 했었나.

▶박종철 열사 역을 한 여진구씨의 얼굴이 아드님과 닮았다고 해서 아버님께 사진을 보여드리고 했었다. 잠깐 뵀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있다면 언제로 생각하나.

▶연극 신입 단원 모집 포스터 전화번호를 적던 그 때, 그 전화를 했을 때 그리고 영화 '밀양'의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 또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때인, 원작도 너무 좋아하고 만들어 놓은 작품 역시 같이 참여했다는 걸 놓고 봐도 좋은 '미생'을 했을 때다.
'미생' 스틸 컷 © 뉴스1
'미생' 스틸 컷 © 뉴스1
-그러고 보니 '미생'의 김부장 역으로 안방 극장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았었다.

▶민폐를 안 끼치려고 했다. 감독님이 적재적소 쓸만한 배우들을 기용하셨다. 보통은 디테일하게 잘 보지 못하는데, 테이블 밑까지 연출해주셨다. 조직생활 한 번도 거의 안 해본 사람들이 늘 조직 내에 있었던 사람처럼 보이더라. 김원석 감독이 대단했다.

-'미생'으로 간접 조직생활을 한 것인가. 어땠나.

▶'군대 생활보다 더 살벌하구나. 와' 하면서 연기했다. 거기 나오는 후배들, 이경영 선배님까지 모두 다 지금도 가까이 지낸다. 자주는 못 보지만, 편하게 보고 가끔 연락해서 소주 한잔씩 한다.

-특히 자주 만나는 배우가 있나.

▶손종학 배우랑, 이성민 배우랑 많이 친하다. 이성민과는 '보안관'을 하고 편해졌다. 다들 바쁘다. 그래도 격 없이 연락하는 분들은 자원팀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영업부는 다들 바쁘다. 강소라나 임시완이나 바쁘다. 손종학 정희태 등 자원팀에 영입을 당해서 가끔 모여서 술도 한 잔 한다.  

-그러고 보니 '보안관'에서도 배우들의 사이가 무척 친했던 기억이 난다.  

▶다들 각자 연락은 한다. 아직 단톡방이 돌아간다. 김성균 조우진 배정남 임현성까지. 그팀은 단톡방에서 '미스터주' 개봉하니까 (배)정남이가 시사회 오라고 한다. 가야겠지.
배우 김종수 / 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배우 김종수 / 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 "지방서 올라와 오디션 보던 게 엊그제 같은데…'시동' 제안에 감사."

-최근에는 '시동'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돌봐주는 공사장 역할을 했다.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최정열 감독님의 전작 '글로리데이'를 했었다. 그래서 책을 보내줬고, 연락이 왔다. 선배님이 이 역할을 해주시면 고맙겠다고 하더라. 감사했다. 프로필 들고 오디션 보러 지방에서 서울에 와 다섯 시간, 여섯 시간 보고 내려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드라마 한 신 찍으려고 기차타고 와서 찜질방에서 자고 딱 한 신 찍고 내려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선배님 읽어보시라'고 하면서 대본을 주시니까 내심 내가 열심히 살았나 싶더라. 그런 책일수록 꼼꼼하게 읽어본다.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분은 개인적인 성격을 아니까 이런 역할, 이런 모습을 해주면 좋겠다고 요구 사항을 편하게 말씀해주셔서 좋다.

-이번 역할에는 어떤 매력을 느꼈나.

▶너무 아프고, 그런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 나이든 사람 얘기 같지만, 각자만의 아픔이 있는 거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지기도 하고, 슬기롭게 극복하기도 하고. 그 안에서 공사장의 매력은 누군가를 바꾸려고 강요하지 않는 어른이라는 점이다. 어른들은 가르치려고 하는 걸 애정이라는 말로 빙자한다. 자기는 '소스'를 주는 거라고 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부담이나 강요가 될 수 있는 시대다. 거기는 빨간 머리, 노란 머리 친구들이 있다. 자칫하면 방관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공사장은 그런 사람은 아니고, 내가 갖지 못한 훌륭한 부분이 있는 캐릭터여서 마음이 갔다.

-연령차가 있는 젊은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사실 어느 현장이든 나이가 든 남자 배우는 불편하다. 말을 해도 불편하고, 가만히 앉아도 불편할 거다. 각자 역할이 있는거지 먼저 했다고 잘하는 것도, 많이 했다고 아는 것도 아니다. 자기 역량을 모임의 목적에 맞게 마음껏 발휘하게 하도록 도우려고 한다. 어떻게 하면 편하게 할까 고민했다. 편해도 불편할 수 있다. 박정민이나 그 외 배우들과 우리는 주로 그렇게 만났다. 주연이 갖는 부담감도 있고, 섬세한 감정의 이음새를 고민하고 있을테니 내가 '이렇게 해 저렇게 해' 하는 것보다 '맥주 한 잔 할까'하면서 서로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보려고 했다. 나를 내려놓았다.
'시동' 스틸 컷 © 뉴스1<br><br>
'시동' 스틸 컷 © 뉴스1

-어쩌면 공사장 캐릭터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동료들을) 오래 보고 싶어서 그런 거다. 인생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내가 중요한 타이밍에 그 친구는 바쁠 수도 있다. 언제든 편하게 와서 '선배님 와인 한 잔 먹으러 가도 돼요?' 하면 '어 오늘은 좀' 이렇게 말해도 부담스럽지 않은 편안함이 좋다. 잘 보이려고 하기 보다는 그런 편안한 관계가 됐으면 좋겠다. 내 바람이다. 동네 지나가다가 있으면 보고, '그냥 전화 드려봤다' 하고, '놀러 안 오냐' 하고 말하는 사이면 좋겠다. '시동'에 함께 출연한 김경덕, 최성은은 며칠 내로 우리 동네에 놀러오기로 했다. 
'나를 찾아줘' 스틸 컷 © 뉴스1<br><br>
'나를 찾아줘' 스틸 컷 © 뉴스1

-'시동' 말고 '나를 찾아줘'에서도 최반장 역으로 반전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때 연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반전이라기 보다는…사실 최반장 캐릭터로서는 마지노선이였다. 여기서 몰리면 그나마 사람 구실을 할 상황이 안 되니까, 놓고 싶지 않은 인생의 마지막 끈을 위해서 이성적으로 움직인 것보다 감성적으로 액션이 들어가지 않았나 싶다. 주변이 보이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다양한 역할을 했지만, 드라마에서는 주로 상류층을 연기했다. 그런 차이점도 흥미롭다.

▶주로 배우고 돈 많은 나쁜 놈 역할이다.

-그런 역할이 많이 들어오는 이유가 있을까.

▶그냥 내 나이대가 그렇다.(웃음)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정치나 암투의 내용에서는 내 나이 또래에서는 기득권자 역할이 많다. 그런데 아름다운 기득권자가 잘 없는 것 같다. 사실 1인자를 해보지는 못했다. 늘 감옥에 가고, 사극에서는 옥에 가고.(웃음) 늘 비운의 악당, 철두철미한 악당, 2인자를 많이 했다.

-'극한직업' 치킨집 사장 역할도 분량은 짧지만 재밌는 캐릭터였다. 출연 계기는. 

▶이병헌 감독의 '스물'에 출연했었다. '긍정이 체질'이라는 웹드라마를 했었다. 뭘 하신다고 하더라. '10회차 이하면 안 한다'고 했는데 3회차 찍는 역할을 줬다. 캐릭터가 너무 재밌었다. 하기로 하고, 극중 형사들의 장사가 잘 될 때 밖에서 닭고기 뜯으면서 슬픈 눈으로 보는 커트를 넣어달라고 농담으로 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서민, 자영업자 캐릭터가 너무 좋다. 배움이 얕아야 한다. 아는 척 하는 역할은 어색하다.

-그래도 지식인 연기를 잘 해왔는데.

▶배우가 그거라도 잘해야지…
배우 김종수 / 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배우 김종수 / 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 "35년 연기자의 투지? 경력 프레임 매력없다…오랫동안 현역이기를."

-'밀양'에 출연했을 때 연극배우에서 영화로 진로를 돌린 셈이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어서 도전한 것인가. 그때 이미 연극배우로는 자리를 잡았을 때 아닌가.

▶'밀양'은 지방에서 배우를 찾더라. 울산배우협회가 생긴지 얼마 안 됐을 때인데 오디션 볼 사람을 모집했다. 지원을 해서 후배의 무용학원에서 연출팀 두 명이 보는 앞에서 1차 오디션을 했다. 거기서 연출팀이 추려서 2차 오디션을 부산에서 이창동 감독님 입회 하에 했다. 설렜다. 이창동 감독을 직접 뵙고 하니까. 운 좋게도 단역이라도 하면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10번째 쯤에 이름이 올라가더라. 너무 신났다. 그때 같이 했던 배우들이 이윤희(장로 역) 오만석(목사 역), 나이든 오만석이다. '밥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손예진 아빠로 나온 그 친구가 오만석이다. 그리고 김영삼 후배가 있었다. 그때 이윤희 선배님이 울산에서 막창집을 했다. 2~3일에 한 번 모여서 다같이 '밀양' 얘기로 이야기 꽃을 피웠었지. 재밌었다.(참고로 김종수 이윤희 오만석 김영삼 등은 '밀양' 출연 전에도 울산 연극계에서 오랫동안 활약해온 베테랑 연극 배우들이다.)

'밀양'을 계기로 영화에 출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가.  

▶'어? 우리가 쓰임새가 있네?' 하는 정도의 생각이었다. 실제 우리 판단으로는 그 영화에서 잘했다 치더라도 사투리, 이런 역할만 잘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 연기를 잘하니까 다른 걸 시켜보자 할 수는 없으니 (영화 배우로 자리를 잡는데는)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감독님이 한예종 교수님이니까 영화를 본 학생들이나 선배님들이 강의를 나가는 학교 학생들이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단편 영화나 학생 영화, 독립영화에 가서 경험을 쌓을 겸 작업하다가 오디션을 보기도 했다. 어차피 시간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길게는 10년까지 걸릴 거라 생각했다.

-어떤 목표를 갖고 영화 오디션에 임하기 시작했던 것인가.

▶내가 50대면 50대 배우를 찾을 때 내 이름이 리스트업은 돼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런 배우는 돼 있어야 겠다. 어디 존재하는지도 모르다가 한참 지나면 '그 배우가 있었지' 하는 배우가 안 되려면 열심히 해야겠다는 것은 있었다. 큰 역할이든 작은 역할이든 끌리든 끌리지 않든 페이를 크게 상관하지 않고 작품을 했다. 독립영화도 찾아보시면 적지 않게 했다. 단편도 꽤 많이 했고.
'보안관' 스틸 컷 © 뉴스1
'보안관' 스틸 컷 © 뉴스1
-얼핏 전략적으로 움직였다는 느낌도 든다.

▶30년간 연기를 하면서 연극에서는 주인공을 많이 했었다. 주인공 해야겠다는 얘기가 아니라 조금 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확장시켜 나가 보자 그런 생각이 있었다. 내가 가진 스펙트럼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야 하니까 역할의 고저장단을 고려했다. 악역하면 선한 역을 했고, 극과 극의 역할이 잘 포진돼 있으면 이 선배는 이 역할을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할 것이다. 연극에서는 셰익스피어부터 품바, 마임, 부조리극까지 다 해봤다. 그 호흡이 각자 다르다.

두번째는 영화 산업에 들어와서 쓰임새 있는 배우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금 더 편안한 시간도 왔으면 좋겠다 싶었다. 현장에 갔을 때 아는 얼굴로 봐야한다고 생각했다. 아는 사람이 되려면 일정한 활동 기간이 있어야 한다. 촬영장이 '아, 저기, 지금 들어가시면 되고요' 하는 대화를 나누는 그런 어색한 공간이 아니라 '선배님 오셨어요? 역할은 어떠세요?'하고 동료로서 커뮤니케이션을 같이 할 수 있는 공간이 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스태프도, 배우들도 처음 보는 친구는 '어디서 봤어요' 한다든지 그러면서 배우 대 배우로 캐릭터 대 캐릭터 바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사이가 됐다.

-왜 진작에 영화를 시작하지 않았던 것인가.

▶영화를 워낙 좋아했다. 그렇지만 내가 영화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했다. 사투리 쓰는 배우는 안 된다는 생각도 있었다. 송강호, 김윤석 배우가 지평을 열어줬다. 영화를 찍고 나니까 매력이 있다. 연극은 시간을 투자해서 집중을 다같이 해서 한다. 영화는 편집에서 만드는 매력이 있고, 기록이 있다. 연극과 달리 너무 잘 남아 있으니까 어색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이 있었다. 워낙 영화를 보는 게 좋기도 하고…

-연극에 대한 애정도 많을텐데, 미련은 없나.

▶지금은 영화가 좋다. 연극은 할만큼 했다. 30년을 했다. 비록 열악했지만 그 당시에 주어진 환경이 최선이었던 것 같다. 영화는 현장마다 다르다. 지방에서 연극은 만나는 사람이 한계가 있다. 오랫동안 하다보면 이 (영화)작업은 새로운 사람들, 새 스태프 그 구성원이 늘 바뀌니 나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고 즐겁다.
배우 김종수 / 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배우 김종수 / 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드라마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드라마는 어떤가.

▶드라마 마다 다르다. 영화처럼 1시간~2시간에 담을 얘기가 있고, 드라마처럼 12부작, 24부작 긴 호흡으로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나름의 매력이 있다. '킹덤'은 영화도 드라마도 아니다. 장르보다는 매체의 특성이고 연기의 특성이다. 연극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울산 연극계 대부라고 하더라.  

▶회장이지만 아무 권한도 돈도 없었다. 나이가 되서 '형님 한 번 하시죠' 해서 했던 거다. (대부는) 재밌자고 한 말이다.(웃음) 지방, 울산에서는 연기를 전공하는 학교도 없고, 시립극단도 없다. 지금도 없다. 배우들이 진로나 이런 것을 고민한다. 대학원에 가서 강의를 하기도 하고, 고민을 했었다. 결국은 행정적으로 빠지기도 하고, 나는 배우로 남고 싶었던 것이고.

-서울도 아니고 지방에서 전업 연극배우로 살면서 생활이 어렵지는 않았나.

▶알바도 많이 하고 그랬다. 30년간 연극을 했다고 하면 30년을 하루도 안 빠지고 연극을 한 건 아니다. 5일만 공연한 적도 있고, 공연이 없어서 논 적도 있었다. 먹고 살려고 이 일 저 일 다 했다. '30년간 한 가지를 했다'고 끈기 있고 멋있게 포장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자꾸 나도 얘기하다보면 내가 그럴듯한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배우의 길?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지금도 매번 작품에 설레고, 막막하기도 하고, 끝나고 나면 후회가 남기도 한다. 다만 먹고 사는 걱정은 덜 하게 됐다. 전에 비하면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수 있고, 후배들의 술값 내줄 수 있고 그래서 감사할 뿐이다. 30년, 35년 프레임은 아직이다. 얼마 전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봤는데 70~80대 배우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고, 그들이 출연한 작품이 노미네이트 되고 하더라. 조금만 나이가 들면 경력 프레임을 씌우려고 하는데 그런 건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지금 작품에서 어떤 고민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처럼. 물론 세계적인 배우이기는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활동하고 연극도 한다. 현역이다. 

35년 의지와 투지? 이런 것은 없다. 스스로 한심해서 운 적도 있고, 인간 구실을 못하고 사나 싶어서 나락에 빠진 적도 많다. 어떨 때 정신차려 보면 매일 출근하는, 열심히 사는 저분들을 보면 나는 얼마나 한량 같나 하면서 자극을 받기도 했다. 다만 우리 직업이 많은 분들이 바라보는 직업이라서 회자되는 것 뿐이다. 그렇다고 나빠지지는 않아야겠지만.
배우 김종수 / 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배우 김종수 / 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 "연기 선택한 것을 후회한 적 있냐고? 네버. 배우가 짱."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랫동안 같은 일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재밌었으니까. 돈이 돼서 한 것이 아니다. 너무 감사하게도 대우를 해주시니 감사하다. 재밌었고, 잘하고 싶고, 제대로 하고 싶고, 멋있게 해내고 싶은 일이어서 후배들이 '형은 일찍 왔으면 좋지 않았을까' 할 때도 있다. 그런데 그건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현재가 좋고, 즐기면서 하고 싶다. 이 일에 종사하는 분들은 나에게 영감을 주는 매력적인 아티스트가 너무 많다. 나를 새롭게 캐릭터로 도전하게 해주는 그런 기회, 멋진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즐거움이 있다. 배우로서 잘 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크고 대단하고, 드러나고 하는 것에 대한 인간적 욕심이 전혀 없지는 않겠다. 내가 그런 것을 잘 컨트롤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울산에 사나.

▶지금은 서울 사람이다. 울산에 애증이 많다. 워낙 오래 살았다. 30년을 살았으니. (부산에서)고등학교 졸업하고 가서부터 살고 2014년도에 서울에 왔으니까.

-지방 출신이지만 서울말을 너무 잘한다. 서울 사람인 줄 알았다.

▶그렇지? 잘 하지 않나. 기득권이 있는 나쁜놈 역할은 다 그렇다. 딱딱한 뉘앙스의, 쉼없이 지시하고 욕하고 화내는 연기 위주라 (사투리가) 잘 안 들린다. 그래도 고향이 부산인 덕에 사투리를 할 수 있는 연기들을 할 수 있어서 밥 벌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출연료는 많이 올랐나.  

▶첫 영화인 '밀양' 때도 연극 한 편을 해서 받을 수 있는 돈을 회당 페이로 주시더라. 연극의 상황이 형편없긴 했지만 그게 누군가 착복해서가 아니라 원래 그 정도였고, 그렇게 해온 것이다. 그래서 돈을 많이 받아 너무 좋았다.

-소속사가 정우성 이정재의 아티스트 컴퍼니다. 어떤 인연인가.  

▶전 회사에서 에이전시부터 해서 5~6년간 도움을 많이 받다가 재계약을 했다.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 김의성씨가 '육룡이 나르샤' 때 보고 나보다 어려서 형이라고 불러주시는데, 회사 어디냐고, 우리 회사 올 생각 없냐고 하더라. 일단 한 번 보자고 나중에 정우성 이사 한 번 만나보라고 괜찮다고 만나보라 하더라. 정 이사도 '아수라' 때 보고 또 어떤 영화 뒷풀이에서 본 적이 있다. 이후 특유의 부처님 눈빛으로 '오시죠' 해서 기분 좋게 '고맙다' 하고 오게 됐다. 그래서 잘 갖춰진 회사에서 조금 더 내 뜻을 펼쳐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어 같이 하게 됐고, 열심히 하고 있다.
아티스트컴퍼니 인스타그램 캡처 © 뉴스1
아티스트컴퍼니 인스타그램 캡처 © 뉴스1
-아티스트 컴퍼니 배우들은 다 서로 친밀한 느낌이더라.

▶각자 다 너무 매력이 많은데 만나면 되게 편하다. 나에 비해서 어린 친구들도 있는데 편하게 대해주고, 나 또한 나이를 떠나서 이야기의 캐릭터를 하고 공감할 부분이 많아서 그런지 잘 통한다.

-연극 데뷔부터 치면 연기자 생활이 36주년이다. 감회가 어떤가.

▶늘 해오던 거라서 다른 게 없다. 찍어놓은 작품에 대한 기대가 있고, 이왕이면 손익분기점을 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래 했구만' 하는 것보다 앞으로 어떻게 이걸 잘 이끌어 나가야지 하는 생각이다. 정신없이 해왔다고 하면 소강기의 시간들이 있다. 지금은 차곡차곡 해나가야할 것 같다.

-연기를 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나.

▶네버. 배우가 짱이다. 직업 중에는.(웃음) 연기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는데 사람 구실을 못했을 때 힘들긴 했다. 연기 말고 다른 것을 할 자신이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어진 것을 열심히 했었다. 여러 직업을 했다. 모든 배우들이 아마 그럴 것이다. 노가다부터 커피숍, 식당, 학습지까지. 그래도 연기한 걸 후회해 본 적은 없다.

-배우로서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인생이 계획대로 되나. 오는 작품을 잘 고른다기 보다는 인연이 잘 맞았으면 좋겠다. 지금까지는 그런 작품 운과 사람 운이 좋았다. 많은 도움을 받았다. 초창기 서울 올 때 지방에서 왔다갔다 할 때 오디션을 보면 방값이 제일 아깝다. 밤에 시간이 안 맞으면 자고 가야했는데 5만원은 큰 돈이다. 박혁권을 비롯한 많은 분들에게 신세졌다. 박혁권, 아는 감독님, '밀양' 제작부가 재워도 주고 밥도 사주고 했다. 그분들과 연락을 하고 지낸다. 응원을 해주고 사이고, 인연의 덕이었다. 내가 말년에 복이 많구나 싶다.

그냥 하루하루 재밌게 살자가 목표다. 근심 걱정을 쌓아놓고 사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분들과 재밌게 지내면 된다. 어제 그런 얘기를 했다. '밝고 가볍고 진지하게 지내보자'. 말대로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말이 괜찮은 것 같다. 심각한 게 아니라, 심각한 걸 싫어하진 않는다. 단지 웃으면서 진지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해보자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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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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