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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트럼프' 당선에 핑크타이드 붕괴?…"이념보다 정권 심판"

"2018년 이후 중남미 23번 대선 중 좌파 12번·우파 11번 승리"
"좌파 물결이라기보다는 반체제로 인한 결과"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2023-11-21 07:59 송고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자 하비에르 밀레이가 19일(현지시각) 부에노스아이레스 당사에서 결선 투표의 승리가 확정된 뒤 지지자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다. 2023.11.20 © 로이터=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자 하비에르 밀레이가 19일(현지시각) 부에노스아이레스 당사에서 결선 투표의 승리가 확정된 뒤 지지자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다. 2023.11.20 © 로이터=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남미 2대 경제국 아르헨티나에서 극우 자유주의 성향의 하비에르 밀레이가 새로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중남미의 핑크타이드(좌파 정부 연쇄 집권)를 이끌었던 아르헨티나에 우파 정권이 들어선 것은 이념보다는 정권 심판 목적으로 투표에 나선 유권자들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결과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1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대선 결선 개표가 99% 가까이 진행된 상황에서 밀레이는 득표율 55.69%를 기록해 중도좌파 경제장관인 세리히오 마사 후보를 눌렀다.

밀레이는 승리가 확정되자 "오늘 아르헨티나의 재건이 시작된다. 아르헨티나의 쇠퇴는 끝나기 시작한다"며 "오늘은 대다수가 고통을 겪고, 일부에게만 혜택을 주는 국가의 빈곤 모델이 종료되는 날"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자유에 대한 생각을 받아들여야만 해결책이 있다"며 "자유세계의 모든 국가와 협력해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다짐했다.
유세 과정에서 '극우' 공약으로 인기를 모았던 밀레이는 당선 소감에서도 '자유주의' 행보를 이어가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밀레이는 53세 경제학자 출신으로 자칭 '무정부주의 자본주의자'로 통한다. 종종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와 비교된다. 과격한 언행과 극단적 선거 공약 때문이다.

초선 의원으로 소수 극우 정당 출신인 그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반감과 인플레이션을 근절하겠다는 의미로 그동안 유세 현장에서 전동 전기톱을 휘둘렀다.

밀레이는 기후변화는 거짓이며, 낙태를 반대하고, 아르헨티나 페소를 미국 달러로 대체할 것을 주장하는 극단주의자다. 또 인간의 장기를 시장에 판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여성부를 없앨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극우 행보 때문에 밀레이의 당선으로 중남미의 핑크타이드도 분수령에 섰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19일(현지시간)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가 아르헨 대선에서 승리하자 지지자들이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길거리로 몰려 나와 환호하고 있다. 2023.11.19 © 로이터=뉴스1 © News1 박형기 기자
19일(현지시간)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가 아르헨 대선에서 승리하자 지지자들이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길거리로 몰려 나와 환호하고 있다. 2023.11.19 © 로이터=뉴스1 © News1 박형기 기자

다만 일각에서는 최근 중남미를 휩쓴 좌파 물결에 비춰봤을 때 오히려 밀레이의 당선은 놀라운 것이 아니라는 분석이 이어졌다. 유권자들은 더 이상 이념에 투표하지 않고, 이전 정권을 단죄하기 위해 투표소로 향한다는 것.

우루과이 정치학자 안드레 말라무드는 아르헨티나 일간 '라 나시옹'에 "2018년 이후 중남미 지역에서는 23번의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좌파가 12번, 우파가 11번 승리했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20개국에서 야당이 승리했고, 오직 3개국에서만 여당이 재선에 성공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 선거 외에 총선까지 포함할 경우 이 숫자는 더 늘어난다. 지난 2015년 중남미에서 열린 33번의 총선을 보면, 단 9번의 선거에서만 여당이 승리했다.

최근 몇 년간 중남미에서는 페루, 멕시코, 아르헨티나, 칠레에서 좌파 정부가 집권했다. 이러한 추세는 콜롬비아에서 최초의 좌파 대통령이 선출되고,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이 12년 만에 복귀하며 정점을 찍었다.

이 때문에 1990년대 말 시작된 핑크타이드가 다시 중남미를 휩쓸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2010년 후반의 좌파 물결과 1990년대 말 첫 번째 핑크타이드는 성격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중남미 분석가 카르멘 콜로시는 싱크탱크 스트랫포에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 사이에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에콰도르, 베네수엘라의 유권자들은 신자유주의 개혁을 도입해 경제 성장을 촉진했음에도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한 기업 친화적인 정부를 축출하기 했다"며 "대다수 국민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정책을 도입하려는 좌파 정부를 택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들 좌파 정부는 높은 원자재 가격과 중국의 원자재 수요에 힘입어 이들 좌파 정부는 수년간 높은 지지율을 누렸다"며 "그러나 2010년대 포퓰리즘의 인기가 쇠퇴하면서 핑크타일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여러 정부가 붕괴되고 그 자리에 더욱 보수적이고 기업 친화적인 정부가 등장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또 콜로시는 "재정적 어려움이 닥쳤을 때 유권자들은 경제를 고치기 위한 다른 방법을 장려하는 새로운 목소리를 지지하기 위해 현 정부와 이념을 축출하는 경우가 많다"며 "친자유주의 시장 정책을 통해 경제적 풍요를 약속하며 당선된 에콰도르의 기예르모 라소 대통령이 그렇고, 가브리엘 보릭 칠레 대통령과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이 그렇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좌파 물결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반체제 환경"이라고 강조했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2018년부터 6년간 이어진 경제 위기로 살인적인 물가 상승을 겪고 있다. 9월 물가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124%로, 199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 2018년 외환 위기로 페소의 달러 대비 가치는 절반으로 떨어졌고,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570억 달러(약 73조7800억원)에 이르는 초대형 구제금융을 받았다. 당시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정부 보조금을 삭감하고, 세금을 인상하는 등 긴축 재정을 펼치기로 했지만, 정작 선거를 앞두고 포퓰리즘 정책으로 돌아서며 경제는 다시 무너졌다.

말라무드 역시 "남미인들은 이념을 강요하기 위해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통치자를 제거하기 위해 투표하고 있다"며 "밀레이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아르헨티나인들이 거부한 것은 환상 속에 있는 공산주의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yeseu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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