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칼럼] 캅카스의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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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캅카스의 나고르노카라바흐 문제는 역사가 오래되었다. 이 지역은 정확히 말하면 아제르바이잔 안에 있는 아르메니아인 99% 거주지역이다. 가장 가깝게는 서쪽에서 아르메니아와 5km 떨어져 있다. 1988년 이후 라고르노카라바흐에서는 수천명이 희생된 양국간 큰 전쟁만도 두 번이 있었다. 2022년 가을에도 국경에서의 충돌로 200명 이상이 사망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은 수 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양국이 소련에 속해 있던 동안에는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소련은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아르메니아인들의 지역이라는 이유에서 아르메니아 영토로 인정했다. 그러다가 스탈린이 갑자기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아제르바이잔의 자치 지역으로 지정해버렸다.

물론 그렇게 해도 특별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스탈린이라 해도 미래 소련의 해체를 내다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소련 해체에 즈음해서 주민들이 투표로 독립공화국을 선포했고 아제르바이잔은 무력으로 개입했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아르메니아는 대응했다. 3년간 계속된 충돌에서 3만 명이 희생되었는데 아르메니아의 대승이었다. 아르메니아는 라고르노카라바흐를 아우르는 영역을 점령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제르바이잔의 힘이 커지기 시작했다. 아제르바이잔의 가장 큰 자산은 바쿠의 유전지대다. 노르웨이에 필적하는 상당한 자원이다. EU와 튀르키예가 가장 큰 고객이다. 문제는 카스피해와 러시아의 볼가강, 운하를 용이하게 활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육로나 파이프라인이 필요하고 여기서 아르메니아가 장애물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 남쪽에 아주 짧게 튀르키예와 접하는 월경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지만 어쨌든 아직도 아르메니아에 가로막혀 있다.

BP를 필두로 한 서방 석유회사들이 바쿠에 대대적으로 투자를 늘린 덕분에 2006년 아르메니아를 북쪽으로 우회해 조지아를 거쳐 튀르키예의 지중해안까지 가는 파이프라인이 건설되었다. 2022년에는 나란히 가는 천연가스관도 완성되어서 이탈리아 남부까지 연결된다. 아제르바이잔 경제와 국방력은 몰라보게 달라졌고 튀르키예와는 혈맹이 되었다. 튀르키예와 아르메니아 국경은 봉쇄되어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이란과 함께 중동에서 유이한 시아파 이슬람 국가다. 이란 북부에는 1500만 정도의 아제르바이잔인들이 살고 있고 한때는 이란이 아제르바이잔에 흡수통합되어야 한다는 논리도 나왔다. 그러니 사이가 좋을 리가 없다. 적의 적은 친구라고 했다. 아제르바이잔은 이스라엘과 친하다. 이스라엘이 쓰는 석유의 40%를 공급하고 이스라엘로부터 무기를 공급받는다. 이스라엘은 유사시 이란과의 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의 공군기지를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르메니아는 이란과 러시아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아제르바이잔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집중하는 틈을 타서 나고르노카라바흐에 진입했다.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에 SOS를 쳤는데 러시아는 해당 지역이 공식적으로 아르메니아가 아니라는 이유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2개월간의 분쟁은 러시아의 중재로 끝났고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 방면의 방대한 지역을 점령하게 되었다. 라고르노카라바흐지역은 5km 길이의 회랑으로 아르메니아와 연결되고 러시아의 평화유지군이 관리하기로 한다. 아제르바이잔은 월경지와의 연결도 확보했다. 튀르키예와 바쿠가 연결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아제르바이잔은 EU에 천연가스 공급을 두 배로 늘리기로 해 러시아산의 비중을 낮추는데 기여했다. 러시아의 병력이 아르메니아에서 우크라이나로 이동해 아제르바이잔의 안보가 튼튼해졌다. 그리고 급기야 나고르노카라바흐 직접 점령에 나섰다. 러시아는 도울 형편이 못 된다. 결국 2023년 가을에 아르메니아인들은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떠나기 시작했고 자치정부는 해산을 결정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일지가 의문이다. 이제 아르메니아에 남은 유일한 옵션은 벨라루스형의 국가가 되어 러시아에 사실상 편입되는 것이다.

“왕이 미치면 캅카스로 전쟁하러 간다”는 페르시아 속담이 있다고 할 만큼 캅카스는 고난의 역사로 점철된 험한 지역이다. 제정러시아 귀족들의 결투 방법이었던 러시안 룰렛이 6발 리볼버에 실탄 1발을 넣고 하는 것인데 캅카스 룰렛은 실탄 5발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서로 가까운 곳에 살수록 이해관계가 달라지고 인종과 민족, 그리고 종교와 언어를 기준으로 나뉘어져 서로 싸우는 것이 인류의 숙명이라는 사실을 캅카스가 가르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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