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박현영 기자 = '비앤에스홀딩스(B&S 홀딩스)→하루인베스트→델리오.'
금융당국에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까지 마친 가상자산 예치 업체(델리오)는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업체(하루인베스트)에 고객 돈을 넣었습니다. 경쟁 업체이지만, 해당 업체가 더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높은 수익률의 원천은 매우 뜻밖이었습니다. 이용자가 8만명에 달하는 업체(하루인베스트)가 5명 이하 소규모 인원이 만든 트레이딩 팀(B&S 홀딩스)에 고객 돈을 맡겨 얻은 수익이었던 것입니다.
◇'하루인베스트 사태'가 뭐길래
가상자산(암호화폐) 예치 서비스들의 연쇄 '출금 중단' 선언으로 국내 시장의 얄팍한 사업구조가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이로 인한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데요.
사태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지난 13일 '하루인베스트'가 돌연 입출금을 중단했습니다. 하루인베스트는 회원 수가 약 8만명, 누적 거래액(예치액)은 약 3조원인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입니다.
국내 규제를 피하기 위해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국내 서비스이기도 합니다. 국내 블록체인 액셀러레이터 블록크래프터스가 만든 서비스이기 때문이죠. 외신들도 일제히 하루인베스트를 '한국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하루인베스트가 제시한 사유는 '파트너사 문제'였습니다. 파트너사 때문에 출금을 닫으면서 고객 수만명의 돈이 묶이게 되었는데, 정작 이 파트너사가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에 투자자 혼란은 더욱 커졌죠.
14일이 되자 상황은 더 심각해집니다. 전날 하루인베스트가 입출금을 닫았을 때 "우리와는 관계없다"며 선을 그었던 '델리오'가 하루만에 입장을 바꿨습니다. "사실 우리도 하루인베스트에 돈을 넣었다"고 선언하며 출금을 중단한 겁니다.
정상호 델리오 대표는 <뉴스1>에 "하루 측 공지가 뜬 오전에는 관련 위험을 인지하지 못했다"며 "오후에 위험을 인지했고 델리오에도 출금 신청이 몰리면서 출금을 중단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델리오는 하루인베스트와 비슷한 모델의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입니다. 하루인베스트보다는 수익률이 낮지만, 예치 서비스 중 금융당국에 가상자산사업자(VASP)로 영업을 신고한 곳입니다. 실제로 델리오도 이 점을 강조하며 서비스를 홍보해왔고요. 덕분에 꽤 많은 이용자를 끌어모으며 국내 가상자산 서비스 중에선 1,2위를 다투는 곳이 됐습니다.
델리오가 출금 중단 공지를 올린 지 두 시간 뒤, 이번엔 하루인베스트가 추가 공지를 냈습니다. 드디어 문제의 파트너사가 어딘지 밝힌 겁니다. 하루인베스트가 밝힌 파트너사는 B&S홀딩스로, 극소수 인원이 만든 퀀트 트레이딩 기업입니다. 현재 B&S홀딩스는 홈페이지를 없앴지만, 본래 홈페이지에는 지난해 11월 파산한 거래소 FTX의 토큰 FTT에 투자한다는 설명이 기재돼 있었습니다.

◇경쟁업체·소규모 팀에 돈 맡기기…얄팍한 사업구조
우선 이번 사태로 드러난 건 국내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의 황당한 자산 운용 방식입니다.
안전한 방식으로 고객의 코인을 불려준다며 홍보해왔지만, 이번 사태로 드러난 그들의 '자산 운용 방식'은 홍보 내용과는 딴판이었죠. 실제 운용 방식을 알았다면 그 누구도 투자하지 않았을 방식이었습니다.
모델은 비슷하지만 하루인베스트와 델리오의 가장 큰 차이는 수익률입니다. 하루인베스트는 가상자산 예치 시 운용 전략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합니다. 가장 위험성이 낮은(낮다고 홍보한) 고정 수익률 상품도 연 최대 12%라는 꽤 높은 수익률을 내걸고 있고요. 제일 공격적인 운용 전략을 택하면 수익률이 무려 연 25%입니다. 델리오는 예치 상품 중 가장 이율이 높은 게 연 10.7%입니다. 하루인베스트보다 낮습니다.
그렇기에 델리오 이용자들은 더욱 황당했습니다. 하루인베스트가 수익률이 더 높은데, 델리오를 택한 이유는 '델리오가 가상자산사업자라서'일 확률이 매우 높죠.
실제 델리오 홈페이지에서 예치 서비스 페이지에 접속하면, '델리오가 1위 크립토파이낸스(가상자산 금융) 기업인 이유'가 나옵니다. 여기서 델리오는 "국내에서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 수리가 완료된 기업 중 예치·렌딩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은 델리오가 유일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델리오는 수익률이 더 높다는 이유로 하루인베스트에 고객 돈을 예치하고 있었던 겁니다. 물론 기존 자본시장에서도 펀드가 다른 펀드에 투자하는 경우가 있지만, 적어도 상품설명서에 이를 고지하죠. 반면 델리오 이용자들은 델리오가 경쟁업체인 하루인베스트에 고객 자금을 예치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국내 블록체인 벤처캐피탈(VC) 관계자는 "기존 금융 시장에서도 운용사들의 타펀드 간접 투자, 펀드오브펀드 형태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델리오는 타 운용사에 위탁해 투자한다는 것을 고객들에게 반드시 알릴 의무가 있었다. 고객들의 자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에 대한 투명한 공개가 이뤄졌어야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루인베스트 이용자들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용자가 8만명에 달하는 서비스가, 2~3명이 창업한 소규모 트레이딩 팀에 고객 자산을 맡길줄은 몰랐던 것이죠.
실제로 하루인베스트는 수익률이 가장 높은 상품의 홍보 문구에 '글로벌 톱(Top) 파트너'들의 '알고리즘 트레이딩'으로 자산을 운용한다는 내용을 기재했습니다. 이름조차 생소한 B&S홀딩스를 '글로벌 톱 파트너'로 보기엔 매우 어렵습니다.

하루인베스트는 B&S홀딩스가 경영보고서에 허위 정보를 기재했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며, '우리도 속았다'는 뉘앙스를 풍겼는데요. 정말 속은 사람이 누구일지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규제 사각지대'서 깜깜이 영업…위기의 코인 예치
자산 운용 방식도 문제였지만, 이번 사태로 규제 사각지대도 더욱 확실하게 드러났습니다.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는 규제망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라 금융당국에 영업을 신고해야 하는 가상자산사업자는 △거래업자(거래소) △보관·관리업자 △지갑서비스업자입니다. 델리오도 보관·관리업자로 신고했습니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은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현황에 '가상자산 예치·랜딩(대출) 서비스는 특금법 상 신고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명시해두기까지 했습니다.
그간 취재를 종합하면 FIU 가상자산검사과는 올해 초부터 델리오를 눈여겨보기 시작했습니다. 금융당국에 신고한 보관·관리 업무는 델리오의 주요 업무가 아님을 인지했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이후 코인마켓 가상자산 거래소 종합검사, 고팍스 영업 변경신고 등 다른 이슈들이 계속 터지면서 델리오에 대한 감시는 뒷전이 됐다는 후문입니다. 이번 사태로 FIU는 델리오 문제를 다시 들여다볼 예정입니다.
단, 더 이상의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나와선 안 되겠죠. 가상자산 예치 및 운용 서비스, 랜딩 서비스 등 위험이 큰 서비스들이 버젓이 영업 중인 만큼, 해당 서비스의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도 하루빨리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얼마 전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도 거래소 등 가상자산사업자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용자들을 우선적으로 보호합니다. 예치 서비스는 여전히 '규제 사각지대'에 있습니다.
다른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들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유사 서비스 헤이비트는 매 분기 고객 자산을 100% 보유하고 있다는 실사 보고서를 내고 있지만, 고객은 이제 자산 운용 방식도 완벽하게 알고 싶어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사 서비스인 헤이비트, 샌드뱅크 등은 이번 사태와 관련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hyun1@news1.kr
편집자주 ...암호화폐·블록체인 산업은 정보 비대칭성이 심한 분야이자, 주요 용어가 대부분 외국어로 되어 있어 이해가 어려운 신생 산업입니다.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블록체인 기술 관련 소식도, 암호화폐 투자와 직결된 소식도 독자에게 제대로 닿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민영통신사 <뉴스1>은 이해가 어려운 암호화폐·블록체인 소식을 쉽게 풀고, 나아가 향후 전망이나 분석까지 담은 ‘코인사이트(Co;insight)’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코인사이트’는 암호화폐를 뜻하는 ‘코인’과 ‘인사이트’의 합성어로, 암호화폐·블록체인 분야의 주요 소식을 인사이트 있게 분석하겠다는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