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영국 싱크탱크가 지난해 전 세계 군사비가 전년 대비 2.6% 증가했다는 보고를 내놨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패권주의적 움직임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15일(현지시간) 173개국의 군사 조직, 장비 재고 및 국방 예산에 대한 자료를 토대로 '2023 군사 균형'을 펴냈다.
IISS 추정치에 따르면 2022년 세계 군사비는 1조9786억 달러(약 2538조원)로 전년 대비 2.6% 증가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지난 2021년 세계 군사비가 역대 최고액이었다고 발표한 바 있는데, 이를 토대로 봤을 때 지난해가 이 기록을 깬 것이다.
세계 최대 군사대국인 미국은 전년 대비 0.9% 증가한 7666억 달러(약 983조원)를 군사비로 사용하며, 세계 군사비의 39%를 차지했다. 2위는 2424억 달러(약 311조원)의 중국, 3위는 879억 달러(약 112조원)의 러시아다.
러시아의 군사비는 전년도보다 40%가량 늘어나며 세계 군사비 순위 5위에서 3위로 올랐다.

◇러, 우크라戰으로 주력 전차 50% 잃어…우크라도 전투기 50% 상실
군비 증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다름 아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다. 러시아의 위협이 현실화하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을 위주로 군사비를 다시 늘리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군축 기세는 약해지고, 각국이 군사비 증대에 박차를 가할 가능성이 커졌다.
IISS는 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군대 모두 심각한 '소모'를 겪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선 러시아는 전쟁의 결과로 막대한 인력을 손실했다. 러시아는 동원을 통해 인력 손실을 상쇄하려 했지만, 그 결과 경험이 적은 신병들이 대거 군대에 합류했다.
또 IISS는 러시아가 지난해 2월 전쟁이 시작된 이후 장갑차 함대에서 큰 손실을 입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군의 전차 수는 2927대에서 1800대로 38% 감소했으며, 특히 2013년에 도입돼 육군의 주력인 T-27 B3의 손실이 컸다. T-72 B3 및 T-72 B3M 탱크는 전쟁 전과 비교했을 때 무려 50% 가까이 줄어들었다.
공군도 예외는 아니다. 러시아는 활성 전술 전투 항공기의 약 6~8%를 잃었고, 활성 다목적 및 지상 항공기의 경우 10~15% 줄어들었다.
존 치프먼 IISS 소장은 "러시아의 현대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정치적, 군사적 실패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 한 해 러시아의 행동은 군대와 고위 군사 지도부의 능력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을 뿐만 아니라 명령 결속력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도 전쟁 과정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IISS는 우크라이나가 능동 전술 전투기를 전쟁 전보다 50% 잃었다고 봤다. 전쟁 전 우크라이나 항공기수가 더 적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크라이나가 입은 피해는 러시아에 비해 비례적으로 더 크다.
우크라이나의 탱크 수는 858대에서 953대로 오히려 증가했다. 이는 러시아에서 포획한 500대로 손실을 부분적으로 상쇄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우크라이나는 폴란드, 체코 공화국 등 기타 구소련 국가로부터 상당한 전차를 지원받았지만, 탱크 부대 규모는 러시아의 절반 크기에 불과하다.
우크라이나와 가까운 유럽 각국에서도 육군 무기의 증가가 두드러졌다. 독일은 냉전 이후 줄여온 전차 수를 늘리기 시작했다. 독일은 지난해 레오파드(레오파르트) 전차를 321량 보유했는데, 이는 1년간 10% 이상 늘어난 규모다. 리투아니아도 포탄 보유 수를 약 30% 늘렸다.

◇중국, 1년 사이 군사비 36조 늘려…동북아 군비 경쟁에 불붙여
중국의 군사비 증가도 군확 경쟁에 불을 붙였다. 중국은 전년도보다 군사비를 285억 달러(약 36조원) 늘렸다. 미국 본토를 사거리에 넣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은 140기가 돼 2021년 대비 20% 늘었다. 아울러 중국은 공군력을 강화하기 위해 최신예 스텔스전투기인 J-20A 전투기에 투자하고 있으며, 국산 제트 엔진을 장착한 군용 항공기도 배치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2022년 보유한 J-20은 140기로, 전년 50기였던 것에 비해 2.8배 증가했다.
IISS는 중국의 군확이 인근 국가들의 '도미노 투자'를 촉진하고 있다고 봤다. 일본 정부는 2027년까지 방위비와 관련 경비를 합쳐 국내총생산(GDP)의 2%에 달하도록 하는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수십 년 동안 일본의 방위비는 GDP의 1% 수준에 머물렀다. 대폭 증액된 방위비는 일본의 적 기지 공격 능력, 이른바 '반격 능력'을 확보하는 데 쓰일 전망이다. 지난해 기준 일본의 군사비는 481억 달러(약 61조원)로 세계 8위였다.
IISS는 한국도 군대를 현대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한국 새 정부는 자주적인 군사력 발전을 강조하며 한·미 군사협력을 강화해왔다고 전했다. 아울러 한국형 3축 체계인 △킬체인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대량응징보복 등을 다시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호주는 핵잠수함을 도입하기 위해 영국-미국과 계속 협력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호주는 최근 인도-태평양 진출을 확대하는 중국에 맞서 군 전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2021년 9월 미국·영국과 안보 협의체 '오커스(AUKUS)'를 체결하고 핵잠수함을 도입하기로 한 바 있다.
이 밖에 IISS는 북한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운반 체계 등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구체적으로는 준탄도미사일과 극초음속 활공체, 지상공격 순항미사일 등이 포함된다고 봤다.
보고서는 북한의 총병력 규모가 육군 110만 명, 해군 6만 명, 공군 11만 명, 전략군 1만 명 등 총 128만여 명이라고 추정했다. 이는 55만여 명의 한국군의 두 배를 넘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영향권에서 한국은 북한의 핵과 재래식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역량 개발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게 IISS의 평가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도 군사비 증가에 불가피한 영향을 미쳤다. IISS에 따르면 2022년 물가 변동의 영향을 제외한 실질 기반 군사비는 오히려 전년 대비 2.1% 줄었다. 무기 가격과 병사 급여 상승 여파로 각국은 예산을 인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yeseu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