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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한강의 기적은 日 원조금 덕'…아베 회고록 韓國 61회 언급(종합)

징용공 배상 대법 판결은 국제법 위반…文 알고 있었을 것 '확신범'
'위안부 합의' 깨졌지만 日이 '도덕적 우위 차지' 주장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2023-02-08 15:43 송고
8일 출간된 故 아베 신조 전 총리 회고록(中央公論新社) 표지 갈무리. (출처 아마존 재팬)
8일 출간된 故 아베 신조 전 총리 회고록(中央公論新社) 표지 갈무리. (출처 아마존 재팬)

8일 출간된 고(故)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회고록(中央公論新社)에 한국이 총 61차례 언급됐다. 440쪽에 걸쳐 위안부 합의, 징용공 배상, 지소미아 파기 등 임기 중 겪은 굵직한 한·일 외교 사안에 대한 아베 전 총리의 속내가 드러났다.

요약하자면 아베 전 총리에게 한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반일을 정권 부양에 이용하는' 나라였다.
◇미 의회 연설·패전 70주년 연설…의도된 '과거형 사죄'

아베 전 총리가 스스로 밝힌 70주년 담화의 목적은 '먼저 무라야마 담화의 오류를 바로잡는 것, 그리고 국민적 합의와 국제적 이해를 얻는 것'이었다.

무라야마 담화는 1995년 전후 50년을 맞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당시 총리가 발표한 담화로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함께 '마음으로부터의 사죄'가 담겼다.
아베 전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 '마치 일본만 식민 지배를 한 것처럼 쓰였다'며 당시 국제 정세에 대한 관점은 '쏙 빠졌다'고 비판했다.

'전쟁 전에는 유럽과 미국도 식민 지배하지 않았느냐'고 억울한 듯 서술하기도 했다.

그는 '일본은 과거 몇번이고 사과해 왔다'며 '몇 번을 사과해야 끝나는 거냐'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아베 전 총리는 기존 일본 정부의 담화와 70주년 담화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침략에 대한 해석이라고 봤다. 그는 침략 및 식민지 지배를 '국제사회의 조류를 잘못 읽었다는 정책적 현상 인식 오류'라고 표현했다.

◇위안부 합의 '배신당했다'

아베 전 총리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박근혜 정권이 시작된 2013년부터 비밀리에 위안부 문제를 교섭해 왔다.

한국 정부에 대해 '그동안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한 아베 전 총리는 '또 한국 정권이 바뀌면 (합의가) 어찌 될까 하는 불안은 있었다'고 털어놨다. 만약 태도를 바꾸면 확고한 의지를 갖고 상대하지 않을 생각이었다고 덧붙였다.

그가 위안부 합의를 결심한 요소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라는 점△국제사회를 증인으로 삼겠다고 한 점이었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에 '위안부로 많은 고통을 경험하고 몸과 마음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와 반성의 뜻을 표명한다'는 내용으로 전화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강제 연행을 인정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아베 전 총리는 이 합의에 대해 '앞으로 일본 총리는 위안부 문제의 위자도 말하지 않도록 합의한 셈'이라고 학을 뗐다.

결국 문재인 정권 들어 합의가 번복된 것을 두고는 오히려 일본이 외교상으로 도덕적 우위 'Moral High Ground'(도덕적 우위)를 차지하게 됐다고 해석했다.

◇징용공 대법 판결은 국제법 위반…문재인은 '확신범'

아베 전 총리는 징용공 문제를 논하는 부분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가리켜 '확신범'이라 거칠게 표현했다.

그는 노무현 정권에서 대통령의 수석 비서관이자 징용공 배상 문제를 다룬 관민공동위원회에 참가한 문재인 전 대통령이 '한국 대법원의 판단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알고 있었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러면서 '반일을 정권을 띄우는 재료로 쓰고 싶었을 것'이라고 또 한번 추측했다.

◇반도체 수출 규제는 징용공 판결의 보복 조치

아베 전 총리는 반도체 수출 규제가 2018년 징용공 판결과 연관성이 있음을 넌지시 드러냈다.

그는 2018년 일본 기업에 징용공에 대한 배상을 명령한 판결 이후 아무런 해결책도 나오지 않았다며 '문재인 정권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문제가 수출 규제 강화로 이어졌다'고 인정했다.

결정적으로 아베 전 총리는 '신뢰 관계가 있었다면 좀 더 다른 대응을 취했을 것'이라 실토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수출 규제와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다른 문제라고 잡아뗐으나, 전 총리 개인적으로는 '국가 사이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사이에 무역 관리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견이었다고 피력했다.

일부러 징용공 판결과 수출규제가 연관된 것처럼 연출한 것도 한국 측에 징용공 문제의 심각성을 어필하기 위해서였다고 털어놨다.

◇한국의 지소미아 파기는 '감정적' 대응

아베 전 총리는 한국이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파기한 것을 두고 '놀랐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안전보장 문제를 이유로 수출 관리를 엄격화한 일본의 조치는 자유무역 원칙을 기반으로 한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에 따른 것'이라고 정당화했지만 한국 측은 '단순히 감정적으로' 지소미아 파기를 주장했다고 비난했다.

이어 '미국에 있어서도 한·일간 정보 공유는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에 미국에게도 불신을 산 것'이라 비꼬며 한국 정부의 대응을 혹평했다.

◇한강의 기적은 일본의 원조 덕분?

한국에 대한 아베 전 총리의 시혜적 시선이 두드러진 것은 북·일 국교 정상화에 대한 부분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정은 당시 북한 국무위원장이 회담하며 거리를 좁히던 2019년. 아베 전 총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일본인 납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북한 지원금은 내라고 해도 못 낸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

'일본은 세금을 써서 과거를 청산해야 하는 입장인데 국민의 납득 없이는 무리다'라고 이유를 설명하던 아베 전 총리는 느닷없이 한국을 언급한다.

전 총리는 '앞서 한국이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성장을 달성한 것도 1965년에 맺은 일한청구협정·경제협력협정에 근거해 일본이 5억 달러(당시 1조8342억원)을 원조한 덕분이다'고 말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이 북한을 지원한다는 이야기에 흥미를 보였다고 말했다.

◇야스쿠니 참배 '한 번은 거쳐야 할 길

세계 제2차 대전 A급 전범이 묻힌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아베 전 총리의 감상도 담겼다.

그는 '야스쿠니 참배가 소위 전범 참배라는 것은 왜소화한 시각에 기반한 비판'이라고 반박했다.

'애초에 A급, B급, C급이라는 구별은 공식적으로 이뤄진 것도 아니다. 극동 군사재판소에서 심리된 전쟁범죄자를 그렇게 부르게 된 것뿐'이라며 전범 재판을 평가절하했다.

외려 중국과 한국 등 국제사회의 전범 참배 비판에 프레임을 씌우는 대목도 있었다.

그는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스즈키 젠코(鈴木善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 3대 총리가 참배했을 때 이의제기하지 않았다'며 '역사문제를 외교 카드로 사용하려 했기 때문에 문제제기한 것'이라 프레이밍했다.

전 총리는 재임 중 참배에 대해 '한 번을 거쳐야 할 길'이었다고 표현했다. '할 일을 했다'며 후련한 어조로 말하면서도 미국 정부가 이례적으로 '실망'했다고 밝힌 이후로는 바로 뜻을 접었다. 그는 '재임 중 두 번은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realk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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