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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칼럼] 바다를 다시 챙길 때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22-12-09 09:30 송고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처음 독일에 갔을 때 지금과 달리 국경에서 이런저런 사무를 거쳐 오스트리아로 넘어갔다. 그런데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가는데 자동차를 타거나 걸어서 간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때 깨달은 것이 바로 한국은 섬나라라는 사실이다. 나라를 떠나려면 반드시 배나 비행기를 타야 한다. 어릴 적부터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이라는 말에 적응되어서 나머지 한 면은 육지도 바다도 없는 셈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사실상 섬나라가 된 것은 현대에 들어 남북이 분단된 이후여서 한국인의 DNA에 해양성 기질은 딱히 없는 것 같다. 바다를 통해 멀리까지 가서 뭔가를 해보려는 생각 자체를 할 이유도 여유도 없이 살아와서다. 그러나 세계 모든 해양 대국의 제독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이순신 장군을 배출한 땅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한국은 세계 1위의 조선 강국이다. 50년 전 정주영 회장이 현대중공업을 출범시킨 이래 한국인들은 영국, 일본을 제치고 세계에서 배를 가장 잘 짓는 사람들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바이킹즈’에 전쟁 영웅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플로키’라는 캐릭터가 특히 눈에 띤다. 플로키는 전사 카테고리에 들지는 않지만 드라마의 주연급이다. 플로키는 바로 바이킹선을 만드는 장인이다. 바이킹들의 영국과 프랑스 원정은 플로키가 지은 원양 항해용 선박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특히 덴마크, 노르웨이와 영국 사이의 북해는 사납기로 유명한 바다다. 드라마도 이 점을 지속적으로 짚는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원양 선박 건조 기술 없이 대영제국은 불가능했다.

자 그러면 한국은 이순신 장군보유국에다 세계 최고의 선박 건조 기술국이므로 이제부터라도 바다로 나아가 해양 대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바다에 대한 안보, 경제적 인식과 활용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2차대전 종전 이후 처음으로 글로벌 질서가 재편된다고 피터 자이한을 비롯한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나이키 운동화 한 켤레를 지구 반대편으로 운반하는 데는 단돈 20센트가 든다. 글로벌 해양 공급망의 위력이다. 이제 모든 물건은 가장 비용이 낮은 곳에서 생산해서 다른 곳으로 운반하면 되기 때문에 각국은 가장 잘하는 부분만 담당해도 먹고산다. 글로벌 물류의 90%를 담당하는 바닷길은 미국 해군이 지킨다. 자선사업이 아니라 에너지와 테러리스트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중동 석유가 더 필요치 않고 테러와의 전쟁도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견적을 받은 상태다. 그렇다면 무역의존도가 GDP의 8%도 안되는 미국이 천문학적 비용을 쓰면서 굳이 세계의 해양 질서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 서서히 대양해군을 줄이고 필요한 일이 생길 때마다 선별적으로 출동 나갈 것이다.

작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한 미국은 지금 인플레이션감축법을 휘두르면서 글로벌 공급망을 급히 국내로 끌어들이고 있다. 작업이 끝나면 누가 말했듯이 ‘위로는 캐나다, 아래에는 멕시코가 있고 좌우에는 물고기만 있는’ 안전하고 모든 것을 갖춘 나라로서 문을 걸어 잠글 것이다. 그리고 유럽을 포함한 다른 지역이 어려워질수록 에너지와 식량 창고인 미국은 돈을 많이 번다는 사실이 우크라이나전쟁으로 드러났다. 군수산업도 초호황이다.

미국의 공백은 일단 해적들이 메운다. 상선들은 항속을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크기가 지금처럼 공룡 같아서는 안 될 것이다. 해운과 조선 산업에 파급효과가 있다. 다음 단계에서는 각국이 해군력을 증강해서 각자도생으로 나아간다. 바다는 국경선이 그어진 육지와 다름없는 할거 공간으로 변모할 것이다. 과거로 돌아간다. 중동과 아시아에서 연안국들간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거나 무력 충돌이 일어나면 최악이다.

중국이 지금 생명줄인 남중국해를 장악하려고 애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전통적인 해군 강국 일본도 보조를 맞춘다. 우리는 최근까지 경항모 도입 논란으로 시간을 보냈는데 향후의 큰 그림에 맞는 해군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 배에는 해적이 눈독을 들이지 못하게 하고 우리 배는 다른 나라 옆을 지날 때 위축될 일이 없게 해야 한다. 즉, 우리의 물류는 사고 없이 제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연안해군에서 전투와 지원 역량을 업그레이드한 대양해군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해 보인다. 바다와 함께 조선과 해운산업도 다시 챙길 때다.

※이 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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