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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황태자’ 후춘화…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서울=뉴스1) 박형기 기자 | 2022-10-24 11:57 송고 | 2022-10-24 16:40 최종수정
한때 차기 대권 가도에서 선두를 달렸던 후춘화 부총리. © AFP=뉴스1 © News1 박형기 기자
한때 차기 대권 가도에서 선두를 달렸던 후춘화 부총리. © AFP=뉴스1 © News1 박형기 기자

이번 20차 공산당 당대회의 최고 승자는 물론 시진핑 주석이다. 그가 3연임을 성공시켜 종신집권을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이미 예상됐던 것이다. 따라서 이번 당대회의 최고 승자는 서열 2위로 급부상한 리창 상하이 당서기일 것이다.
그는 40여 년 동안 동부 연안의 지방을 전전해 중앙 무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시 주석의 후원에 힘입어 일약 서열 2위로 급부상했다. 서열 2위는 총리를 맡는다.

리창 상하이시 당서기가 23일 열린 20기 1차 전체회의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이유진 기자
리창 상하이시 당서기가 23일 열린 20기 1차 전체회의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이유진 기자

그렇다면 가장 손해를 본 인물은 누구일까? 바로 한 때 후진타오 전주석의 분신으로 ‘리틀 후진타오’라고 불렸던 후춘화 부총리(59)일 것이다.

그는 7명으로 구성되는 최고 권력기관인 정치국 상임위는 물론 25명으로 구성되는 정치국 위원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지난 19대 당대회 때만 해도 그는 정치국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부총리로도 임명됐었다. 그 때만 해도 어느 정도 계파 안배가 이뤄졌었기 때문이다.

그는 후진타오, 리커창을 잇는 공청단파의 적자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 주석이 상임위를 모두 자파로 채움으로써 그의 설자리는 없었다.

한때 그는 가장 잘나가는 차세대의 대표주자였다. 40대에 광둥성 당서기가 되는 등 대부분 최연소 기록을 깨는 ‘기록 제조기’였다.

당 대회 직전만 해도 시 주석이 탕평책 차원에서 후춘화를 총리로 기용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었다. 그러나 시 주석이 자신의 측근인 리창을 선택함에 따라 후춘화는 정치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그를 분신이라고 여겼던 후진타오 전주석은 지난 22일 당대회 폐막식에서 돌연 퇴장했다. 여러 설이 나오고 있지만 자신이 후계로 지목한 후춘화가 정치국원에도 진입하지 못하자 격노했기 때문이라고 외신들을 보고 있다.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이 22일 (현지시간) 베이징 인민 대회당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20차 당 대회서 폐막식이 끝나기 전에 퇴장을 하며 시진핑 주석, 리커창 총리와 얘기를 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이 22일 (현지시간) 베이징 인민 대회당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20차 당 대회서 폐막식이 끝나기 전에 퇴장을 하며 시진핑 주석, 리커창 총리와 얘기를 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후진타오는 지난 2012년 당대회 때 그를 정치국원에 진입시켜 시진핑 이후의 중국 지도자임을 대내외에 공표했었다.

이른바 격대지정이었다. 격대지정은 차차기 후보를 미리 지정해 미래에 대비케 하는 것이다.

그랬던 그가 종신집권을 추구하는 시진핑에 밀려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sino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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