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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5·18 유공자 명단 왜 공개 안하냐고?"

[5·18 정신적 손해배상 ㊸] 극우보수, 명단 공개 집착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과 5·18 연관…무지와 왜곡"

(광주=뉴스1) 박준배 기자, 이수민 기자 | 2022-10-23 14:37 송고
편집자주 '80년 5월'은 현재 진행형이다. 40여년이 흘렀으나 피해자들은 그날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원인 모를 질병과 트라우마, 우울증 등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정신병원에 입원하거나 자살한 피해자들도 많다. 최근 이들에 대한 정신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뉴스1광주전남본부는 5·18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정신적 손해 배상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점검한다.
자유대한호국단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지난 2019년2월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5·18 유공자명단 공개를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News1DB
자유대한호국단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지난 2019년2월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5·18 유공자명단 공개를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News1DB

"억울하고 자랑스러우면 모든 명단 공개하라."
"이해찬은 진짜 5·18 유공자냐?"

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지 42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왜곡과 폄훼는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유공자 명단 공개를 둘러싼 논란이다.

극우 보수세력을 비롯해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등에선 5·18 관련 내용만 나오면 '유공자 명단 공개'를 주장한다. 폭도나 가짜 유공자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국민 혈세가 들어갔으니 알권리가 있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법원은 이미 유공자 명단과 공적 사항은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공개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에 해당한다고 했다. 국가보훈처도 공공기관의 정보공개 관련 법률에 따라 5·18 유공자 명단은 비공개 자료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보수 진영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유공자 명단 공개'에 집착한다.

23일 5·18기념재단 등에 따르면 '가짜 유공자' 논란의 배경에는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과 5·18민주화운동의 연관 관계에 대한 무지가 자리 잡고 있다.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은 1980년 당시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가 20여명을 북한의 사주를 받아 5·18을 일으켰다는 혐의로 군사재판에 회부한 사건이다.

신군부는 80년 5월17일 비상계엄조치를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동시에 '사회 불안을 조성한' 혐의로 김 전 대통령과 문익환 목사, 고은 시인 등 26명을 연행했다.

이튿날인 18일, 광주는 신군부에 항거하며 민중항쟁의 시작을 알렸고 이를 진압한 신군부는 5·18 주동자로 김 전 대통령을 지목, 내란 혐의로 기소했다.

1981년 대법원은 김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했지만 미국을 비롯한 외국의 사형 중단 압력이 거세짐에 따라 전두환은 그의 형량을 무기징역, 이어 20년형으로 감형했다.

김 전 대통령은 결국 1982년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미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1995년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김 전 대통령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재심 청구와 명예 회복이 이뤄졌다. 김 전 대통령은 2003년 재심을 청구해 2004년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다.

5·18기념재단 관계자는 "신군부가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확대 선포한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각계의 민주인사들을 소요 배후 조종 혐의로 체포한 것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진상"이라며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과 5·18이 연결되다 보니 관련 인사들이 유공자로 등록돼 있는데 극우 세력들은 이에 대해 무지하거나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극우 세력이 그렇게 요구하는 '유공자 명단'은 사실 이미 공개돼 있다.

광주 서구 쌍촌동 5·18기념공원 지하에 조성된 '추모승화공간' 벽면에는 5·18 유공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명패가 가나다순으로 정렬돼 있다.

 광주 서구 쌍촌동 5·18기념공원 추모승화공간에서 시민들이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관련자 명단이 새겨진 명판을 바라보고 있다.© News1
 광주 서구 쌍촌동 5·18기념공원 추모승화공간에서 시민들이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관련자 명단이 새겨진 명판을 바라보고 있다.© News1

벽면의 길이는 22m, 높이 2.2m로 총 4296명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지난 2005년까지 5·18 민주화운동으로 보상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후로 추가된 명단은 아직 수록하지 않았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5·18민주유공자는 5·18부상자 2766명, 5·18희생자 1550명, 5·18사망자 또는 행방불명자 167명 등 모두 4483명이다.

추모승화공간 벽면에 있는 전체 명패는 4360개로 64개는 비어있다. 1999년 5·18 기념공원 조성 당시 3870개에서 2005년 490개의 명패가 추가됐다.

빈 명패는 성(姓)씨 구분을 위해('ㄱ'에서 'ㄴ'으로 넘어가는 공간 사이) 1칸씩 띄어 놓은 22곳, 'ㅎ' 이후 잔여 공간에 20곳(1999년 기준 2곳, 2005년 기준 18곳)이 있다. 또 2000년 검찰 조사에서 서류 조작 등으로 5·18 보상금을 허위로 수령했다 적발된 22명의 자리도 비어있다.

'문재인' 등 눈에 띄는 이름도 있다. 2019년에 '문재인 대통령이 5·18 유공자'라는 가짜뉴스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과는 동명이인으로 확인됐다. 유공자인 문재인씨는 1938년 1월 출생으로, 1953년 1월생인 문 전 대통령과 무려 15년 차이가 난다. 문씨는 현재 광주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익환·명노근 등 민주인사와 이해찬·설훈·이협·손주항씨 등 전·현직 정치인들의 명패도 있다.

극우 인사들은 1980년 5월 당시 광주에 있지도 않았던 이들이 어떻게 유공자가 됐느냐고 문제 제기한다.

80년 당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회학과에 재학하며 서울대 복학생협의회장을 맡았던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전 대표는 서울대 복학생 회의에서 '제2 광주사태' 유발을 선동한 혐의를 받았다. 앞서 설명한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이다.

이 전 대표는 80년 9월17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가 2003년 재심에서 무죄받았다.

보훈처의 5·18 민주 유공자의 대상 요건은 △5·18 당시 사망한 사람 또는 행방불명된 사람 △5·18로 부상당한 사람 △그 밖의 5·18로 희생한 사람 등이다.

이 전 대표는 5·18 유공자 대상 요건 중 하나인 '그 밖의 5·18 민주화운동으로 희생한 사람'에 포함된다.

5·18 유공자는 광주와 전남·북 뿐만 아니라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인사라면 거주지와 상관없이 등록심의를 받을 수 있다.

광주에 있지 않았더라도 대구 또는 경북 등지에 있던 누군가 5·18의 피해자라면 유공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5·18 유공자 지정 관련 법률은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과 '5·18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두 가지다.

이들 법에는 5·18 관련자 규정에서 지역적으로 '광주'와 '전남'으로 한정하거나, 해당 기간을 1980년 5월18일부터 언제까지라고 특정하지 않는다. 80년 5·18 당시 신군부는 전국적으로 사전검속을 통해 민주인사를 구속했다. 지역이나 기간을 한정하지 않은 이유다. 

보수세력은 유공자 명단이 공개돼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번엔 공적 사항을 공개하라고 요구한다.

보훈처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5·18유공자의 공적이 포함된 명단은 비공개 자료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물론 일부 예외도 있다. 독립유공자 명단은 공훈록 자료로 공적을 기록·보존하고 연구자료와 선양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1986년부터 책으로 발간하고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참전유공자'는 등록하고자 하지만 증거를 찾기 어려운 참전자들이 전우나 참전 사실을 증명해줄 수 있는 인우보증을 찾고자 할 때 편의를 위해 이름으로 검색할 수 있도록 했다. 

결론적으로 5·18 유공자 명단뿐 아니라 모든 유공자 명단이나 공적내용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기본적으로 비공개인 셈이다. 

2018년 12월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시민 102명이 보훈처를 상대로 낸 5·18 유공자 명단 공개 소송에서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으니 공개해선 안 된다"고 판시했다.

교도소 습격사건으로 대변되는 '폭도'나 '북한군 침투설' 등의 주장은 이미 전두환 회고록 논란을 통해 '허위 사실'로 드러났다. 

법원은 전씨의 회고록에서 '시민들이 무기고를 먼저 습격했다며 계엄군이 집단 발포가 정당했다'는 취지의 서술에 대해 허위라고 판단하고 7000만원의 배상과 해당 표현을 삭제하지 않고는 회고록의 출판·배포를 금지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에 대한 과한 비난과 이유 없는 날조, 왜곡으로 실제 유공자들은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5·18기념재단 관계자는 "유공자 신청 시 수차례 심사와 확인 절차가 있어 '가짜 유공자'가 존재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며 "오히려 5·18 당시 행방불명이 됐는데 시신을 찾지 못해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5·18 피해자들은 보수단체의 '명단 공개' 주장으로 아직도 상처를 받고 있다.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지난 40여 년간 받아온 괄시와 오해, 선입견 등으로 '낙인' 찍힐까 두려워하는 이들도 많다. 

5·18민주유공자 최필호씨(63)는 지난해까지 고향을 숨기고 살았다. 그는 80년 당시 입대를 앞두고 시위에 참여했다가 계엄군에게 폭행당한 피해자다.

광주에 대한 선입견과 5·18은 '폭도'들의 소행이라는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평생 출신지를 숨기고 살았다. 실제로 광주 출신이고 5·18에 참여했다고 해 차별받은 기억도 많다.

그는 "광주 출신인 걸 알면 선입견을 품고 볼까 봐, 불이익 받을까 봐 충청도가 고향이라고 속이고 살았다. 너무 죄스럽고 창피한 일이다"고 말했다.

이어 "5·18에 참여했던 전적 때문에 휴가가 취소되는 등 힘든 군 생활을 했다. 전역 후에는 공무원 준비를 했으나 함께 시위에 참여했던 지인들로부터 면접 등에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이야길 듣고 꿈을 접어야 했다"며 "전부 5·18 '왜곡' 때문이다. 이제라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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