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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착오인데 과태료 1억 내라뇨"…중개사들 울리는 '계약체결일'

가계약금 입금일 계약일로 안 썼다고 '거짓신고' 처분…수천만원 과태료
"피해 없는데 가혹"…홍보 부족·기준 미비에도 '무조건 처분' 계속

(서울=뉴스1) 박승희 기자 | 2022-09-20 06:00 송고 | 2022-09-20 09:49 최종수정
사진은 24일 서울의 한 부동산. 2022.8.24/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사진은 24일 서울의 한 부동산. 2022.8.24/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가계약금을 받고 열흘 뒤에 계약서를 썼어요. 거래 신고는 계약서 작성 날짜를 기준으로 했죠. 그랬더니 가계약금 입금 날을 기준으로 거래 신고를 해야 했다고, 과태료 2000만원을 내라고 하네요. 다운거래, 명의신탁도 아니고 착오로 신고가 늦어진 것뿐인데요. 제가 이득을 취한 것도 없고, 피해를 본 사람도 없습니다. 정말 억울합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대표 A씨. 최근 그는 지난 2020년 여름 중개한 11억원 상당의 아파트 계약과 관련해 약 2200만원의 과태료 통지를 받았다. 그는 최종 계약서를 쓴 날짜를 기준으로 잡고 27일째에 거래 신고를 했다. 하지만 구청은 그 일주일 전인 가계약금 입금일이 실질적인 거래계약 체결일이라고 판단했다.
구청 해석에 따라 A씨의 거래 신고 날짜는 법에서 정한 기한(30일)보다 일주일가량 늦어졌다. 구청은 예고통지서에서 A씨가 계약 체결일을 가계약금 입금일로 쓰지 않았단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단순 지연이 아닌 '거짓 신고' 대상으로 처분되면서 A씨가 내야 할 과태료는 수십만원에서 2000만원대로 늘었다.

이의 신청을 낸 A씨는 "또 다른 중개사는 5건 거래로 1억원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며 "이 문제로 전국이 난리"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가계약금 입금일' 계약일로 안 썼다고 '거짓 신고' 처분…수천만원 과태료
20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부동산거래신고법) 3조 1항에 근거해 거래 당사자는 거래계약 체결일부터 30일 이내에 거래 신고를 해야 한다. 2006년 대법원 판례와 지난해 5월 법제처 해석에서는 '가계약금을 입금한 날짜'가 사실상 거래 계약이 체결된 날짜라고 결론 내렸다. 다만 판례에선 금액 입금에 계약의 주요 부분까지 합치가 돼야 한단 단서를 달았다.

현장에서는 가계약금 입금일이 아닌 실제 계약서를 쓴 날짜를 기준으로 거래 신고를 하는 일이 잦았다. 법률에 '계약체결일'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고, 공인중개사법에선 대상물을 확인 후 계약서를 작성한 뒤 당사자에 교부해야 계약이 체결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공인중개사는 "공인중개사법은 민법과 상법의 특별법 성격이라 이를 우선해서 본다"고 말했다.

대법원 판례와 법제처 해석이 있긴 했지만, 일선 홍보도 부족했다. 혼선이 이어지자 국토교통부는 지난 3월에야 공인중개사협회를 통해 거래신고 기준일에 대한 홍보를 요청했다. 하지만 협회는 사단법인에 불과해 회원들에게 강제할 권리가 없다. 협회가 아닌 행정관청에 공문을 내려 지침으로 공지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명확한 공지도 없이 단속과 처분은 이어졌다. 신고가 단순 지연이면 기간과 거래가격에 따라 500만원 이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문제는 다수 공인중개사가 계약 체결일 문제로 '거짓 신고' 대상자로 분류됐다는 것이다. 거짓 신고는 대금 착오가 없는 경우 2%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서울 평균 아파트 가격은 약 12억8000만원 수준이다. 한 건만 걸려도 수천만원이다.

서울 강북구와 동대문구, 세종시 등 전국에서 가계약금 입금일자를 계약 체결일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천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은 사례가 이어졌다. 그중에는 매매대금, 잔금지급시기 등 중요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도 없이 가계약금만 낸 예도 있었다. 하지만 행정관청은 이 사례마저도 가계약금 입금일을 계약 체결일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대법원 판례 단서 조항을 등한시한 셈이다.

가계약금과 본계약금의 지급일이 다른데, 이를 한꺼번에 계약금으로 기재했다는 이유를 들어 거짓 신고로 판단한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1억원짜리 매물에 1000만원을 가계약금을 내고 나머지를 계약일에 입금한 경우, 통상 중개사는 매매계약서에 계약금으로 한꺼번에 1억원을 기재한다. 전체 금액은 오류가 없는데, 이를 상세히 적지 않았다고 수천만원의 과태료를 받게 된 것이다.

◇"명문화된 원칙 없고 형식적 행정 처분만"…공인중개사협회, 국토부에 정책 검토 요청 계획

중개사들의 성토가 이어지자 공인중개사협회도 대응에 나섰다. 협회는 조만간 국토교통부에 공문을 보내 거래신고 관련 정책 검토를 요청할 계획이다. 한 관계자는 "명문화된 법 원칙의 부재로 행정의 법 집행을 예측하거나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형식적인 행정처분 절차로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를 방관하는 것은 개인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업계에서는 가계약금 입금일이 아닌 '계약서 작성일'로부터 30일 이내 신고로 지침을 바꾸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가계약 후 거래 신고를 위해서는 거래 당사자의 개인 정보와 자금조달계획서 등이 필요한데, 일반적으로 가계약금 입금 땐 해당 내용 제공을 꺼리기 때문이다. 가계약 입금일을 계약일로 정해야 한다면, 중개사들에게 개인정보 요구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외에도 부동산거래계약 신고서 서식을 개정해 '계약서 작성일'을 추가하는 방안도 제안됐다. 현재 서식에는 계약체결일과 중도금, 지급일, 잔금 지급일만 기재하도록 돼 있고 작성 방법에도 계약체결일에 대한 명확한 작성 기준이 없다. 관련 설명도 추가해 혼선이 없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전국 지자체 대상 공문 발생도 필요하단 요구도 나온다.

서울 성동구청과 서대문구청, 화성시 동탄출장소 등 일부 관청은 관련 처분을 '거짓 신고'에서 '착오로 인한 지연신고'로 변경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처분을 유지하며 행정 쟁송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거래 관련 단속이 강화되면서 다툼은 늘어날 전망이다. 경기도는 연말까지 부동산 거짓신고에 관해 특별 조사를 하겠단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처분청에서 과태료 처분 전 사실관계를 조사할 의무가 있음에도, 형식적인 소명자료 요구에 그칠 뿐 실질적인 위반행위에 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법원 판례, 국토부 권고와 지자체 처분의 괴리가 큰 만큼 행정권 남용이 없도록 제도가 수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seungh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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