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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칼럼] 다시 생각하는 회사기회유용금지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22-09-20 07:00 송고 | 2022-09-20 15:35 최종수정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주식회사는 상법의 규율을 받는다. 그런데 상법에는 임의규정이라고 불리는 조문들이 있다. 회사는 정관에 상법과 다르게 규정해서 적용을 벗어날 수 있다. 예컨대 상법은 집중투표제도를 시행하라고 하면서 정관으로 다르게 정할 수 있다고 한다. 주주들이 모여서 2/3 다수로 우리는 시행하지 않겠다고 하면 된다.
회사의 이사들이 자기 개인의 이익보다 회사 이익을 우선하라는 충실의무는 임의규정이 아닌 강행규정이다. 정관으로 다르게 할 수 없다. 충실의무는 회사법의 핵심 중 핵심이다. 경제학자들도 그 가치를 실증적으로 검증했다. 충실의무의 법리는 기업가치를 높이고 자본시장을 발달시키며 회사를 지속가능케 한다.

충실의무 중 한 가지가 이사의 회사기회유용금지다. 회사의 이사라는 지위에 있어서 들어오거나 포착한 사업 기회는 개인적으로 쓸 수 없고 반드시 회사에 먼저 전달해야 한다. 주주들이 2/3 찬성으로 정관에 우리 회사는 이사가 회사 기회를 개인적으로 유용해도 좋다고 써도 무효다.

상법은 제397조의2에서 ‘회사의 기회 및 자산의 유용금지’라는 제목 하에 이사는 이사회의 승인(2/3) 없이 현재 또는 장래에 회사의 이익이 될 수 있는 회사의 사업 기회를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해 이용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다. 회사의 사업 기회는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거나 회사의 정보를 이용한 사업 기회, 회사가 수행하고 있거나 수행할 사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업 기회 등이다. 사외이사는 회사기회와 별 관련이 없기 때문에 이 규정은 사실상 사내이사들에게만 적용된다.

우리가 이 제도를 수입한 미국에서도 회사기회유용금지는 강행규정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런데 이 원칙을 임의규정으로 전환하는 법률들이 속속 제정되고 있다. 2001년에 오클라호마주가 그런 법률을 제정한 이래 사실상 연방 회사법이라고 불리는 델라웨어주법, 그리고 텍사스를 포함한 7개 주가 동참했다. 전미변호사협회도 지지한다. 그에 따라서 법원 판례도 변경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미시간대 라우터버그 교수와 컬럼비아대 에릭 톨리 교수의 실증연구에 따르면 약 200개가 넘는 상장회사가 임의규정화했다고 공시했는데 원칙 자체는 그대로 두되 회사 사정에 따라 주주들이 배제할 수 있게 해야 기업가치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 말부터 자본시장에는 기업의 구조를 개편하는 여러 기법들이 등장해 널리 활용되기 시작했다. 회사 분할, 사업부 IPO, 벤처캐피탈거래, 사모펀드거래, 기업지배구조개편 등을 통해 회사들간 관계가 다면적이 되었고 창업자, 대주주를 포함한 주주들의 지분 관계도 매우 복잡해졌다. 회사를 경영하는 주주들의 경우 이제 관계기업들 내에서 여러 형태와 규모의 이해상충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사직 겸직과 복수 회사 지분보유 때문이다. 또 관련되는 각 회사의 사업 내용이 중복되는 경우도 많다. 우리나라 대기업집단 오너들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예컨대 이사가 동시에 두 회사의 지분을 가지고 있고 겸직을 하고 있는데 두 회사의 사업이 일부 중복된다면 충실의무를 어떻게 이행해야 할까. 전망이 좋은 투자처가 나타난 경우 두 회사 중 어떤 회사가 투자하도록 해야 맞을까. 어딘가에 ‘충실’해야 한다는 개념은 애당초 나누어질 수 없는 것이다. 지분비율이나 보상 수준 같은 기준이 적용될 수 없다. 결국 경영판단의 문제로 귀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쪽 회사의 소수주주가 이를 경영판단이 아닌 회사기회유용의 문제로 보고 법률적 이의를 제기한다면 두 회사 모두 기회를 포기해야 맞는가. 즉, 투자나 구조개편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상법 제397조의2가 규율하는 행동은 제397조가 규율하는 이사의 경업금지나 제398조가 규율하는 이사의 자기거래와 비교할 때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다. 거기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은 법률적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 관련되는 개인과 기업의 투자와 구조개편에 장애 요소가 되면 해당 기업은 물론이고 사회에 비용을 발생시킨다. 미국에서 이를 임의적 원칙으로 전환하는 추세가 발생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현행법도 이사회 승인으로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사회 승인 사항으로 사전 포착되기 어려워 후유증이 생길 거래도 있을 것이다.

회사기회유용금지를 폐지하자는 말이 아니다. 명백한 일감 몰아주기같은 폐습에 적용되어서 책임을 묻는 데 사용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충실의무 일반원칙으로 다루면 된다. 운용이 어려운 제도는 회사의 주주들이 그 채택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법률적 불확실성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기업가치의 저하를 막을 것이다. 타당하고 정직한 경영판단에 대해 불필요한 시비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이 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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