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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상함 다 사라져"…커밍아웃 후 22년, 홍석천의 지금 [N인터뷰]②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길"
"어린 성소수자 친구들의 '덕분이다' 인사에 위로"

(서울=뉴스1) 윤효정 기자 | 2022-09-20 08:15 송고 | 2022-09-20 18:43 최종수정
방송인 홍석천/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방송인 홍석천/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성소수자가 나오는 리얼 관찰 예능 '메리퀴어'를 기획한다는 제작진의 말에 홍석천은 "너희들 정말 미쳤구나"라고 했단다.

22년 전 커밍아웃을 하고 대표적인 게이 연예인으로 살며 세상이 바뀌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몸소 겪었기 때문. 조마조마한 마음에 방송 전까지 어디에 말도 못 했다던 홍석천에게 '메리퀴어'는 수많은 출연작 중의 하나가 아니었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하고, 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20대 초중반의 성소수자들과 만나 그들의 일상, 삶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꿈꾸는 미래를 공유했다. 그들에게 '선생님' 소리를 듣고 절친 신동엽에게 '꼰게이'(꼰대 게이)라는 놀림도 받지만 홍석천은 새로운 별명이 싫지 않다.

"'선생님' 덕분이다"라는 말에 "지난 속상함이 다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는 홍석천.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커밍아웃이었지만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또 다른 누군가가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음을 다시 깨달았다.

더디지만 변화는 계속 되고 있었다. 홍석천 역시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도록 더 공부를 하고 싶단다. '톱게이로 살다가 할게이로 저물다'라는 말을 먼 훗날, 자신의 작은 비석에 새길 수 있었으면 한다는 홍석천과 나눈 이야기다. 
방송인 홍석천/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방송인 홍석천/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N인터뷰】①에 이어>

-20년 전 커밍아웃하며 큰 상처를 받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서 다음 세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때는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다.

▶커밍아웃을 후회하지 않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후회는 안 한다. 물론 가족들을 먼저 설득하고 준비를 했어야 하나 하는 조금의 후회는 있다. 그리고 일부 동성애자가 비난할 때 후회랄까, 안타까움이 있었다. 내가 (게이의) 대표자가 되는 것 같아서 싫었던 거다. 마음이 참 많이 아팠다. 그런데 '메리퀴어'에서 어린 친구들이 자신들의 정체성과 이야기를 용감하게 할 수 있었던 것에 내 역할이 크다고 말해줬을 때 속상한 것이 한 번에 녹아내리는 것 같더라.

-부모님이나 가족과의 갈등이 '메리퀴어'에 나오기도 한다. 어떻게 봤나.

▶(출연자의) 부모님 반응을 보는데 내가 그 출연자가 된 것 같더라. 왜 내 누나가 그렇게 울었고, 어머니가 그렇게 기도를 하셨나 다시 생각했다. 그때 나는 어머니가 왜 나를 이해 못하실까 싶었는데, (출연자들의) 어머니가 내 어머니의 느낌이더라. 짠하기도 하고 부모님의 마음을 더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20년 전, 커밍아웃을 한 서른살의 홍석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그 당시만 하더라도 유명인이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하는 건 목숨을 내놓고 하는 것이라는 분위기였다. 내가 용돈 7만원 가지고 상경해서 10년이 흘렀을 때다. 지금 생각하면 마흔살이면 안 했을 것 같다. 세상이 돌아가는 걸 더 알고, 더 많은 걸 쥐고 있었더라면 못했을 거다. 서른살의 나는 (다 잃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으로 결심했었다. 그렇게 많은 걸 가지고 누리고 있다가  한순간에 잃고 나니까 공허했고, 뭘 할 수가 없으니까 정말 힘들었다. 살다 보니까 이렇게 시간이 지났다. 과거를 돌아보며 '그때 내가 (커밍아웃을) 안 했더라면 지금의 행복과 자유를 누리고 살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렇게 나쁜 결정은 아니었다.
방송인 홍석천/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방송인 홍석천/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악플 문제 등은 더 심해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큰 이벤트가 있으면 변화가 생긴다. 88올림픽이 그랬고, 월드컵도 있었다. 나는 21세기가 시작되는 2000년에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커밍아웃을) 했는데, 바뀐 것이 없었다. 그때 사람들의 생각이 바뀐다는 건 정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걸 깨달았다. 이 벽을 넘는 사람들, 이야기가 계속 나오면 변화가 생긴다. 앞으로도 많은 변화와 변화를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나오길 바라고, 비극적인 일이 안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런(소수자) 문제를 악용하는 공격도 있고 마음이 아픈 일들이 많다. 소수자의 인권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내는 분들이 많다. 나는 또 다른 차별을 만들 수 있는 언론 문제나 사회 문제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모두는 아니어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을 거다.

-대표적인 게이 유명인으로 산다는 건 어떤가. 부담도 될 것 같다.

▶나도 내 마음대로 살아보고 싶기도 하고,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고 싶기도 한다. 그런데 자체검열이랄까. 부담감이나 책임감 조심성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물론 그건 연예인이라는 직업, 주변을 생각하면서 더욱 조심하는 것도 있다.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해보고 싶나.

▶하나의 이미지만 부각되는 것보다 '부캐'(부캐릭터)처럼 내가 아닌 다른 존재로 보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한다. 부캐 콘텐츠도 고민하고 있고, 또 기존에 해보지 않은 내용의 기획, 아이디어도 구상 중이다.
방송인 홍석천/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방송인 홍석천/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나중에 '할게이'(할아버지 게이)가 됐을 때는 어떤 세상이었으면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행복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정체성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꿈꾸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자연스럽게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예전에 네덜란드에 여행을 가서 조그마한 비석을 봤다. 네덜란드의 소수자 운동을 한 사람을 기리는 비석이라고 하더라. 나도 언젠가 할게이가 되고, 더 시간이 흐르고 그 이후 이태원 구석에 조그만 비석으로 있지 않을까. '톱게이로 살다가 할게이로 저물다' 라며.(웃음) 생각하니 좀 슬프다.

-인터뷰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항상 하는 말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한다. 열린 마음 열린 시선을 가지고 살아야지 함께 살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거다. 소수자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귀 기울여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ich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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