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서울 지하철 2호선 개찰구 앞에서 무주택자인 지인 A 씨가 난처한 질문을 던졌다. 집을 사기 위해 시기를 저울질 중이라는 그는 실물경기가 침체된 만큼 집값이 오르기 어려울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나는 짧게 "글쎄요" 라고 답했지만, 사실 부동산 시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부동산 가격은 실물경기 이외에도 변수들이 함께 작용하기 마련이다. 즉 정신분석학의 '중층결정'처럼 경제·금융·심리 요인이 얽히며 집값과 거래량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최근처럼 실물경기와 집값이 엇갈리는 현상이 벌어질까? 그 이유를 3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부동산이 투자상품화하면서 금리 등 금융변수의 영향을 받는 게 가장 큰 요인이다. 특히 실수요보다 투자수요가 시장을 주도하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아파트 시장은 더욱 그렇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2%였던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올해는 0.8%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경제가 고성장하지 않으면 집값도 오르지 않는다는 생각은 도식적 사고에 가깝다.
다시 말해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지 않는 한 성장률 둔화만으로는 집값 하락으로 연결 짓는 것은 무리다. 오히려 통화당국이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시중 유동성이 늘어나면, 부동산 가격은 상승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이 올해 들어 2차례나 기준금리를 낮췄다. 실물경기보다 다른 변수의 무게감이 더 커지면 '경제성장률=집값' 등식이 항상 맞지 않는다.
물론 지방 산업도시처럼 실수요 중심 시장은 지역 실물경기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울산이 지방 5대 광역시 중 유일하게 아파트 실거래가가 1.3% 오른 것도 중공업과 자동차 산업 호조의 영향이다.
지역과 상품 간의 양극화도 괴리현상의 또 다른 요인이다. 강남과 같은 인기 지역 집값은 급등하지만, 비인기 지역은 찬바람만 분다. KB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서울 강남구 아파트값은 8% 정도 올랐지만, 전국 평균으로는 하락(-0.29%)했다. 전국 아파트값 통계만 놓고 보면 지인 A 씨의 인식도 일정 부분 타당하다. 우리는 매일 강남 아파트 뉴스만 접하니 자신도 모르게 '인지의 포로'가 되어 전국 아파트 가격이 상승한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부동산 시장이 실물경기와 따로 움직이는 데는 심리요인도 배제할 수 없다. 부동산 시장은 팔 할이 심리라고 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부동산 시장에서 심리의 핵심은 불안 심리다. 불안 심리가 팽배하면 부동산 가격은 경제 펀더멘털을 이탈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예컨대 7월 3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시행을 앞두고 막판 매수세가 몰리고 있다.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 돈을 빌려 집을 사기 어려울 것이라는 불안감과 조급증이 겹쳤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부동산 시장은 그 나라 경제 흐름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실물경기는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는 여러 가지 요인 중 한 요인일 뿐이다. 그래서 부동산 시장을 볼 때는 균형추가 필요하다. 보고 싶은 대로 보기보다는, 여러 변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다만 실물경기와 지나치게 괴리되면 거품이 아닌지도 합리적 의심을 해야 한다. 부동산이 영원히 실물경기 흐름과 따로 놀 수는 없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