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 인근 한양도성의 슬픈 상처. 그러나 끈질긴 역사ⓒ News1 최수아 디자이너107년 전의 돈의문 <위> 107년 전 돈의문이 있는 거리 <중간> 돈의문을 철거한 뒤 <아래> 돈의문이 있었던, 길 끝의 정동사거리.>돈의문에서 인왕산 방향으로 첫 한양도성의 모습. 600년 역사의 검은 돌에서는 흙냄새가, 최근 쌓은 하얀 석축과 윗돌에서는 비린내가 나는 듯하다.홍난파 가옥. 1930년대에 지어진 서양식 주택으로 근대문화유산이다. 왼쪽에 인왕산이 보인다.<위> 인왕사 오르막의 담벼락에 그려진 인왕산 호랑이. <아래> 국사당. 본래 남산 정상에 있던 조선의 사당(祠堂)인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신궁을 지으면서 이곳으로 옮겨졌다.선(禪)바위. 검은 바위에 기다란 구멍이 숭숭 난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공포영화에 나오는 가면 같기도 하다.인왕산 정상 스케치. 사람 발자국으로 가운데 바위가 움푹움푹 하얗게 패여 있다.인왕산에서 바라보는 전망. <위> 한양도성의 산줄기 안에 서울시내가 얌전하게 담겨있는 모습. 멀리 외곽의 산줄기들이 서울을 둥그렇게 호위하고 있다. <아래> 인왕산에서 바라보는 북한산과 오른쪽의 백악산. 가까이 기차바위와 한양도성.숲속 쉼터와 윤동주 문학관. <왼쪽> 인왕산 숲속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숲속 쉼터’. <오른쪽> 윤동주문학관의 내부 통로에서 하늘을 향해 찍은 사진. 낮에는 새파란 하늘이지만, 밤에는 ‘별 헤는 밤’이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다.창의문. 개성의 자하동처럼 경치가 좋은 곳에 있다 하여 흔히 자하문(紫霞門)으로 불렀다.<왼쪽> 창의문에서 백악마루까지 기나긴 돌계단. <오른쪽> 백악산 정상은 나무에 가려 전망이 없다.청운대 스케치. <위> 멋드러진 소나무 사이의 전망터에서 휴식하고 있는 사람들. <아래> 백악산으로 소풍 나와 경복궁과 남산을 바라보는 어린이들.곡장에서 바라본 풍경. 가운데 백악산 정상에서 뻗어내린 성곽이 용의 지느러미처럼 다가서는 가운데, 남산 뒤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불룩하고, 오른쪽 인왕산 뒤로 서해바다 위 하늘이 노랗게 물들고 있다.숙정문. 풍수지리상 나쁜 기운이 도성에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문을 닫고 소나무들을 심었다. 그 나무들이 커서 운치있는 풍경이 되었다.성북동의 음지와 양지. 북향인 북정마을엔 그늘이 들었고, 건너편의 고급 주택지와 고층아파트에는 햇빛이 따갑다.<위> 와룡공원 입구에서 올려다 본 가을과 한양도성. <아래> 한양도성의 슬픔. 와룡공원 입구 도로에서 혜화문까지의 한양도성은 건물의 축대와 담장으로 간신히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관련 키워드신용석레인저가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