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뉴스1) 송화연 기자 = 주주총회가 열리는 매년 3월이 되면 '한국의 실리콘 밸리' 판교가 들썩인다. 주주총회장을 찾는 주주들이 늘어나면서다.
그러나 29일 열린 카카오의 주주총회장은 '판교'가 아닌 '제주도'. 소액주주만 191만8337명(2021년 말 기준)에 달하는 카카오는 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섬'에서 주주총회를 열까. 정답은 간단하다. 카카오 본사가 '제주도'에 있기 때문이다.
◇서울→제주 이동 결정한 다음의 '즐거운 실험'
카카오가 처음부터 제주에 본사를 둔 건 아니었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설립한 아이위랩(카카오의 전신)은 경기도 성남시에 둥지를 틀었다. 카카오 본사가 제주에 위치하게 된 건 2014년 합병한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영향이 컸다.
다음커뮤니케이션 본사도 애초 서울에 위치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이 본사를 지방으로 이전하기로 마음먹게 된 건 2003년, 한 신입사원의 지각에서 시작됐다. 당시 최고경영자(CEO)였던 이재웅 대표는 팀을 돌며 오전 8시30분 마다 조찬 미팅을 했다. 하루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신입사원이 조찬 미팅에 30분 이상 지각했다.
신입사원은 "인천 부평에서 버스를 타고 강남으로 출근하는 데 2시간이나 걸린다. 9시 정상 출근이야 괜찮지만 8시에 출근하려면 5시30분에는 집에서 나와야 한다"며 "오늘은 버스를 한 번 놓치는 바람에 늦었다"고 해명했다.
당시 다음커뮤니케이션의 근무 시간은 총 8시간. 일부 임직원이 출·퇴근(이동)에만 4시간을 쓴다는 것은 '쉴 시간이 없다'는 의미와 같았다. 이 대표는 그날로 조찬 간담회 운영을 중단하고 방안 강구에 나섰다.
때마침 직장 보육시설 마련에 대한 임직원의 목소리도 나왔다. 서울에 보육시설을 마련하더라도 경기도에서 이동하는 직원의 어린 자녀까지 불편을 겪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고민에 빠진 다음커뮤니케이션 경영진들은 '서울에선 임직원 개개인이 행복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영진은 '창의적인 인재 확보를 위해 창의적인 업무 공간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다양한 지역을 선택지로 뒀다. 그 결과, 제주도가 가장 합리적이라는 데 뜻이 모였다. 제주도는 물리적으론 서울과 가장 멀지만 서울에서 비행기로 50분이면 다다를 수 있고, 국제 공항을 보유하고 있다. 자연 친화적인 섬으로 임직원이 심적 여유를 갖기에도 좋다.
그렇게 2004년 4월, '즐거운 실험'이라는 프로젝트 이름과 함께 다음커뮤니케이션 인터넷진흥화연구소 직원 16명이 제주도 애월읍에 위치한 한 펜션에서 근무를 시작한다. 같은 해 6월에는 미디어본부 40명이 제주로 내려가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빌딩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일부 임직원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한 결과, 직원의 60%가 제주 지역 내 업무 환경에 만족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심지어 직원 대다수는 '업무 집중도는 서울에 비해 높아졌다'고 응답했다. 그렇게 2005년 2월, 제주시 오등동에 연면적 1500평 규모의 다음커뮤니케이션 글로벌 미디어센터가 열렸다. 해당 건물엔 직원 220명이 입주했다.
미디어센터에는 개인 업무공간과 함께 회의실, 체력단력실, 무료 직원 식당·카페·빨래방, 농구장 등이 마련됐다. 개인이 근무지를 결정할 수 있고, 서울·제주 간 커뮤니케이션이 이메일과 메신저, 전화 등으로 원활하게 이뤄지면서 임직원 만족도는 80%까지 치솟았다.
이후 다음커뮤니케이션은 2012년 3월, 첫 번째 사옥인 '스페이스닷원'을 마련했다. 이날 주주총회가 열린 곳이다. 이어 2014년 4월에는 두 번째 사옥인 '스페이스닷투'와 '스페이스닷키즈'(직장보육 시설)도 문을 연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이때를 기점으로 '즐거운 실험'을 종료하고 '즐거운 정착'을 선언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워케이션(여행지에서 업무와 휴식을 동시에 하는 새로운 근무 형태)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카카오는 무려 18년 가까이 앞선 시도로 임직원 만족도를 끌어올린 셈이 됐다.

◇카카오, 제주 지역 상생 비즈니스 지속한다
제주도가 제공하는 경제적 혜택도 카카오가 제주도에 본사를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다.
제주도는 경제자유특구로 지역 이전 기업에 법인세 절감, 보조금 지원 등의 혜택 등을 제공한다. 카카오뿐 아니라 넥슨 자회사 네오플 등이 제주에 사옥을 두는 이유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제주도 내에서 사업체수는 6만6098곳으로 이중 정보통신업, 과학 및 기술 서비스 사업체는 1732곳에 달한다.
지역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도 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도 효과적이다. 제주발전연구원에 따르면 다음커뮤니케이션이 본사를 제주로 이전한 후 10년간 발생한 경제적 파급효과는 △생산유발효과 1890억원 △부가가치유발효과 1042억원 △고용유발효과 2705명 규모로 분석됐다.
카카오는 제주에 본사를 유지하며 지역과의 상생 비즈니스 추구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이의 일환으로 900억원을 투입해,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에 카카오 제2데이터센터를 조성하고 있다. 제2데이터센터는 오는 2024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제2데이터센터 규모는 제1데이터센터(안산)보다 작지만 클라우드 사업과 기반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중요 데이터를 본사가 직접 관리하는 전초 기지로서의 상징성을 갖는다.
카카오 관계자는 "본사가 제주에 있는 만큼 제주는 핵심 데이터 보관과 인프라 관리에 용이한 지역이라고 판단했다"며 "이같은 데이터를 토대로 제주를 기반으로 한 사업을 육성하고 지역과의 상생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할 것"이라고 말했다.
hwaye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