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은퇴 시즌2] 노후의 때, 인과냐 창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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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 삶은 어느 때나 많은 일을 겪지만 노후에는 특히 그러하다. 생로병사 중 세 가지가 속해 있기 때문이다. 무작정 활기차게 살라고 하지만 더 옹색하게 만들 따름이다. 노후의 때를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가 중요하다.

주성치가 주연을 맡은 '서유기'의 월광보합과 선리기연 편은 기나긴 세월의 인과를 보여 준다. 500년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일어나는 손오공과 자하의 사랑의 인연 이야기다.

월광보합 때문에 갑자기 500년 전으로 돌아온 손오공은 500년 후의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하가 가진 월광보합을 노린다. 자하는 우연히 자신의 보검을 단숨에 뽑아 버린 지존보(손오공)가 낭군임을 확신한다. 손오공은 처음에는 거부하지만 결국 자신도 자하를 사랑함을 깨닫고 자하도 손오공이 자신을 사랑함을 알게 된다.

하지만 바로 이 때 손오공과 우마왕과의 싸움에서 자하가 죽고, 손오공은 성이 무너질 때 월광보합으로 다시 500년 후의 세상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세상의 성 위에는 500년 전의 인연으로 인간 지존보와 자하가 성 위에서 사랑 싸움을 하고 있지 않은가. 손오공은 자신을 몰라 보는 자하를 보면서 무상함을 깨닫고 속세를 떠나 삼장과 함께 길을 간다.

동양의 인과설은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한다. 단 한번의 삶에 구속되지 않고 오백년, 천년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치 우주의 물리법칙처럼 인과의 법칙이 그물처럼 촘촘하게 엮여 있어서 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촘촘한 인과의 그물로 중력장처럼 출렁이며 수천년 수만년을 이어가는 광대한 스케일이다. 그래서 노후의 때도 순간일 따름이다.

또 다른 세계관이 있다. 성경에 나오는 욥의 이야기다. 욥은 신을 경건하게 섬기고, 나쁜 일은 일체 않고, 고아와 과부를 도우는 의인이었다. 어느 날 사탄이 신에게 찾아 가서 당신에 대한 욥의 마음이 진심인지 시험해보자고 한다. 많은 축복을 주었으니 당신을 섬기는 것이지 그 축복을 모두 빼앗아가면 신을 버릴 것이라고 한다. 신은 사탄에게 ‘욥의 생명만은 건들지 말라’고 한 뒤 욥을 사탄의 손에 맡긴다.

그때부터 욥의 고난은 시작된다. 재산을 잃고 자식마저 모두 잃고 자신은 문둥병에 걸려 성밖으로 쫓겨나 기와장으로 진물이 난 곳을 벅벅 긁는 처지가 되었다. 욥의 세 친구가 찾아와서 이르기를 ‘자네가 신에게 잘못 한 것이 있어 신이 벌을 내리는 것이니 뉘우치고 회개하라’고 한다. 욥은 완강히 반대한다. 자신은 결코 그런 일이 없다고. 욥은 신에게 따진다. 도대체 내가 뭘 잘 못했냐고.

마침내 신이 폭풍 가운데서 나타나서 답을 주는 대신 욥에게 물음을 던진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았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바다가 모태에서 터져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 네가 바다의 샘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밑으로 걸어 다녀 보았느냐,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수탉에게 슬기를 준 자가 누구냐’ 질문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욥은 이들 물음에 답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욥이 이 질문들을 통해 깨달은 것은 그가 섬기는 신의 본질은 ‘창조’라는 것이다. 인과에 얽매이는 게 아니었다. 잘 못하면 벌을 주고 잘 하면 상을 주는 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모두를 뛰어 넘어 창조를 하는 신이었다. 그래서 성경의 맨 처음은 창세기(Genesis) 즉 창조로 시작한다. 욥기의 관점은 인과가 아닌 창조인 것이다.

그래서 신이 원하는 인간의 삶 역시 벌 받고 상 받는 데 얽매이는 게 아니라 끝 없이 자신을 변화시키며 창조해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게 신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이다. 인과와 창조라는 장황한 얘기를 꺼낸 것은 노후의 때를 인과로 볼 것인지 창조로 볼 것인지를 생각해보기 위함이다. 인과로 본다면 젊을 때 만들어 놓은 수 많은 업보의 결과를 기다린다.

한편으로 이번 생에서 끝나지 않기에 나를 계속 발전시키고 선업을 쌓아간다. 아무리 늦더라도 늦지 않은 것이다. 인과의 그물이 촘촘하고 거대하지만 한 발씩 한 발씩 변화시켜 가고자 하는 자세다.

반면에 창조로 본다는 것은 나를 계속 새로이 만들면서 삶의 종착에서 만들어질 나의 완성된 모습을 향해 가는 것이다. 그것은 디지털의 ‘0’과 ‘1’의 변화처럼 점프하듯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이 때 삶은 점묘화(點描畵)가 된다. 내가 찍은 점이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몰랐는데 삶의 종착역에서 점이 쌓이면서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그림을 보고 감탄하는 격이다.

노후의 때가 의미 없다고 여겼는데도, 그래도 내가 노후에 찍은 점들이 나의 그림을 완성시켜 주는 것이다. 그 점을 찍지 않았으면 내 삶의 그림은 영원히 못 볼 수도 있다. 인과와 창조. 노후에 어떤 관점을 택할지는 자유다. 인과로 이어질 다음의 삶을 위해 죽기 전까지도 지혜를 쌓고 선업을 쌓는 것이다. 혹은 창조의 관점으로 매일 나를 만들어가고 완성해가는 것이다.

성경의 지혜서라고 일컫는 전도서에는 신은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라는 구절이 있다. 인과나 창조의 관점이 보는 삶은 모든 때가 중요하고 아름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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