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정청래식 정치적 명분이 놓친 민생
조선 16대 왕 인조(仁祖)가 오랑캐라 부르던 후금(청)의 군주를 향해 피가 날 정도로 이마를 찧으며 조아린 사건을 삼전도의 굴욕이라 부른다. 이를 국제 정세를 오판한 채 친명배금 외교를 고집한 인조의 실정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역사 해석이다.그러나 정치의 영역으로 바라보면 다른 시각도 있다. 인조는 광해군의 친금배명 외교를 비판하며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친금을 패륜으로 규정하며 즉위한 그에게 친금은 곧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부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