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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침전 지키던 덕수궁 광명문 80년 만에 제자리 찾았다

고종 국장행렬의 시작점…3·1절 맞아 준공식

(서울=뉴스1) 여태경 기자 | 2019-03-01 08:00 송고
덕수궁 광명문 현재 모습.(문화재청 제공)

일제에 의해 이전된 덕수궁 광명문이 80년 만에 제자리를 찾았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1일 정 청장,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덕수궁 광명문 제자리 찾기' 준공식을 개최한다.

광명문은 원래 고종의 침전인 함녕전의 정문으로, 고종은 1919년 1월 21일 함녕전에서 승하했다. 고종 승하 후에 함녕전은 고종의 관을 모셔둔 빈전으로 활용됐고 광명문은 국장행렬의 시작점이 됐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덕수궁 유원지화 계획에 따라 1938년 창경궁 자격루(국보 제229호)와 흥천사명 동종(보물 제1460호)의 전시를 위해 중화문의 서남측으로 이전됐다.

덕수궁은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경술국치인 1910년까지 13년간 대한제국의 궁궐로 사용됐다. 당시는 중명전과 옛 경기여고가 있던 자리까지 포함된 넓은 궁역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1919년 고종이 승하하면서 덕수궁의 궁역이 여러 가지 이유로 잘려나가고 궁궐의 전각들은 헐렸다.

고종의 국장 당시 광명문의 모습.(문화재청 제공)

이에 문화재청은 덕수궁 제 모습 찾기의 일환으로 광명문 이전을 위해 2016년 발굴조사한 결과 광명문과 배치형태가 동일한 건물지 1동을 확인하고 지난해 6월 이전 공사를 시작, 12월 공사를 마무리했다.

또 광명문 내부에 보관되어 있던 유물 가운데 창경궁 자격루는 대전의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로 옮겨 보존처리하고 흥천사명 동종은 부피와 중량을 감안해 경복궁 궐내각사지에 임시 처리장을 만들어 보존처리 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보존처리를 완료하는 대로 자격루는 국립고궁박물관으로, 흥천사명 동종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적정 장소를 검토해 이전 설치할 계획이다.


ha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