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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도 배상도 없었다"…英여왕 애도 못하는 아프리카 식민지 국가들

엘리자베스 2세, 70년 재임 수차례 아프리카 찾았지만 민감한 과거사는 미결 현안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2022-09-13 15:13 송고 | 2022-09-13 15:27 최종수정
지난 9일(현지시간)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서거 소식이 1면을 장식한 데일리 네이션 등 케냐 일간지가 나이로비 거리에서 판매되는 모습. 2022. 9. 9. © AFP=뉴스1 © News1 최서윤 기자
지난 9일(현지시간)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서거 소식이 1면을 장식한 데일리 네이션 등 케냐 일간지가 나이로비 거리에서 판매되는 모습. 2022. 9. 9. © AFP=뉴스1 © News1 최서윤 기자

지난 8일 96세를 일기로 영면에 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바라보는 아프리카 지역 대영제국 식민지 국가들의 착잡한 심정을 12일(현지시간) AFP 통신이 조명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1926년 출생·1952년 즉위)은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존속한 대영제국 시대 마지막 통치자다. 노예제와 식민주의 등 과거사에 사과하고 배상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들 국가의 입장이다.
보도에 따르면 케냐와 나이지리아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우간다에 이르는 아프리카 지역 대영제국 식민지 국가에서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사망이 과거사에 대한 민감한 논쟁을 되살리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 유럽 국가들이 일삼은 식민지 역사와 그 시기 자행된 범죄에 대한 배상,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 박물관에 수년간 보관 중인 아프리카의 도난 유물 반환 논란 등이 순식간에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생전인 2003년 12월 6일 나이지리아를 방문해 올루세군 오바산조 당시 대통령의 환대를 받는 모습. © AFP=뉴스1 © News1 최서윤 기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생전인 2003년 12월 6일 나이지리아를 방문해 올루세군 오바산조 당시 대통령의 환대를 받는 모습. © AFP=뉴스1 © News1 최서윤 기자

무함마드 부하리 나이지리아 대통령과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여왕의 서거 소식에 애도를 표했지만, 대다수 아프리카인들에게는 엘리자베스 2세 집권 첫 10년간 일어난 사건들을 포함해 식민지 시대 비극을 더 많이 떠올린다고 AFP는 전했다.
케냐의 경우 1963년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하기까지 8년간 최소 1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영국은 '마우마우 반란'으로 불리는 이 시기 '학대' 피해자 5000여 명에게 보상금 약 2000만 파운드(약 321억 원) 지급에 합의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부친 조지 6세의 서거에 따라 즉위하던 해인 1952년 케냐를 방문한 바 있다.

케냐 최대 일간 데일리 네이션은 지난 주말 사설에서 "여왕은 케냐인에 대한 잔혹한 탄압과, 상호 이익이 되는 관계라는 뒤섞인 유산을 남긴다"고 평했다.

매체는 "유일한 죄라면 독립을 요구한 것뿐인 국민에게 자행된 잔학 행위는 케냐 역사의 피비린내 나는 한 장이 됐다"면서 "영국과의 관계는 유용했지만, 그런 잔학한 행위들을 잊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나이지리아 아부자에 위치한 영국 고등판무관사무소에는 2022년 9월 9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추모하는 영국 국기(유니언 잭)가 게양됐다. 2022. 9. 9. © AFP=뉴스1 © News1 최서윤 기자
나이지리아 아부자에 위치한 영국 고등판무관사무소에는 2022년 9월 9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추모하는 영국 국기(유니언 잭)가 게양됐다. 2022. 9. 9. © AFP=뉴스1 © News1 최서윤 기자

나이지리아는 1958년 런던제헌의회 결정으로 1960년 독립했다. 이 같은 독립 결정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역할이 분명히 있었다는 평가는 존재한다.

그러나 1967년부터 1970년까지 이어진 '비아프라 내전' 기간 여왕 치하 영국이 군부를 지원한 사실도 똑똑히 기억한다. 이 기간 100만 명 이상이 기아와 질병으로 사망했다.

나이지리아계 미국인 우후 아냐 교수는 카네기 멜런대 교수는 트위터에 비아프라 내전과 관련, "누군가 내게 '정부가 후원한 집단학살을 감독한 군주'를 경멸하는 것 외에 뭐라도 표현하길 바란다면…차라리 별에 소원을 비는 것"이라고 적었다.

남아공의 반응도 다르지 않다.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여왕을 '비범한 인물'이라고 칭송했지만, 야당인 경제자유전사운동(EFF)은 1948년 백인 기반 국민당 정부 수립 후 실시된 극단적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를 지적했다.

EFF는 "우리는 엘리자베스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다"며 "엘리자베스의 죽음은 우리에게 이 나라와 아프리카 역사의 매우 비극적인 시기를 떠오르게 한다"고 밝혔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남편 에든버러 공작 필립이 생전인 2007년 11월 4일 우간다 방문 중 한 초등학교를 찾은 모습. © AFP=뉴스1 © News1 최서윤 기자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남편 에든버러 공작 필립이 생전인 2007년 11월 4일 우간다 방문 중 한 초등학교를 찾은 모습. © AFP=뉴스1 © News1 최서윤 기자

우간다는 20세기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공화국이 되기 이전 분요로 왕국이 대영제국에 흡수된 역사가 있다. 당시 마지막 분요로 통치자 오무카마 카발레가는 대영제국에 의해 폐위돼 세이셸로 추방됐다.

우간다 전직 정보국장으로 현재 정치 분석가로 활동하는 찰스 르보무샤나는 "여왕은 과거 영국 식민지의 결속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우간다를 포함해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부정의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우간다 관광협회는 분요로 유물 300여점 반환을 영국 등 외국 박물관에 요청할 위원회를 지난달 소집했다.

우간다 반정부 성향의 작가 찰스 온양고-오보는 트위터에 "많은 아프리카 독재자(장기 집권 지도자)들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70년 치세를 자신들의 집권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했다"고 비판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 주재 영국 고등판무관 관저에서 지난 9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추모하는 조문서가 마련된 모습. 2022. 9. 9. © AFP=뉴스1 © News1 최서윤 기자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 주재 영국 고등판무관 관저에서 지난 9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추모하는 조문서가 마련된 모습. 2022. 9. 9. © AFP=뉴스1 © News1 최서윤 기자

케냐 출신의 무코마와 응구기 코넬대 부교수는 트위터에 "만약 여왕이 노예제와 식민주의에 대해 사과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앗아간 수백만 명의 목숨을 배상할 것을 왕실에 촉구했다면, 나도 (여왕의 죽음에) 인간적 도리를 다해 아파했을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여왕 생전 사과와 배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응구기 교수는 "케냐인으로서 나는 아무 느낌도 없다"며 "이 연극은 터무니없다"고 말했다.


sab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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