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만나는 북한 문화유산] ② 평양성-국보유적 제1호

내우외환(內憂外患) 극복책으로 수도 이전
도성의 흔적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여전히 평양의 상징

편집자주 ...북한은 200개가 넘는 역사유적을 국보유적으로, 1700개 이상의 유적을 보존유적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지역적 특성상 북측에는 고조선과 고구려, 고려시기의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지난 75년간 분단이 계속되면서 북한 내 민족문화유산을 직접 접하기 어려웠다. 특히 10년 넘게 남북교류가 단절되면서 간헐적으로 이뤄졌던 남북 공동 발굴과 조사, 전시 등도 완전히 중단됐다. 남북의 공동자산인 북한 내 문화유산을 누구나 직접 가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하며 최근 사진을 중심으로 북한의 주요 문화유산을 소개한다.

본문 이미지 - 금수산 정상에 있는 최승대에서 내려다 본 청류벽(淸流壁). 평양성의 외성이 있던 금수산 동쪽은 대동강과 접해 있고, 예로부터 ‘청류벽’이라고 부르는 절벽으로 이뤄져 천혜의 요새를 이루고 있다. 위쪽으로 북한이 새로 세운 감찬정이 보인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0.24.ⓒ 뉴스1
금수산 정상에 있는 최승대에서 내려다 본 청류벽(淸流壁). 평양성의 외성이 있던 금수산 동쪽은 대동강과 접해 있고, 예로부터 ‘청류벽’이라고 부르는 절벽으로 이뤄져 천혜의 요새를 이루고 있다. 위쪽으로 북한이 새로 세운 감찬정이 보인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0.24.ⓒ 뉴스1
본문 이미지 - 평양성 북성의 을밀대에서 청류정으로 가는 길에 세워져 있는 국보유적 제1호 표식비. 북한은 1990년대 후반 국보유적 제1호를 대동문에서 평양성으로 바꿨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0.24. ⓒ 뉴스1
평양성 북성의 을밀대에서 청류정으로 가는 길에 세워져 있는 국보유적 제1호 표식비. 북한은 1990년대 후반 국보유적 제1호를 대동문에서 평양성으로 바꿨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0.24. ⓒ 뉴스1

본문 이미지 - 모란봉 을밀대에서 내려다 본 만수대언덕의 김일성 동상과 조선혁명박물관. 고구려 때 평양성에 도읍하면서 왕이 기거하던 궁이 있던 자리로 추정된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0.24.ⓒ 뉴스1
모란봉 을밀대에서 내려다 본 만수대언덕의 김일성 동상과 조선혁명박물관. 고구려 때 평양성에 도읍하면서 왕이 기거하던 궁이 있던 자리로 추정된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0.24.ⓒ 뉴스1

본문 이미지 - 20세기 초에 그린 평양성도. 6세기 고구려의 수도성으로 건설된 이후로 1,300여 년 동안 번성한 평양성의 전경이 비교적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2020.10.24.ⓒ 뉴스1
20세기 초에 그린 평양성도. 6세기 고구려의 수도성으로 건설된 이후로 1,300여 년 동안 번성한 평양성의 전경이 비교적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2020.10.24.ⓒ 뉴스1
본문 이미지 - 북한이 조사결과 밝혀진 평양성의 평면도. (미디어한국학 제공)ⓒ 뉴스1
북한이 조사결과 밝혀진 평양성의 평면도. (미디어한국학 제공)ⓒ 뉴스1

본문 이미지 - 일제강점기 대동강변 대동문(오른쪽), 연광정과 평양성 내성구역의 건물과 기와집들. 지금은 대동문과 연광정을 제외하고 모두 사라졌다. 그나마 대동문의 서쪽에 있던 평양성 내성의 서문 정해문의 문루는 1927년에 모란봉으로 옮겨져 ‘청류정’이란 이름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0.24.ⓒ 뉴스1
일제강점기 대동강변 대동문(오른쪽), 연광정과 평양성 내성구역의 건물과 기와집들. 지금은 대동문과 연광정을 제외하고 모두 사라졌다. 그나마 대동문의 서쪽에 있던 평양성 내성의 서문 정해문의 문루는 1927년에 모란봉으로 옮겨져 ‘청류정’이란 이름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0.24.ⓒ 뉴스1
본문 이미지 - 일제강점기에 평양의 중심부에 조성된 일본인 거리 야마토마치(大和町)의 모습. 일본식 건물이 들어서고, 전차선이 부설되면서 전통가옥과 평양성의 성곽들이 많이 허물어졌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0.24.ⓒ 뉴스1
일제강점기에 평양의 중심부에 조성된 일본인 거리 야마토마치(大和町)의 모습. 일본식 건물이 들어서고, 전차선이 부설되면서 전통가옥과 평양성의 성곽들이 많이 허물어졌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0.24.ⓒ 뉴스1

본문 이미지 - 고구려 때 처음 세워진 사찰 영명사 대웅전 옆 건물에 들어선 일제강점기의 차집(料亭).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평양 기생들의 화보사진은 상당수 이곳에서 촬영된 것이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0.24. ⓒ 뉴스1
고구려 때 처음 세워진 사찰 영명사 대웅전 옆 건물에 들어선 일제강점기의 차집(料亭).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평양 기생들의 화보사진은 상당수 이곳에서 촬영된 것이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0.24. ⓒ 뉴스1
본문 이미지 - 일제강점기에 대동강변 고구려 성벽 위에 들어선 조선요리집 동일관의 모습. 현재 옥류관이 있는 자리로, 지금은 성벽 자체가 대부분 유실됐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0.24. ⓒ 뉴스1
일제강점기에 대동강변 고구려 성벽 위에 들어선 조선요리집 동일관의 모습. 현재 옥류관이 있는 자리로, 지금은 성벽 자체가 대부분 유실됐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0.24. ⓒ 뉴스1

본문 이미지 - 1955년 경 모란봉 최승대에서 촬영한 대동교, 모란봉과 평양 중심부의 모습. 6·25전쟁으로 대부분의 건물과 산림이 파괴되고, 청류정, 대동문 등의 문루들도 피해를 입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0.24. ⓒ 뉴스1
1955년 경 모란봉 최승대에서 촬영한 대동교, 모란봉과 평양 중심부의 모습. 6·25전쟁으로 대부분의 건물과 산림이 파괴되고, 청류정, 대동문 등의 문루들도 피해를 입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0.24. ⓒ 뉴스1

본문 이미지 - 평양성 북성의 동암문 바깥 성벽 전경. 현재까지 고구려 성벽이 가장 잘 남아 있는 지역이다. 암문은 평상시에는 막아두었다가 왜적이 침입할 때마다 적정을 탐지하거나 적을 기습하는 등 유사시에만 사용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0.24. ⓒ 뉴스1
평양성 북성의 동암문 바깥 성벽 전경. 현재까지 고구려 성벽이 가장 잘 남아 있는 지역이다. 암문은 평상시에는 막아두었다가 왜적이 침입할 때마다 적정을 탐지하거나 적을 기습하는 등 유사시에만 사용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0.24. ⓒ 뉴스1
본문 이미지 - 평양성 내성의 북문인 칠성문과 바깥에 세워진 옹벽의 모습.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0.24.ⓒ 뉴스1
평양성 내성의 북문인 칠성문과 바깥에 세워진 옹벽의 모습.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0.24.ⓒ 뉴스1

본문 이미지 - 주체사상탑 전망대에서 본 평양 중심부의 모습. 사진 가장 오른쪽 멀리 보이는 곳이 평양 천도 후 고구려의 첫 수도성(대성산성과 안학궁)이 있던 대성산이고, 중앙의 방송탑 앞쪽으로 보이는 산이 모란봉으로 천도 후 평양성의 외성(외성)이 있던 지역이다. 사진상 대동강가에 있는 유람선에서 멀리 높게 보이는 류경호텔 앞쪽 보통강을 동쪽으로 모란봉 중턱 모란봉극장까지를 에워싼 성벽이 내성(內城)구역, 김일성광장부터 북서쪽에 있는 해방산과 창광산을 포괄하는 지역이 중성(中城)구역에 해당한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0.24.ⓒ 뉴스1
주체사상탑 전망대에서 본 평양 중심부의 모습. 사진 가장 오른쪽 멀리 보이는 곳이 평양 천도 후 고구려의 첫 수도성(대성산성과 안학궁)이 있던 대성산이고, 중앙의 방송탑 앞쪽으로 보이는 산이 모란봉으로 천도 후 평양성의 외성(외성)이 있던 지역이다. 사진상 대동강가에 있는 유람선에서 멀리 높게 보이는 류경호텔 앞쪽 보통강을 동쪽으로 모란봉 중턱 모란봉극장까지를 에워싼 성벽이 내성(內城)구역, 김일성광장부터 북서쪽에 있는 해방산과 창광산을 포괄하는 지역이 중성(中城)구역에 해당한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0.24.ⓒ 뉴스1
본문 이미지 - 만수대언덕에서 바라다 본 모란봉 전경. 고구려 때 평양성의 북성이 있던 곳으로, 도로가 나서면 성벽이 끊어졌지만 도로 오른쪽으로 평양성곽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중앙에 보이는 건물이 모란봉극장으로 1948년 4월 김구(金九), 김규식(金奎植) 등 남측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남북연석회의가 열렸던 곳이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0.24.ⓒ 뉴스1
만수대언덕에서 바라다 본 모란봉 전경. 고구려 때 평양성의 북성이 있던 곳으로, 도로가 나서면 성벽이 끊어졌지만 도로 오른쪽으로 평양성곽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중앙에 보이는 건물이 모란봉극장으로 1948년 4월 김구(金九), 김규식(金奎植) 등 남측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남북연석회의가 열렸던 곳이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10.24.ⓒ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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