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 사이 괴리감…노장과의 '아름다운 이별'이 어려운 이유

"더 뛸 수 있다"는 선수, 미래 도모해야하는 구단 간 입장 차이
박병호·김강민, 선수 말년 이적…이승엽·이대호 사례 쉽지 않아

KT 위즈에서 지난 2년 간 활약했던 박병호. /뉴스1 DB ⓒ News1 김민지 기자
KT 위즈에서 지난 2년 간 활약했던 박병호. /뉴스1 DB ⓒ News1 김민지 기자

(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프로스포츠에서 구단과 선수의 '아름다운 이별'은 말처럼 쉽지 않다. 어찌 됐든 성적을 내야 하는 구단의 입장에선 '정든 선수'라 할 지라도 개인 성적이 저조하면 냉정한 판단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그간 많은 업적을 쌓은 베테랑, 팀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라면 더욱 어려운 문제가 된다. 단순히 선수와 구단의 관계뿐 아니라 선수단 분위기와 팬들의 시선까지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지난 한 주 프로야구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는 박병호(38)의 거취였다. 박병호는 KBO리그 최다인 6차례의 홈런왕에 통산 384홈런을 쏘아 올린 리그를 대표하는 '레전드' 홈런 타자다. 그런 그가 KT 위즈를 떠나 삼성 라이온즈에 새 둥지를 틀었는데, 그 과정이 시끌벅적했다.

박병호는 올 시즌 팀 내 입지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시즌 초반 성적이 썩 좋지 못했고 그 사이 '만년 유망주' 문상철의 잠재력이 폭발했다. 1할 후반~2할 초반의 타율에 장타도 잠잠했기에 문상철이 주전으로 나서는 일이 많아졌다.

4월부터 박병호는 KT에 트레이드를 요구했다. 하지만 트레이드는 좀처럼 진전이 되지 않았고, 지난주 구단에 현역 은퇴의 뜻을 전달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박병호가 '방출'을 요구했다는 내용으로 알려졌고, KT는 부랴부랴 다시 트레이드를 알아봤다. 결국 삼성 라이온즈와 카드가 맞아 오재일과 맞바꾸는 1대1 트레이드가 성사됐다.

삼성으로 이적한 박병호가 29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팀 훈련을 마친 뒤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병호는 삼성 등번호 59번을 받았다. 2024.5.29/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삼성으로 이적한 박병호가 29일 오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팀 훈련을 마친 뒤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병호는 삼성 등번호 59번을 받았다. 2024.5.29/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트레이드가 성사된 이후 이강철 KT 감독은 박병호를 격려했고, 박병호도 KT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훈훈한 마무리로 보인 모습이다.

하지만 이번 트레이드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박병호와 KT의 이별은 썩 아름답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박병호도 KT도 서로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적지 않았지만, 최대한 좋게 매듭지으려는 인상이 짙었다.

박병호의 입장에선 시즌 초반의 부진으로 주전 출전이 급격히 줄어든 것이 탐탁지 않았다. 대타보다는 주전으로 경기에 꾸준히 나가면 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주어진 기회가 성에 차지 않았다.

여기에 '대체자' 문상철의 성적도 좋았기에, 다른 팀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싶었을 터다. '은퇴'를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트레이드가 매끄럽게 성사되지 않았을 경우의 이야기였다.

반대로 KT 입장에서도 박병호가 서운할 수밖에 없었다. 시즌 초반 팀 성적이 부진한 상황에서, 성적이 좋은 선수를 두고 베테랑의 부활만을 바랄 수는 없었다. 더구나 이강철 감독은 베테랑 선수들을 선호하는 감독 중 하나로, 박병호가 부진한 와중에도 적지 않은 기회를 줬다.

또 출장 기회가 줄었다고 해서 트레이드, 나아가 은퇴 선언까지 한 것 또한 아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KT로선 문상철과 박병호를 번갈아 투입하며 시너지를 내는 그림이 가장 이상적이었겠지만, 박병호는 이를 원하지 않았다.

올 시즌 KT 위즈에서 입지가 줄어든 박병호. /뉴스1 DB ⓒ News1 이동해 기자
올 시즌 KT 위즈에서 입지가 줄어든 박병호. /뉴스1 DB ⓒ News1 이동해 기자

KT와 박병호가 동행한 기간은 2년 남짓이었지만, 서로에게 고마운 존재이기도 했다. 박병호에게 KT는 FA 직전 부진했던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준 구단이었고, KT 역시 팀 타선을 지탱하며 투자 효과를 확실히 누리게 해준 선수였다.

그럼에도 마지막은 균열이 난 채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사실 베테랑 선수가 선수 말년 구단과 마찰을 일으키는 경우는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선수는 여전히 활약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구단은 미래를 도모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당장 이번 오프시즌에도 김강민이 SSG에서 한화로 이적하는 과정이 떠들썩했다. SSG가 2차 드래프트를 앞두고 35인 보호 명단에서 김강민을 제외했고, 한화가 곧바로 지명한 것.

선수와 구단의 직접적인 마찰은 아니었지만, 35인 명단에서 제외한 것은 구단 입장에선 사실상 '전력 외'로 판단했다고 봐야 했다. 결국 SSG의 상징적인 선수였던 김강민은 24번째 시즌을 새로운 팀에서 맞이해야 했고, 일부 팬들은 SSG 구단을 비판하기도 했다.

선수들이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마지막은, '박수칠 때 떠나는' 장면일 것이다. 여전히 정상급의 기량을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 냉정하게 판단해 물러나는 것이다.

2022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성대한 마무리를 한 이대호. /뉴스1 DB ⓒ News1 김진환 기자
2022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성대한 마무리를 한 이대호. /뉴스1 DB ⓒ News1 김진환 기자

이승엽과 이대호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승엽은 만 41세였던 2017년, 0.280의 타율과 24홈런 87타점을 기록했다. 은퇴 경기에서 연타석 홈런을 쏘아 올리기도 했다.

이대호도 만 40세였던 2022년, 0.331의 타율과 23홈런 101타점으로 맹활약했다. 은퇴 시즌에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최초 사례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선수가 이승엽과 이대호 같은 마지막을 기대할 수는 없을 터다. 충분한 기량을 가지고 있음에도 선수에서 물러나고 싶은 선수는 많지 않고, 구단 입장에서도 '상징성'만으로 안고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은 너무도 크다. 노장 선수와의 '아름다운 이별'이 너무 어려운 이유다.

starburyn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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