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피식대학·강형욱 계속되는 '나락쇼'[기자의눈]

'나쁜 놈' 나락 보내기 '분노'만 남아…구조적 문제 살펴야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나락 퀴즈쇼' (피식대학 유튜브 갈무리)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나락 퀴즈쇼' (피식대학 유튜브 갈무리)

(서울=뉴스1) 이기범 기자 = "당신도 언젠가 나락에 간다."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이 제작하던 '나락 퀴즈쇼'의 시작 멘트다. 해당 콘텐츠는 게스트에게 민감한 질문을 던지며 유명인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현상을 풍자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리고 피식대학 본인들도 이를 몸소 실천하듯 지역 비하 논란과 함께 나락에 갔다.

경상도를 여행하는 콘텐츠에서 영양군을 무시하는 발언이 문제가 됐다. 지역 특산물인 블루베리 젤리를 놓고 "할머니 살 뜯는 맛"이라는 희대의 맛 평가를 내놓자 구독자 18만명이 빠졌다.

피식대학뿐만이 아니다. 연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나락쇼'가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개통령'으로 불리던 반려견 훈련사 강형욱이 논란이 됐다. 전 직원들의 갑질·폭언 의혹을 제기한 뒤 한동안 침묵이 이어지면서 이는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강형욱이 반박에 나서자 상황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직전에 있었던 연예기획사 하이브와 산하 레이블 어도어 민희진 대표의 공방도 이 같은 상황의 연장선에 있다. 지난해에는 웹툰 작가 주호민의 특수교사 아동학대 고소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당신들도 나락에 갈 수 있다"는 말처럼 게스트만 달리한 채 쇼가 지속되는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분노는 무대에 오른 대상에 집중된다. 분노가 발화되는 지점은 대상마다 다르지만 분노의 기승전결은 보편적이다. 누군가 논란이 되면 사람들은 분노하고, 나락으로 떨어트린다. 그리고 해당 사건이나 인물은 금기 대상, '캔슬 컬처'로 지정된다. 분노를 쏟아낸 사회는 다시 다른 분노의 대상을 찾는다. 그리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피식대학 논란을 통해 논의를 해볼 법한 약자를 향한 개그가 가진 사회적 함의, 강형욱 사건에서 볼 수 있는 중소기업의 근태 관리를 둘러싼 갈등, 민희진 사태로 촉발된 엔터테인먼트사의 이윤 창출 방식, 주호민 사건으로 드러난 특수 교사의 근무 여건과 장애 아동에 대한 인권 침해 문제 등 개개의 사건이 갖는 구조적인 문제는 모두 휘발되고 '나쁜 놈' 나락 보내기만 남는다.

"그 사람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최근 구설에 오른 한 시민단체의 대표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구조가 아닌 개인을 문제 대상으로 삼으면 누구나 그 자리에서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얘기다. 개인이 문제냐 구조가 문제냐 하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말처럼 결론이 쉽게 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상황이 개인을 단죄하는 데 기울어져 있는 건 분명하다.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과 개선 없이 개인에 대한 반짝 단죄로 그친다면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오늘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내가 나락쇼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결국엔 '전국민 나락쇼'가 될 뿐이다.

K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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