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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재력가 부모 살해 후 통곡한 유학파…영화 '공공의 적' 소재

흥청망청 생활 꾸짖자 범행 '패륜아 대명사' 박한상 [사건속 오늘]
흔적 안 남기려 알몸으로 범행…장례식장 '슬픔 연기' 효자로 오인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2024-05-19 00:00 송고 | 2024-05-19 10:12 최종수정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훗날 명재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서울형사지법 합의 23부 재판장 시절이던 1994년 11월 5일 "사형 선고를 피할 명분을 아무리 찾아봐도 도저히 못 찾겠다"며 고뇌에 가득 찬 사형 선고문을 읽었다.

법이 인간의 존엄성을 앗아갈 권리가 있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김 전 총리마저 사형 선고를 내릴 수밖에 없게 만든 인물은 패륜아의 대명사 박한상(1971년생)이었다.
◇ 패륜아의 대명사 박한상…영화 '공공의 적' 모티브

박한상은 1994년 5월 19일 서울 강남 삼성동 자기 집에서 부모를 살해한 뒤 불을 질렀다.

이후 태연히 부모 장례식에 참석, 통곡하는 연기를 했다가 경찰에 체포된 뒤 섬뜩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노려봐 전 국민을 놀라게 했다.
이후 박한상은 '패륜아' 하면 떠오르는 이름이 됐으며 2002년 강우석 감독의 영화 '공공의 적' 속 펀드 매니저 조규환(이성재가 연기)의 실존 모델 노릇까지 했다.

◇ 한약상으로 수백억대 자산가 된 아버지…못된 아들 유학까지 보냈지만

박한상은 서울에서 손꼽히는 한약 도매상을 운영해 수백억 원 재산을 모은 아버지 덕에 어린 시절부터 풍족하게 자랐다.

강남 8학군에서도 내로라하는 ○○고를 다닌 박한상은 공부에는 관심 없이 돈을 물 쓰듯 하고 다녀 부모 속을 썩였다.

아버지는 아들을 바로잡아 보기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유학까지 보냈으나 사람 되기는커녕 도박에 빠져 3700만 원(현재 가칯 3억 원대)의 빚을 졌다.

사건 발생 4달 전인 1994년 1월 귀국해 '차 살 돈을 달라'며 1만 8000달러를 받아 미국으로 다시 갔지만 금방 다 날려 버렸다.    

박한상을 모티브로 제작한 2002년 영화 공공의적. 형사 설경구가 부모를 죽인 이성재를 쫒는 이야기를 그렸다. (공공의적 갈무리) © 뉴스1 
박한상을 모티브로 제작한 2002년 영화 공공의적. 형사 설경구가 부모를 죽인 이성재를 쫒는 이야기를 그렸다. (공공의적 갈무리) © 뉴스1 

◇ 야타족 멋있다, 나도…외제 차 사달라 했다가 거부당하자 '아버지 재산 모두 내가'

아버지 몰래 1994년 4월 귀국,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제3금융권에서 돈을 빌린 박한상은 2년 전 군 복무(방위) 때 맛본 '야타족' 생활에 빠져 들었다.

이 소식을 접한 아버지는 아들을 심하게 꾸짖은 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용돈 받을 생각 마라'고 통보했다.

외제 차를 뽑아 강남 바닥을 누빌 생각이었던 박한상은 아버지 말에 격분 '아버지 재산을 미리 차지해야겠다'라는 엉뚱한 생각을 품고 말았다.

◇ 범행 전날 흉기, 휘발유 등 준비하고 집으로 들어가

박한상은 5월 13일 서울 중구의 철물상 등을 돌아다니며 흉기, 휘발유 등을 구입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당시 박한상의 삼성동 집은 지상 1, 2층을 수리하는 바람에 박한상과 부모는 지하에 있는 방에서 임시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때 박한상의 이종사촌 이 모 군(당시 13세)은 부모가 부처님 오신 날(5월 18일)을 맞아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삼성동에 와 있었다.

박한상은 부모가 잠들 때를 노리다가 벽시계가 5월 19일 자정을 알리는 소리를 내자 입고 있던 모든 옷을 벗어 버렸다.

이어 침대 시트를 뒤집어쓴 채 안방으로 들어가 무려 61차례(아버지에게 34차례, 어머니에게 27차례)나 흉기를 휘둘러 아버지(당시 47세), 어머니(당시 45세)를 살해했다.

박한상이 알몸 차림을 한 건 혹시 피가 옷에 튀어 범행이 들통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또 알몸이면 샤워를 통해 혈흔을 지워내기 쉬운 까닭도 있었다.

샤워를 마친 박한상은 흉기를 지하 보일러실에 버린 뒤 올라와 가스 밸브를 틀고 피 묻은 침대 시트에 휘발유를 뿌린 뒤 불을 질렀다.

 현장검증에 나선 박한상은 쏟아지는 질문을 '기억 나지 않는다' 식으로 피했다. (MBC 갈무리) © 뉴스1
 현장검증에 나선 박한상은 쏟아지는 질문을 '기억 나지 않는다' 식으로 피했다. (MBC 갈무리) © 뉴스1

◇ 당시 보도…다행히 아들은 가벼운 화상만, 원한에 얽힌 범행으로 추정

당시 언론들은 "처음 경찰은 가스누출로 인한 단순 화재로 처리하려 했으나 병원에서 흉기에 찔린 상처 발견" "금고 속 230만 원이 그대로 있는 점을 봐 원한에 얽힌 사건으로 추정" "부부를 살해하고 이를 위장하기 위해 방화" "다행히 큰아들 박한상과 조카 이 군은 발목에 화상만 입어" "사인은 화재에 따른 질식사"라는 보도를 쏟아냈다.

◇ 장례식장서 통곡한 박한상…여자 친구에겐 "재산 정리해 외국에서 장사하자" 미소

박한상은 5월 19일 낮 부모의 시신이 안치된 영안실을 찾아 통곡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장례식을 마친 뒤 여자 친구와 "아버지의 한약상을 팔아 외국에서 장사하겠다"는 내용의 통화를 하면서 웃는 모습을 몇몇 사람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경찰은 '불이 나자 겁이나 집 밖으로 나갔다'는 박한상의 진술이 이상했지만 아들이 부모를 끔찍하게 살해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하고 아버지 주변 인물을 대상으로 수사를 펼치고 있었다.

 1994년 5월 26일 박한상의 범행소식을 전하고 있는 MBC 엄기영 앵커. (MBC 갈무리) © 뉴스1
 1994년 5월 26일 박한상의 범행소식을 전하고 있는 MBC 엄기영 앵커. (MBC 갈무리) © 뉴스1

◇ 머리는 놔둔 채 몸만 샤워…머리에 핏자국 본 간호사가 경찰에 신고

박한상의 꿈은 엉뚱한 곳에서 깨지고 말았다.

박한상이 5월 20일 화상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을 그의 머리카락이 핏자국과 뒤엉켜 있는 것을 수상하게 본 간호사가 25일 경찰에 이를 알렸다.

박한상을 연행한 경찰은 그의 종아리에 나 있는 핏자국, 혈흔의 혈액형이 부모와 일치하는 점 등을 두고 추궁, 자백을 받아냈다.

◇ 法 "사형선고 외 다른 명분 찾아봤지만 도저히 못 찾겠다" 사형

존속살해, 방화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한상은 1994년 11월 5일 1심, 1995년 4월 24일 2심에 이어 1995년 8월 26일 대법원에서도 사형을 면치 못했다.

당시 1심 재판장이었던 서울형사지법 합의 23부 김황식 부장판사(대법관 국무총리 역임)는 "사형선고를 피할 명분을 아무리 찾아봐도 도저히 못 찾겠다"며 "인간 생활의 가장 근본인 부모와 자식간 관계를 파멸시킨 피고인의 행위는 사형에 처해 마땅하다"라는 명판결문을 남겼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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