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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문 잠그고 174발 총질, 32명 참사…명문 버지니아텍의 비극

이민 1.5세대 조승희 학창시절 괴롭힘·부적응 주장 [사건속 오늘]
사전 치밀한 계획…교수들 '이상 행동' 알렸지만 학교 측은 외면

(서울=뉴스1) 소봄이 기자 | 2024-04-16 05:00 송고 | 2024-04-16 09:14 최종수정
조승희 씨가 NBC 방송국에 보낸 사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갈무리)
조승희 씨가 NBC 방송국에 보낸 사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갈무리)

"너희는 나를 궁지로 몰았고 나는 더 이상의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그 결정은 너희가 한 거고 이제 너희 손엔 절대로 씻을 수 없는 피가 묻을 거야."

2007년 4월 16일 미국 버지니아 공과대학 캠퍼스에서 174발의 총성이 울렸다. 권총 두 자루로 9분간 32명을 살해한 범인은 영문학과 4학년 한국인 유학생 조승희 씨(당시 23).
침묵 속 총기 난사를 벌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조 씨는 어떻게 괴물이 됐나. 사건 이틀 뒤 NBC 방송국에는 조 씨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가 도착했다.

◇강의실 '기웃' 무장한 한국인 유학생…캠퍼스에 울려 퍼진 총성

이날 오전 7시 15분, 조 씨는 자신의 기숙사에서 나와 옆 기숙사로 들어가 신입생과 사감 등 두 명을 총으로 쏴 살해했다. 당시 경찰은 조 씨가 학교 바깥으로 도주한 거로 판단했고, 학교 측은 기숙사와 대학이 떨어져 있어 비상사태를 발령하지 않았다.
2시간 후, 조 씨가 다시 나타난 곳은 캠퍼스 밖 우체국이었다. 볼일을 마친 조 씨는 무장한 상태로 강의가 가장 많이 열리는 '노리스 홀'로 향했다.

고요한 캠퍼스 안에는 수업을 듣기 위해 등교하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그야말로 폭풍전야였다. 9시 40분, 조 씨는 노리스 홀 출입구를 쇠사슬로 칭칭 감고 자물쇠로 잠가 봉쇄했다.

그는 잠긴 문에 'Bomb will go off if you open door'(문을 열면 폭탄이 터질 것이다)라고 적은 쪽지를 붙이고 7개의 강의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강의실을 엿보며 범행 대상을 물색하던 조 씨는 독일어 수업이 열리던 207호 강의실을 쓱 둘러보고는 문을 닫았다. 이후 공사 소음을 연상하는 '쿵 쿵 쿵 쿵' 소리가 30초간 이어졌다.

금세 잦아든 소음에 학생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조 씨는 다시 207호 강의실 문을 벌컥 열었다. 조 씨에게 학생들의 시선이 쏠리던 그 순간, 교단에 서 있던 교수가 그대로 고꾸라지고 학생들을 향한 무자비한 총격이 시작됐다.

앞서 들린 공사장 소음은 조 씨가 206호에서 총기를 난사해 초토화되는 소리였다. 그렇게 캠퍼스 안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갈무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갈무리)

◇강의실 네 곳 돌며 침묵 속 학살…"탄창 갈아 끼우는데 단 2초"


조 씨가 207호에 머문 시간은 채 1분도 되지 않았다. 다음으로 그가 찾아간 곳은 211호, 프랑스어 수업이 열리던 곳이었다.

조셀린 쿠튀르누아크 교수는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하려 문을 열었다가 바로 닫더니 "다들 책상 아래로 들어가고 911에 신고 좀 해!"라고 외쳤다. 총격 사건 신고가 이뤄지던 그때, 강의실 문이 천천히 열리더니 교수가 쓰러지고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또다시 난사가 시작됐다.

조 씨는 무엇을 요구하거나 소리치지도 않았다. 침묵 속의 학살이었다. 당시 총격 피해를 당한 한 학생은 "조 씨는 문을 열고 강의실로 들어와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한 일은 계속해서 총을 쏘는 것뿐이었다. 도중에 총알이 다 떨어지자 새 탄창을 갈아 끼웠는데 그 시간은 단 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조 씨의 다음 타깃은 204호였다. 루마니아 출신으로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서 살아남은 고(故) 리비우 리브레스쿠(당시 76) 교수는 처음부터 총소리를 알아채고 강의실 창문을 깼다.

리비우 리브레스쿠는 학생들에게 창문으로 뛰어내리라고 지시한 뒤 온몸으로 강의실 문을 막았다. 무려 6m 높이였지만 학생들의 필사 탈출이 시작됐다. 문 너머에서는 총알이 날아왔고, 리비우 리브레스쿠는 고통을 참아내며 학생들을 지켰다.

5발의 총알을 맞은 리비우 리브레스쿠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리비우 리브레스쿠의 희생으로 미처 도망가지 못한 한 학생을 빼고 더 이상의 사망자는 없었다.

네 곳의 강의실을 돌며 총기를 난사한 조 씨는 206호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자신의 왼쪽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갈무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갈무리)

◇9분간 174발 쏜 조 씨, 학창시절 괴롭힘당했다

그사이 신고를 받은 경찰이 노리스 홀을 에워쌌고 학교 전체가 통제됐다. 현장은 참혹했고 여기저기서 비명과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 피해자가 "저 사람이 범인이에요"라며 조끼를 입은 아시아계 남자를 가리켰다. 주변엔 빈 탄창과 권총이 있었다. 특수기동대 대원은 조 씨를 보고 사망자를 뜻하는 '블랙 티켓'을 외쳤다.

조 씨는 9분 만에 32명의 학생과 교수를 무참히 살해했다. 부상자는 29명, 사용된 총탄은 174발이었다. 3초에 한 발씩 쏜 셈이다.

조 씨의 사진을 본 학생들은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교내에서 존재감이 없었다. 앞서 조 씨는 8살이던 1992년 미국으로 이민 왔다. 내성적이었던 그는 언젠가부터 가족에게조차 입을 열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선택적 함구증'이라고 진단했다. 특정 상황에서 본인 선택으로 말하길 거부하는 증상으로, 불안장애 범주에 속한다. 조 씨는 가족들의 지원으로 중·고등학교 시절 약물, 심리 치료를 받았고 좋은 성적으로 졸업해 명문대인 버지니아 공대에 진학했다.

알고 보니 조 씨는 중·고등학교 시절 발음도 어눌하고 목소리도 이상하다는 이유에서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 씨의 범행은 이전부터 계획된 것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갈무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갈무리)

◇범행 전 총기 사고 동선 짰다…"내 영혼 찢어놔, 나는 그래야만 했다"

조 씨가 평소 쓴 희곡에는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내용이 많았고, 수업 시간에 이를 읽으면 모두가 경악할 정도였다. 2005년 11월, 12월에는 스토킹 방화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당시 조 씨는 학교 당국에 의해 지방 법원으로 보내져 정신감정을 받았고, 우울한 심리 상태와 위험을 끼칠 만한 상태로 진단돼 학교 심리 센터로 후송되기도 했다.

아울러 8명의 교수가 지난 18개월 동안 일종의 '특별팀'을 구성해 조 씨에게 문제가 있음을 학교 측에 알렸지만, 학교 측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모두 조 씨가 총기 난사를 벌이기 전 전조 증상이었다.

또 버지니아주에서는 총기를 한 달에 한 개만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조 씨에게는 두 자루의 총기가 있었고, 이는 최소 한 달 이상 범행을 준비했다는 방증이다. 동시에 한 달간 대학 캠퍼스에서 60㎞가량 떨어진 사격장에서 사격까지 연습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전 동선까지 철저하게 계획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사건 이틀 후, NBC 방송국에 조 씨가 직접 보낸 우편물이 도착했다. 기숙사에서 2명을 살해한 후 노리스 홀로 가기 전 며칠에 걸쳐 직접 찍은 사진 29장과 DVD 녹화물 27개가 담겼다.

영상에서 조 씨는 "희생당한 나와 내 아이들, 형제자매들을 위해 거사를 치를 것"이라며 "너희는 그저 나를 괴롭히기 좋아했고 내 머릿속에 암을 주입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내 가슴 속에는 공포를, 지금껏 내 영혼을 찢어놓는 것을 좋아했다"고 간접적으로 범행 동기를 밝혔다.

이어 굳은 표정으로 "시간이 됐을 때 나는 그걸 했고 그래야만 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떠날 수도 있었고 도망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내가 이걸 정말 원해서 했다고 생각하나? 내가 이렇게 죽기를 꿈꿨다고 생각하나? 난 진정 이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동시에 "누군가 너의 얼굴에 침 뱉고 쓰레기를 목구멍에 쑤셔 넣고 너의 무덤을 파는 느낌이 어떤지 알아?" "너희들은 오늘을 피할 수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피를 흘리게 했다" 등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가득한 발언을 이어갔다.

◇'이민 1.5세대'의 부적응이 분노로…"승희 알지 못했다" 가족 사과

조 씨의 범행 동기로는 부모를 따라 이민 온 뒤 미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민 1.5세대'의 정체성 혼란이 조명됐다. 어린 시절부터 받아온 인종차별에 더불어 같은 한인 사회에도 잘 섞이지 못한 조 씨가 사회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쌓아오다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뒤늦게 아들 조 씨의 학교생활을 알게 된 가족들은 절망감, 상실감, 당혹감에 휩싸였다. 조 씨의 누나는 가족을 대표해 사죄의 성명서를 냈다.

누나는 "우리 가족은 희망도 없고 도움을 청할 수도 없고 방향을 잃었다. 승희는 제가 함께 자라고 사랑했던 사람이지만, 저는 승희를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제 동생의 말할 수 없는 행동에 우리 가족은 큰 유감을 느낀다"고 고개 숙였다.

사건 1년 뒤, 조 씨의 부모 등 가족들은 세상과 관계를 끊고 은둔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씨의 총기 난사 사건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생존자들은 총기 규제 캠페인을 펼치고, 폭력 예방 재단을 운영하는 등 아픔을 이겨내고 있다. 지난 2017년, 총기 난사 사건 발생 10주년 때는 생존자와 희생자 32명의 유가족이 버지니아 공대 캠퍼스에 모여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sb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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