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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연·셀린 송·유태오…확장되는 'K-영화인'의 의미 [정유진의 속닥무비]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2024-03-03 07:30 송고
스티븐 연, 셀린 송, 유태오(왼쪽부터) / 뉴스1DB, CJ ENM 제공
스티븐 연, 셀린 송, 유태오(왼쪽부터) / 뉴스1DB, CJ ENM 제공
'한국 배우' 혹은 '한국 감독' '한국 영화인'의 범주가 확장되고 있다. '한국 ○○'라 불리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한국 국적이 전제돼야 하겠으나, 최근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K-컬처'의 스펙트럼 안에서는 '한국 배우'의 범위도 그에 맞게 확장시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는 10일(현지시간)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릴 제96외 아카데미 시상식 2개 부문 후보에 오른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의 연출자 셀린 송 감독은 한국계 캐나다인이다. 어린 시절 온 가족이 이민을 가 캐나다 국적을 갖게 된 셀린 송 감독은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며 자전적인 영화를 통해 지극히 동양적인 개념인 '인연'을 서구 관객들에게 전달해 각광 받았다 영어로는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 '인연'이라는 한국어는 '패스트 라이브즈'를 통해 북미를 포함한 해외 관객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있다. 셀린 송은 '넘버 3'로 유명한 송능한 감독의 딸이기도 하다.

넷플릭스 '성난 사람들'로 올해 에미상 남우주연상(미니시리즈 TV 영화 부문),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TV 미니시리즈 영화 부문), 크리틱스초이스 시상식 남우주연상(TV영화 부문), 미국 배우 조합상 시상식 남우주연상까지, 미국 내 주요 시상식에서 4개 상을 석권한 스티븐 연은 또 어떤가. 한국계 미국인 배우인 스티븐 연은 '성난 사람들'에서 K-장남의 부담감을 간직한 이민 2세 한국계 미국인 대니 조를 연기했다. 대니 조는 분명 미국인이지만, 한국 관객들에게는 무척 익숙한 정서를 드러내는 인물이었다. 부모를 향한 효심, 경제적으로 가족들을 부양해야만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린 이 인물은 비록 한국어보다 영어를 더 많이, 잘 구사하는 캐릭터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한국인스러웠다.

배우 존조, 저스틴 전 감독, 스티븐 연, 정이삭 감독(왼쪽부터) /뉴스1 DB © News1 권현진 기자
배우 존조, 저스틴 전 감독, 스티븐 연, 정이삭 감독(왼쪽부터) /뉴스1 DB © News1 권현진 기자

스티븐 연은 '성난 사람들'에 앞서 영화 '미나리'에서는 1980년대 초 가족들을 이끌고 미국에 이민을 온 한인 1세 가장 제이콥을 연기했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이민자 역할은 한국어가 서툰 스티븐 연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작품에서 언어의 문제를 극복했을 뿐 아니라 무뚝뚝하면서도 성공에 대한 열망을 마음속 깊이 품은, 그 시절 한국인 아버지상을 훌륭하게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

과연 셀린 송과 스티븐 연을 한국 감독, 한국 배우라고 할 수 있을까. 국적으로만 따지면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 관객들이 할리우드에서 승승장구 하고 있는 이들을 응원하고, 성공에 자긍심을 느낀다. 한국 국적은 아니지만, 그들의 뿌리가 한국에 있고,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이들이 '한국적인 어떤 것'을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에서 이들은 캐나다인, 미국인이라 불리는 동시에 '코리안'(Korean)이라고 표현된다.
지난해 부산 국제영화제 '코리안 아메리칸 특별전: 코리안 디아스포라' 기자회견에서 참여한 '미나리' 정이삭 감독, 스티븐 연, '파친코' 저스틴 전 감독, '서치' 배우 존조 등 한국계 미국인 영화인들의 발언은 당사자들 역시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느끼고 있음을 확인하게 해준다.

당시 스티븐 연은 "요즘 느끼는 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를 교류하고 공감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화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렇게 K-콘텐츠 부흥은 한국인으로서, 디아스포라로 사는 사람으로서 위안이 된다"라고 밝혔다. 저스틴 전 감독 역시 "한국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떼려야 뗄 수 없다"면서 부산 국제영화제가 한국계 미국인 영화인들에 관심가져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유태오는 또 다른 측면에서 '한국 배우'라는 개념의 확장성을 보여주고 있는 인물이다. 파독 광부-간호사 부모 밑에서 태어난 독일 교포 출신인 유태오는 한국 국적을 가진 한국 배우다. 유창한 영어, 독일어 실력을 가진 그의 커리어는 '글로벌'하다. 우리나라 영화 '여배우들'로 데뷔했지만, 할리우드 영화 '이퀄스'(2016)에 출연했으며 러시아 유명 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의 영화 '레토'(2019)에서는 고려인 혼혈 소련 가수 빅토르 최 역할을 맡기도 했다. '레토'는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이었다. 그런 그는 이번에는 셀린 송 감독의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한국인 남성을 연기헀다.

유태오는 배우로서의 매력과 실력, 충분한 언어 능력을 갖췄다면 한국 배우도 국적과 관계없이 활동 영역을 넓혀갈 수 있음을 방증하는 존재다. 그는 한국 배우이면서도 동시에 할리우드(미국) 배우, 혹은 더 나아가 유럽에서도 배우로 활약할 수 있다. 배우 윤여정, 이병헌, 배두나 등이 이미 그보다 앞서 길을 갔다.

이처럼 '한국 영화인'의 범위는 날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다양한 국가의 자본과 인재들이 모여 작품을 만드는 '글로벌한' 시대에는 '국적' 보다는 '문화'의 독자성이 더 큰 의미를 갖는다. 국적과 관계없이 한국의 사람과 문화, 이야기를 보여주는 '한국 영화인'들의 활약은 결국 한국 영화의 영역 확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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