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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직원 봉사활동 8만시간 하니 CEO는 "일 안 했네"…어떡하나요

[그린경쟁시대 딥체인지⑨] ESG 경영 위해선 무엇이 필요하나
최고위층 의지와 기업 주요 목표로 설정…결과 측정·관리 필수

(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 2021-01-28 07:10 송고 | 2021-01-28 11:13 최종수정
편집자주 바야흐로 그린시대다. 환경은 이제 기업에게 '보호'를 넘어 '생존'의 문제가 됐다. 환경(E)과 함께 사회(S)·지배구조(G)는 기업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착한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원한다. 뉴스1은 'ESG' 사례를 살펴보고 기업이 왜 필수 경영 요소로 선택해야 하는지 조명해 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국내 한 대기업의 부장급 직원인 A씨는 3년 전 이전 직장에서 했던 연말 최고경영자(CEO) 업무보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사회적책임(CSR) 관련 부서에서 일했던 그는 회사 임직원들의 연간 봉사활동 시간이 총 8만시간이었다고 자랑스럽게 보고했다. 그러자 CEO는 말했다. "우리 직원들이 일을 안 한 시간이 8만시간이나 된다는 얘기 아닌가? 봉사활동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할 방법을 찾아보게."

이는 많은 기업들이 기업의 사회적 가치 증진 활동에 대해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다. 외부 시선이 신경쓰이고 다른 회사와 비교도 되니 봉사활동을 하긴 해야겠는데, 막상 하자니 직원들이 업무와 관계없는 일에 노력을 쏟는 게 아까운 것이다.
◇'단순한 홍보 수단' ESG 냉대하는 기업 조직문화 바뀌어야

최근 화두가 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선 이런 조직 문화부터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A씨는 "기업이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환원하고, 그를 통해 더 많은 사업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는 게 봉사활동"이라며 "그 관점에서 생각하면 봉사활동도 충분히 업무의 일종으로 볼 수 있지만 아직도 윗선에선 '일 시켜야 하는데 놀러간다'고 생각하는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선 ESG의 개념과 필요성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단순히 착한 일이나 비용 지출이 아니라, 더 많은 투자를 받고 회사가 성장하기 위한 필수 전략이라는 걸 경영진부터 말단 직원까지 공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부로부터 ESG 등급 평가를 잘 받기 위해 열심히 하겠다는 시각도 바꿔야 한다. 국내 로펌 중 처음으로 'ESG 센터'를 만든 법무법인 지평의 임성택 대표변호사는 "기업을 대상으로 ESG 전략을 자문하다 보면 'ESG 등급 평가와 관련해 어떻게 홍보하는 게 좋겠냐'는 질문을 자주 접한다"며 "ESG는 홍보의 수단이 아니라 기업의 체질을 개선해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찾는 전략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우선 ESG를 적극적으로 수행하겠다는 기업 최고경영진의 의지와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ESG 경영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부정적 여론이 높을수록 최고 경영진으로부터 톱다운(Top-down) 방식의 전파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SK그룹이 국내 ESG 경영의 대명사가 된 건 항상 동반성장을 강조하고 사회적 가치를 말하는 최태원 회장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는 평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2019년 1월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열린 ‘행복 토크’에서 구성원들과 토론하고 있다. (SK그룹 제공)2019.1.13/뉴스1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2019년 1월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열린 ‘행복 토크’에서 구성원들과 토론하고 있다. (SK그룹 제공)2019.1.13/뉴스1

◇ESG 지위 '기업 주요 목표'로 끌어올려야…사업에 구체적으로 적용 필요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ESG 전담 조직을 설치하고 기업의 주된 경영 전략으로 내세워 회사 정체성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는 조언이 많다. 이 경우 기업 내에서 ESG 경영은 산발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지난 1월 코오롱그룹은 올해 가장 큰 목표가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것'이라고 선언했고, 롯데케미칼은 올해를 'ESG 경영 원년'으로 선포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구자열 LS그룹 회장도 신년사에서 ESG를 올해 경영 목표 중 하나로 제시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ESG가 주요 경영 방침이 된 이후에는 임원 경영전략회의에서 ESG 실행 로드맵을 논의하고 결과를 점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기업 구성원들은 해당 기업에서 실제로 할 수 있는 ESG 전략을 세워야 한다. 자사의 역량을 환경(E)·사회(S)·지배구조(G) 관점에서 판단해, 우리 회사의 업무 영역에선 어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이는 회사의 성장과 어떻게 연계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다. 여기에 기반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면 금상첨화고, 수익이 없더라도 ESG를 중시하는 투자자와 소비자의 지지를 받아 기업은 더욱 성장할 수 있다.

가령 의류·신발 제조업체인 아디다스는 해양 쓰레기로 운동화를 만들고 있다. 비영리 환경단체인 팔리(Parley)가 태평양 한가운데 모인 페트병을 수거해 가져오면 아디다스는 페트병에서 실을 뽑아 섬유를 만들어 운동화를 제조하는 식이다. 지난 2017년 시험 삼아 처음으로 제작한 '팔리 에디션' 100만켤레는 환경을 중시하는 밀레니엄 세대들로부터 인기를 끌어 전량 판매됐고 2018년 500만켤레, 2019년 1100만켤레까지 생산량이 매년 늘었다. 아디다스의 기업 가치도 2017년 83억달러에서 2018년 125억달러로 50% 증가했다.

이는 먼저 수익을 내고 그중 일부를 사회에 기부하는 기존의 사회공헌 활동과 큰 차이가 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기부금은 기업에게 비용이 된다. 하지만 제품을 만드는 밸류체인에 환경문제 해결을 적용한 사업 모델을 만든 아디다스의 사례는 ESG 경영이 사업 기회를 넓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아디다스와 팔리가 협업해 제작한 러닝화 © 뉴스1
아디다스와 팔리가 협업해 제작한 러닝화 © 뉴스1

◇ESG 결과 측정·관리는 필수…기업 내에서 확대·재생산

ESG 경영을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선 기업이 그 결과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기업 내에서 확대·재생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를 위해 우선 기업이 추진하는 ESG 관련 활동을 고객·투자자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알리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 반영하는 등 외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ESG 경영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결과를 측정해 관리하는 작업도 필수다. 매년 구체적인 ESG 목표를 세우고 얼마나 달성했는지 공개하는 것이다. 지난 2013년 네슬레는 과학계의 자문을 받아 자사 제품에 포함된 당과 나트륨의 수치를 평균 10% 줄이는 목표를 세웠다. 이 결과를 측정·관리하기 위해 1년에 약 100억원의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내에선 SK그룹이 글로벌 기업과 손잡고 사회적 가치의 계량화와 글로벌 표준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결과를 측정해 수치의 형태로 나타나면 이를 기반으로 ESG 경영을 추진한 기업 구성원의 노력과 성과에 대해 보상을 할 수 있다. 이는 구성원들이 ESG 경영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유인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themo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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