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 사회 > 사회일반

그날 7시간이 가물가물?…우리는 또렷이 기억합니다

[세월호 1000일②] "'충격적인 일' 어떻게 기억 안 날 수가"
'곧 온다'던 기다림이 이어진 1000일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김다혜 기자 | 2017-01-08 06:00 송고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이틀 앞둔 지난 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서 자원봉사자 김성훈씨(42)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며 사고해역을 바라보고 있다. 2017.1.8/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작년인가? 재작년인가요? 그때 이제 뭐 그…세월호에 참사가 벌어졌는데…"

8일을 기준으로 999일 전, 그러니 '3년' 전, 2014년 4월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는 침몰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출입기자단과 만난 자리에서 세월호에 대해 언급하며 참사 시점을 정확하게 말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그전까지 참사 당시의 상세한 일정과 행적에 대해서 밝히지 않아왔다. 탄핵 심판에서 박 대통령의 법률 대리인을 맞은 변호사들은 "대통령이 세월호 7시간에 대한 기억을 잘 못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 뿐만 아니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전말을 밝히기 위해 열린 국회 청문회에서도 당시를 기억하지 못하겠다는 정부관계자, 국정농단 의혹 당사자들의 진술이 이어졌다.

대통령을 위시한 참사의 구조 책임을 가지고 있었던 당사자들이 당시의 상황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참사를 겪은 유가족들과 이를 지켜봤던 국민의 마음에는 '분노'만이 차오르게 됐다.

한편, 박 대통령의 탄핵심판 변론준비 절차 진행을 맡았던 이진성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세월호 참사가 2년 이상 경과했지만 그날은 워낙 특별한 날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날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할 수 있을 정도"라고 밝혔다.

◇ 유가족들 "잊히지 않는 생생한 그날의 기억"

평상시처럼 출근해서 일을 하다 사고 소식을 접한 정성욱씨(47·고 정동수군 아버지)는 바로 아들의 학교로 달려갔다. 방송에서는 계속 전원 구조 이야기가 나왔고 가족들이 모여 있던 학교 강당에 TV가 설치됐다. 그런데 TV 자막은 '전원구조' 가 아닌 '학생 76명' 구조로 바뀌어 있었다.

"그때 전원 구조가 오보라는 걸 알았어요" 정씨는 당시의 TV 자막 내용까지 잊지 않고 기억했다. 그는 "당장 진도로 내려가려고 하는데 아이들이 '진도'에 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몰라서 무작정 차를 끌고 물어물어 진도까지 갔습니다"라고 말했다.

진도체육관에 도착하니 당시 구조됐던 학생들이 모포를 둘러쓰고 앉아 있었다. 아이를 찾을 수 없었던 정씨는 행정실로 보이는 곳을 찾아 "아이들이 여기 있는게 전부냐?"라고 물었다. 그리고 "아니다 학생들이 더 나올 것이다 한두시간만 기다려달라"라는 답을 들었다.

하지만 곧 정씨는 그 말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됐다. 아이들은 오지 않았다. 결국 가족들은 직접 팽목항으로 향했다. 그는 "도착해서 아이들이 곧 온다는 말을 들었고 그래서 제발 살아만 있기를 바라면서 팽목항으로 갔습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족들의 희망은 이내 절망으로 바뀌었다. 

아이들은 없었다. 사방팔방 상황을 묻고 다녀도 아무도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정씨는 분노와 온갖 감정이 뒤섞여 눈물만이 났다. '당시 눈에 뵈는 게 없었다'는 그는 다른 가족들과 사비를 털어 배를 타고 사고현장으로 갔다. 해경이 이를 막아서 오후 늦게 사고 해역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사고 현장에 남아 있는 것은 세월호의 뱃머리뿐 아이들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구조됐을 아이가 입을 옷을 챙겨 부랴부랴 진도로 향했던 고 임경빈군의 어머니 전인숙씨(45)도 '제정신이 아니었다'라면서도 당시의 상황을 또렸이 기억하고 있었다. 

사고 소식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정신이 없었던 전씨는 진도로 내려가기 위해 경빈군의 동생을 학교에서 데려와야 했는데 학교에 도착하니 아이의 학년과 반도 전혀 기억이 안 났다. 무엇인가를 생각할 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학교 전체를 뒤져 아이를 찾은 전씨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진도로 향했다. 생존한 학생들, 관계자들을 무조건 붙잡고 물었지만 경빈군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전씨는 사고현장에서 헬기가 돌아오면 혹시나 경빈군이 타고 있을까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헬기장이 있는 언덕을 뛰어올랐다. 일하는 사람을 붙들고 무작정 물어도 "모른다"라는 답변밖에 없었고 기약없는 '기다림'이 시작됐다.

"기다리면 곧 올 것"이라던 아이들을 기다리는 유가족들의 기다림은 이제 1000일째가 됐다. 가족들의 시간은 팽목항을 물들였던 노란 리본처럼 그날을 기억하며 2014년 4월16일 그 시간에 묶여 있었다.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이틀 앞둔 지난 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2017.1.8/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시민들 "전원구조에 안심했다가 '충격', 잊을 수 없는 일"

시민들이 기억하는 2014년 4월16일은 '평범한 날'이었다. 누군가는 일을 하고 있었고 다른 누군가는 공부를 하고 있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친구와 함께 이른 낮술을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의 '충격'은 평범한 날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당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던 민지원씨(23·여)는 핸드폰으로 처음 사고 소식을 접했다. "처음에는 다 구조됐다고 했는데 좀 지나고 나서 그게 거짓으로 밝혀졌을 때 충격을 받았다"는 민씨는 종일 TV를 통해서 사고 소식을 접했다고 말했다.

집안을 정리하고 청소를 하고 있다가 사고 사실을 접했던 여모씨(57·여)는 당시 마치 '전시상황' 같았다고 기억했다. "처음에는 인명을 다 구했다고 해서 안심했다가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오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여씨는 당시를 '300명이 넘는 국민들이 생사 고비에 있었던 비상상황'이었다고 기억했다.

대학원생으로 수업을 듣고 있었던 박진혁씨(29)는 등교를 하며 본 뉴스에서 '전원구조'라는 소식을 듣고 안심하고 수업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내 인터넷에 올라오는 보도 내용을 통해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스라엘 철학자 마틴 부버와 관련된 수업'이었다며 그날 들은 수업의 내용도 기억하고 있었던 박씨는 "수업이 끝난 뒤 믿을 수 없는 내용이라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계속 뉴스를 살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7일 올해 첫번째로 열린 주말 촛불집회는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추모하는 행사로 채워졌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세월호참사의 기억을 잊지 않았다.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과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외치며 촛불을 들었다.  

지난달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방청객으로 참석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청문회를 바라보고 있다. 2016.12.14/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 참사 당일 기억 안 난다는 말에 분통 터져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 당일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겠다는 박 대통령과 청문회 증인들의 발언에 분노하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민지원씨는 "대통령의 발언은 어이가 없다"며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국어 교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남모씨(59·여)는 "기억이 안 나긴 어떻게 안 나냐"며 "80 넘은 노인도 아니고 60대 중반인데 기억을 못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대통령이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밝혔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에 유가족들의 마음은 더욱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정성욱씨는 당시 상황을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다 기억한다"며 대통령과 세월호 참사에 관련된 이들이 당시가 기억이 안 난다고 한 것에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 전찬호 군의 아버지 전명선씨(47)는 "그런 중대한 사항을 기억을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고 볼수 있겠냐"며 "아주 부도덕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씨는 "대통령과 정부관계자가 첫째로 해야 할 일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권을 보호하는 것"이라며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희생된 참사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본인들의 부족함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고 권순범군의 어머니 최지영씨(52)는 "청문회에 나와서 다들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고 하는 것은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속셈"이라며 "가족들은 그들이 감추려는 진실을 밝히고 말겠다는 마음으로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최씨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기자에게 "부모들의 간절한 마음, 그때의 분노, 엄마의 심정을 잘 전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potg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