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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C 미지의 대륙 아프리카를 세상에 소개한 탐험가·언론인 [역사&오늘]

5월 10일, 탐험가 헨리 모턴 스탠리 사망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2024-05-10 06:00 송고
핸리 모턴 스탠리(출처: Frederick Waddy, 삽화(1872),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핸리 모턴 스탠리(출처: Frederick Waddy, 삽화(1872),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1904년 5월 10일, 언론인이자 탐험가인 핸리 모턴 스탠리가 사망했다. 1871년 아프리카를 횡단한 최초의 유럽인 영국인 탐험가 데이비드 리빙스턴을 구조한 것으로 유명해졌고, 그 자신도 탐험가가 된 인물이다.

헨리 모턴 스탠리는 1841년 1월 28일 영국 북웨일스의 덴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고아가 된 그는 17세에 미국으로 이주해 스탠리 가문의 양자가 되고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남북전쟁 당시 포로가 되는 등 갖은 고생 속에서도 그는 열심히 공부해 언론인이 되어 '뉴욕 헤럴드' 특파원이 됐다.
1867년 스탠리는 회사의 밀명을 받고 아프리카에서 실종된 영국 선교사 데이비드 리빙스턴을 찾아 떠났다. 그는 험난한 여정 끝에 1871년 탕가니카 호수에서 그를 발견했다. 이 탐험은 스탠리에게 명성을 가져다줬고, 그는 이후 아프리카 탐험가로 활동하게 된다.

스탠리는 1874년 다시 아프리카로 건너가 1877년까지 아프리카 대륙을 횡단했다. 그는 콩고강, 빅토리아 호수, 탕가니카 호수 등 중요한 지리적 발견을 해 아프리카 지도 제작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의 의뢰를 받아 콩고 자유국을 설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아프리카 문화와 역사에 대한 풍부한 기록을 남겼다. 저서 '암흑대륙 횡단기'와 '암흑의 아프리카'를 통해 아프리카 탐험 경험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의 탐험은 아프리카에 대한 유럽인의 이해를 크게 높였다. 만년에는 영국으로 돌아가 국적을 회복하고 1895년 하원의원이 돼 정치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오늘날 스탠리에 대한 평가는 복잡하다. 그의 탐험은 아프리카 대륙의 지리적 발견에 크게 기여했지만, 동시에 유럽제국의 식민 정책과 착취에 길을 열기도 했다. 스탠리 개인으로서는 훌륭한 탐험가였지만, 아프리카가 유럽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되도록 하는 데 발판을 놓아준 셈이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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