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임용한의 역사 크루즈] '진정한 팀플레이'

(서울=뉴스1) 임용한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 2024-06-10 07:00 송고
임용한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 러시아의 힘은 대지에서 나온다

1941년 초여름, 약 290만 명의 독일군이 독-소국경을 넘어서 진군을 시작했다. 독일과 소련은 서로 불가침조약을 맺고 있었는데, 소련은 이 조약을 믿고 전쟁 대비를 소홀히 했다. 조약을 믿었다기보다는 소련의 국내 사정 때문에 전쟁을 늦추고 싶었다. 절실한 소망이 눈앞의 증거를 무시했던 것이다.

그 결과를 참담했다. 초전에서 독일군은 무섭게 승리를 거두었고, 빠르게 진격했다. 늦가을까지는 모스크바를 함락하고 전쟁을 끝낼 예정이었다. 독일군 장교들은 이렇게 말했다. "소련은 썩은 문짝이다, 우리가 한번 걷어차면 형편없이 부서질 것이다."
그 말이 맞는 말이긴 했지만, 썩은 문짝 안쪽의 땅은 너무나 넓었다. 그리고 그 땅에는 엄청난 인구 및 정치와 이념을 떠나서 자신의 땅을 생명보다 소중히 하며 외적의 침략에 대해서는 굳건히 저항하는 강인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이 대기하고 있었다.

초반에는 독일의 파죽지세였다. 3개월이 지나지 않아 3개 집단군의 목표인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 키에프 근처에 도달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자 독일의 보급선이 너무나 길어졌다. 2000km가 넘는 보급선을 독일군은 게릴라의 습격을 받으며 유지해야 했다. 트럭은 고장 나고 말들은 한 해가 가기 전에 2/3가 죽어 나갔다.

광활한 러시아 대지는 독일군의 장기인 기동전을 위한 땅처럼 생각되었다. 신속하게 돌파하고 포위해서 단숨에 섬멸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너무 넓은 대지는 사방으로 달리는 것을 허용할 뿐, 적을 그물 안에 가둘만한 지표가 없었다. 태평양에서 그물을 던지는 격이었다.
불길한 징조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독일군은 지쳐가기 시작했다. 전진이 길어질수록 병력은 줄어들고 잘게 쪼개졌다. 엄청난 포로를 잡았음에도 러시아군은 끝이 없었다. 러시아도 힘든 사정이 많았지만, 독일군 입장에서는 그것은 알 수 없었다. 자신들은 줄어들고 마침내 병력의 열세에 처하게 되었지만, 러시아군은 줄어들지 않았다. 독일군은 처음에는 얕봤던 이 지독한 군대에 점점 질려가기 시작했고, 불안감은 증오로 변했다.

고리키 마을의 고지

쪼개지고, 줄어들고, 보급품이 부족해지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1941년까지 전선에서 독일군의 사기는 높았고 여전히 자신감에 충만했다. 이 비결은 매번 전투에서 증명되는 자신감이었다.

1941년 9월 독일군 490연대는 레닌그라드 근처의 고리키 마을로 진군했다. 이 북동쪽 312고지와 능선에 러시아군이 방어선을 축조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고지 뒤쪽으로 여러 개의 마을이 있고, 마을마다 방어선이 구축되어 있었다. 소련군도 연대 규모 이상의 병력이었고, 312고지를 거점으로 하는 1차 방어선에는 여러 개의 벙커가 축조되어 있었다.

요새화된 진지를 점령할 때 공격 측은 수비의 5~10배의 전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독일군은 병력도 열세였고, 전차 지원도 기대할 수 없었다. 탄약 부족에 시달리는 포병은 탄막포격은 언감생심이고, 정밀타격 정도만 가능했다. 러시아군도 아직 포는 부족했다. 공중 지원도 있었지만 전투기는 수도 적고 공격은 부정확했다. 양측 다 화력지원은 1차 대전 때보다 부실했다.

독일군은 전투 정찰조를 파견했다. 지형을 파악하고, 벙커를 제거하는 임무였다. 화염방사기와 성형폭약으로 무장한 폭파조가 정찰대에 가세했다. 1차 대전 참전 경험이 있는 장교나 부사관은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3개월 전 소련 국경을 돌파할 때만 해도 독일군은 전차와 전투기, 야포와 보병이 집중돌파를 하고, 기동화된 수송 차량이 뒤따르는 세계가 보지 못한 첨단 전술로 무장한 군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25년 전 1차 대전 수준의 야만적인 전투를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1차 대전 때, 화염방사기를 실전에 처음 도입한 군대도 독일군이었다.

우울한 상황과 다르게 독일 정찰소대는 임무를 잘 수행해 냈다. 폭파팀은 벙커를 발견하는 족족 신속하게 파괴했다. 이날 하루 동안 파괴한 벙커가 5개였다. 하나의 벙커를 파괴하는 데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다음 날 3대대 9중대가 고지 공격을 시작했다. 이날도 폭파팀에 포병 관측장교가 동행했다. 어제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벙커는 폭파팀이 파괴하거나 포격을 유도해 파괴했다. 공격 중대가 고지 정상부에 접근했다. 정상의 진지는 견고했다. 다시 포격을 유도했지만 포격에 파괴되지 않았다. 중대는 사격 지원소대와 공격소대로 나누었다. 공격소대가 고지를 우회해서 진지로 접근하는 동안 사격지원조는 기관총과 박격포로 진지를 공격했다.

맹렬한 지원사격으로 고지의 러시아군은 우회하는 독일군 소대를 발견하지 못했다. 고지로 근접한 공격조는 포복으로 정상으로 접근해 단숨에 진지를 제압했다. 뒤에 있던 소대에는 폭파조가 함께하고 있었는데, 정상을 점령하자마자 달려들어 벙커를 폭파했다.

멋진 성공이었지만 전투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정상을 공격하는 동안 러시아군 지원부대가 도착했다. 이들은 전황을 정확히 알지 못했기에 눈에 띄는 사격지원소대를 공격했다. 사격지원소대는 지형적으로 이들의 공격에 많이 노출되어 있었다. 러시아군의 공격에 사상자가 발생하는 와중에도 사격지원임무를 계속했다.

정상을 점령한 소대는 즉시 두 팀으로 나뉘었다. 한 팀은 적의 반격을 대비해서 고지에 급편 방어진지를 설치했다. 고지전투에서 고지를 탈환하기 제일 좋은 때는 고지를 상실한 직후이다. 적의 체력과 탄약이 떨어지고 방어진지도 구성하지 못했을 때 역습을 해서 빼앗아야 한다. 정상에서 소련군이 역습을 위해 병력을 배치하는 광경이 보였다.

한 팀은 측면을 공격받고 있는 사격지원조를 구하러 출동했다. 신속한 지원으로 사격지원소대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서쪽 측면에서 공격하던 1대대가 서쪽의 러시아군 진지를 돌파했다. 이제 정면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 9중대는 러시아군 집결지에 포격을 요청했다. 포탄이 작렬하자 러시아군은 역습을 포기하고 물러섰다. 이로써 독일군이 고지를 완전히 장악한다.

지뢰밭 사이로

1년 뒤인 1942년 9월, 독일군 중대가 모스크바 근교의 700고지 점령을 시도한다. 고지는 단단하고 깊게 구축한 진지와 기관총과 박격포로 촘촘히 방어되고 있었다. 러시아군은 탄약과 수류탄도 충분했다. 제일 성가신 부분은 고지 사면에 매설한 지뢰였다.

독일군은 성급하게 공격하지 않고 끈기 있게 관측하다 2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러시아군은 자정 이후에만 활동하며 주간에는 진지를 거의 비운다. 지뢰밭에는 정찰대를 내보내기 위한 정찰통로가 있다.

독일군은 러시아군이 진지를 비운 해 질 녁에 정찰통로를 따라 고지를 습격했다. 베테랑 병사 30명을 선발하고, 공격조 뒤에 6정의 기관총을 후속시켰다. 공격조는 경기관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하고, 화염방사기를 휴대했다. 어둠이 깔리자 몰래 접근한 공격조는 수류탄을 투척하고 화염방사기로 참호를 불태웠다. 놀란 러시아군은 독일군의 규모를 알지 못했고 허겁지겁 후퇴했다.

독일군은 1시간 만에 고지를 점령했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었다. 즉시 장애물팀이 투입되어 반대편 사면에 철조망을 설치했다. 일부는 후사면의 교통로를 차단해 러시아군의 진로를 막았다. 다른 병사는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이 모든 일이 2시간 만에 끝났고 그 사이에 중대 주력이 지뢰밭을 지나 고지로 올라와 방어진지를 채웠다. 러시아군의 역습은 이 모든 작업이 끝난 후에 시작되었고, 거의 전멸했다.

◇ 사지에서의 전투

독일군의 장점은 팀워크였다. 모든 파트가 최선을 다해 자기 임무에 헌신했다. 러시아군은 용감하고 끈질겼지만, 이런 팀워크가 없었다.

손자는 적국에 깊이 들어간 군대는 마음이 하나로 통일되고 얕게 들어가면 혹은 자국 영토 안에서 싸우면 산만해진다고 했다.(손자병법 11편 구지九地)

독일군은 러시아 영토 수천 km 이상 들어와 있었다. 이런 절박한 사정이 살신성인에 가까운 팀워크를 발휘하는 힘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이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사지에 몰린 군대는 단합하려는 의지는 있지만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지휘부가 사라지면 독일군도 순식간에 공황에 빠졌다.

더 중요한 건 프로페셔널한 능력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이때 꿰어주는 역할을 정신력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전에 구슬이 있어야 꿸 수도 있다.

충분한 기능, 팀워크의 성과에 대한 체험, 여기에 유능하고 헌신적인 장교와 부사관, 고참병이 결합하면서 독일군의 팀워크가 나온다.

그 증거가 소련군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소련군은 의지와 헌신은 강렬하지만 능력이 결합되지 못했다. 그러나 전투를 경험하면서 소련군도 독일군 못지않은 팀워크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독일군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yhkmyy@hanmail.net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