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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석레인저가떴다] 울창한 숲, 옥빛 바다, 신선의 정원 '윤선도의 보물섬'

<10>다도해국립공원 보길도…상록수림 등산로 11.7㎞ 트래킹 '뷰' 감탄
동백꽃 정열, 매화 돌담 지나 낙서재·세연정…'조선 금수저'의 유토피아

(서울=뉴스1) 신용석 기자 | 2022-03-18 09:00 송고
 
보길도는 윤선도의 유토피아. 연꽃과 같은 봉우리에 둘러싸인 마을이라 해서 이름 붙인 부용동(芙蓉洞)을, 격자봉을 비롯한 육중한 산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다 © 뉴스1
보길도는 윤선도의 유토피아. 연꽃과 같은 봉우리에 둘러싸인 마을이라 해서 이름 붙인 부용동(芙蓉洞)을, 격자봉을 비롯한 육중한 산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다 © 뉴스1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국립공원은 어디죠? 라고 물으면 대부분 지리산이나 설악산으로 답한다. 정답은 다도해(多島海) 국립공원이다. 대략 5배나 더 크다. 다도해의 아름다운 섬들을 '바다에 뿌려진 보석'이라고 묘사하는데, 그중에서도 두드러지게 초롱초롱 반짝이는 보석 보길도(甫吉島)가 있다.

보길도는 윤선도(1587~1671)의 섬이다. 윤선도(島)라 해도 될 섬이다. 그의 일생은 파란만장했다. 그는 왕자를 가르칠 정도로 학문과 예술의 경지가 높았던 정치가였으나 권력 싸움에서 밀려 16년의 귀양살이와 오랜 은둔생활을 했다. 병자호란 때 식솔과 노비를 모아 배를 몰고 임금이 피난한 강화도를 찾아갔으나, 임금이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낙심하여 제주도로 뱃머리를 돌렸다. 그러다 잠시 쉬기 위해 내린 보길도에서 이곳 경치에 취해 정착했다.
정치적으론 불운했으나 해남의 부잣집 종손이었던 그는 보길도를 자기만의 공간으로 꾸며 풍류를 즐겼다. 특히 한국 전통 정원의 모델이라 일컫는 세연정을 조성하고, 아름다운 한글을 절묘하게 구사한 어부사시사를 지어 읊었다. 정계 복귀와 유배로 들락날락하며 13년을 보길도에서 머물다 85세에 운명했다.

© 뉴스1 김초희 디자이너
© 뉴스1 김초희 디자이너

보길도로 들어가려면 해남 땅끝마을이나 완도 화흥포항에서 배를 타야 한다. 각각 30~40분이 소요되며 노화도에 도착한 후, 마을버스를 타거나 가져온 승용차로 보길도로 건너간다. 이른 아침에 들어가 한나절 둘러보고 오후 배로 나오는 여행자가 많다. 배편은 많지만 바람이 세면 운항을 중지하는 경우가 있어 날씨를 잘 살펴야 한다.

새벽에 해남 땅끝마을에 도착하여 별미인 매생이떡국을 한 그릇 비우니 속이 뜨끈하고 든든하다. 매생이가 뜨겁다는 종업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람이 입천장을 데었다고 찬물을 찾는다. 6시40분, 주말의 첫 배에 관광버스와 트럭과 승용차와 사람이 뒤섞여 정신이 없다. 땅끝도 모자라 땅끝 건너 섬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하나 하나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 노화도에 도착하니 갈대(蘆花)섬 답게 누런 갈대들이 바람에 쓸리는 공지가 많다. 보길대교를 넘어서, 보길도 테두리로 난 도로를 15분쯤 달려 섬의 남쪽 끝 보옥마을에 도착한다.
◇ 공룡알 해변–격자봉–큰길재-부용동 6.2㎞ "온통 상록수림 터널, 그림 같은 산과 바다 조망"

공룡알 해변. 주먹 크기, 머리 크기의 몽돌해변을 뾰족한 보죽산이 내려다보고 있다 © 뉴스1
공룡알 해변. 주먹 크기, 머리 크기의 몽돌해변을 뾰족한 보죽산이 내려다보고 있다 © 뉴스1

보옥리 마을의 끝에 공룡알 해변이 있다. 공룡이 알을 무더기로 난 듯, 주먹 크기 이상의 몽돌들이 해안선을 덮었다. 수천 년 동안 매일 파도에 씻기고, 서로 부딪쳐 모가 난 돌은 하나도 없다. 어디서 이 알들이 왔을까? 주변을 둘러보니 파도와 맞닿은 해안선과 뽀족산(보죽산)의 하부가 온통 암반이다. 저 많은 공룡알에서 일제히 아기공룡들이 나오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공룡알 해변에서 바닷가를 따라 예송리까지 약 5km 이어진 탐방로가 있고, 마을 어귀에서 산에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등산로를 향해 가면서 바닷바람으로 육지를 향해 몸이 휘청 기울어진 동백나무숲을 지난다. 북쪽에서 온 여행자에게 동백나무의 하얀 껍질과 빛나는 잎과 검붉은 꽃은 이색적인데, 이 동백나무를 오늘 하루종일 지겹도록 보게 된다.

등산로 초입에 사람 키를 넘는 풀고사리들이 쭉 늘어서 있고, 곧 빽빽한 숲이 하늘을 덮는다. 해변에 공룡알이 있으니 이곳은 쥬라기공원일까? 라는 스토리텔링을 상상해 본다. 완만한 경사의 돌계단에 낙엽이 깔려 푹신한 산길을 30분쯤 올라 뽀래기재에서 능선을 만난다. 뽀래기는 뽀족산 밑에 있는 보옥리를 부르는 사투리다. 능선길도 계속 상록수들이 하늘과 바다를 가리는 나무의 터널이다. 전망이 터지는 3개의 뷰포인트를 제외하면 부용동 마을까지 계속 서늘한 그늘길이다.

동백나무, 후박나무 등의 상록수림 숲터널이 계속 이어지는 능선의 등산로. 숲그늘과 바닷바람으로 시원한 산행을 즐긴다 © 뉴스1
동백나무, 후박나무 등의 상록수림 숲터널이 계속 이어지는 능선의 등산로. 숲그늘과 바닷바람으로 시원한 산행을 즐긴다 © 뉴스1

첫 번째 뷰포인트는 몇 개의 바위가 메주처럼 포개진 누룩바위다. 전망대에서 상록수림에 덮인 육중한 능선과 망망대해를 바라본다. 전망이 터지고 마음도 툭 터지는, 바다와 산을 모두 즐기는 섬 산행의 묘미를 느낀다. 출발한지 1시간30분쯤 걸려 도착한 정상인 격자봉(433m)은 전망대 위에서도 키 큰 나무들로 전망이 가려, 나무를 잘라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립공원에서 나무를 자르다니! 전망대를 높이는 것이 대안일 것이다.

15분쯤 갔을까, 바다로 조망이 확 열리는 두 번째 뷰포인트가 나온다. 바다로 돌출된 바위 끝에 서서 은빛 바다에 그림처럼 떠있는 까만 섬들을 감상한다. 미술관에 서있는 기분이다.

다시 15분쯤 걸어 세 번째 뷰포인트 수리봉에 도착한다. 가까이 발 밑에는 예송리 마을과 해안선이, 시선의 중간에는 예작도, 노화도, 완도 등의 이웃 섬들이, 시선의 끝에는 하얀 수평선이 아른거린다. 섬과 섬 사이는 옥빛 바다에 온통 전복양식장이 기다란 뗏목처럼 바다를 덮고 있다. 전복도 키우고 전복의 먹이인 미역도 키우느라 양식장은 빼곡하다.
 
보길도의 산 능선. 오른쪽에 최고봉 격자봉이 우람하고, 잘 보전된 상록수림이 빼곡하다. © 뉴스1
보길도의 산 능선. 오른쪽에 최고봉 격자봉이 우람하고, 잘 보전된 상록수림이 빼곡하다. © 뉴스1
수리봉에서 내려다 본 해안선과 바다. 발 아래 예송리, 가운데 예작도, 멀리 오른쪽 당사도, 왼쪽 완도가 조망된다 © 뉴스1
수리봉에서 내려다 본 해안선과 바다. 발 아래 예송리, 가운데 예작도, 멀리 오른쪽 당사도, 왼쪽 완도가 조망된다 © 뉴스1

다시 숲터널로 들어서서 기다란 내리막의 끝에 햇빛이 자작대는 큰길재에 도착한다.  이곳은 산행을 계속해서 항구까지 가는 능선길(4㎞)과 예송리 바닷가로 가는 길(1㎞), 그리고 윤선도 유적지가 있는 부용리(1㎞)로 가는 교차점이다. 지나온 격자봉까지는 2㎞다.

부용리로 내려가는 길은 한적한 오솔길이다. 툭툭 떨어져 있는 동백꽃이 마치 길 안내를 하는 것 같다. 꽃을 살짝 즈려밟는다는 표현이 있는데, 누구나 동백꽃만큼은 차마 밟지 못할 것이다. 꽃의 절정기에, 아무 망설임 없이 툭 떨어져, 마치 땅에서 태어난 듯 검붉은 정열이 여전한, 완전한 생명체처럼 보이는 동백꽃이다.

◇ 곡수당–동천석실(왕복)-세연정-청별항 5.5㎞, 예송리 "윤선도의 낙원에서 감탄 연발"

큰길재에서 20분쯤 내려오니 곡수당 뒷담에 매화꽃이 한창이다. 곡수당(曲水堂)은 산에서 내려온 물이 휘어지는 곳에 지은 윤선도 아들의 거처이다. 기와집 앞의 깊은 물길을 건너는 돌다리를 넘어서니, 그 아래 사각형 연못에 주변 풍광이 예쁘게 비친다.
  
곡수당에서 150m쯤 떨어진 언덕에 낙서재(樂書齋)가 있다. 뒤로는 격자봉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앞으로는 부용동 마을이 훤히 바라보이는 윤선도의 거처이다. 본래는 작은 초가집이었으나 후손들이 기와집으로 리모델링을 했다. 마당 앞에 윤선도가 달맞이를 했다는 거북이 형상의 바위가 조용히 업드려 있다. 과연 ‘책을 즐기며 살겠다’는 낙서재의 용도에 딱 들어맞는, ‘서재같은 장소감’을 느낀다.

낙서재에서 정면으로 아득하게 바라보이는 산 중턱의 바위절벽에 동천석실(洞天石室)이 있다. 낙서재에서 1㎞가 넘고, 300m 되는 오르막을 올라야 해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곳은 윤선도의 유토피아 중에서도 가장 윤선도다운 공간이다. 동천(洞天)은 신선이 살 정도로 경치가 아름다운 곳을, 석실(石室)은 바위에 들인 방을 뜻한다
바위절벽 위에 올라, 손바닥만한 정자 앞에 서니, 격자봉 산줄기 밑으로 아늑하게 들어선 부용동 마을과 낙서재와 곡수당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평화롭고 서정적인 풍경이다. 저절로 마음이 가라앉는다. 윤선도가 왜 여기서 독서와 사색을 즐겼는지 알만하다. 주변에는 바위를 파서 연못을 만든 흔적, 차를 마셨다는 돌 탁자, 낙서재에서 음식과 책을 옮기려 설치했다는 도르래 자국이 있다. 직선거리로 1㎞쯤 되는 저 멀리까지 케이블카 비슷한 시설을 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동천석실. 격자봉 능선과 부용동 마을을 내려다보는, 윤선도의 독서와 사색의 장소 © 뉴스1
동천석실. 격자봉 능선과 부용동 마을을 내려다보는, 윤선도의 독서와 사색의 장소 © 뉴스1

부용동 마을로 내려와 도로변의 동백나무 길을 30분쯤 걸어 세연정 원림(園林)에 도착한다. 낙서재와 동천석실이 윤선도가 생활하고 사색했던 조용한 장소라면, 그곳에서 바깥으로 멀리 떨어진 세연정은 손님과 더불어 풍류(파티)를 즐겼던 장소다. '맑고 깨끗한…세연(洗然)'이란 어여쁜 이름의 세연정…그 옛날 360년 전에, 이 머나먼 작은 섬에 이렇게 큰 규모의 연회장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두 개의 연못 세연지(洗然池)와 회수담(回水潭) 사이에 들어선 세연정은, 물에 떠 있는 듯 하늘로 날아갈 듯, 건물 스스로 풍류를 즐기는 듯하다. 창을 모두 하늘로 열어젖힌 정자의 내부를 들여다보니, 가운데 온돌방과 사방의 마루가 다 외부로 개방되어 건물 안과 바깥이 하나의 풍경세트이다.

연못 건너편에서 보면, 정자의 코너에 가지를 늘어뜨린 노송 한 그루와 잔잔한 수면과 연못에 담긴 바위들의 어울림이 절묘하다. 자연에 손을 대면서도 손 대지 않은 것과 같은, 최고의 정원기법으로 디자인 된 전통정원의 톱모델이다.

세연정. 자연에 손을 댄 듯 아닌 듯, 액자 안의 산수화인 듯, 정자와 연못과 나무들이 절묘하게 조화된 전통정원의 모델 © 뉴스1
세연정. 자연에 손을 댄 듯 아닌 듯, 액자 안의 산수화인 듯, 정자와 연못과 나무들이 절묘하게 조화된 전통정원의 모델 © 뉴스1
  
세연정 내부. 온돌방을 중심으로 사방의 마루공간이 바깥 풍경과 연결된다 © 뉴스1
세연정 내부. 온돌방을 중심으로 사방의 마루공간이 바깥 풍경과 연결된다 © 뉴스1

청별항에서 4㎞ 떨어진 곳에 예송리 해변이 있다. 활처럼 휜 해변을 따라 300년 전에 조성한 방풍림이 울창하다. 후박나무, 붉가시나무 등의 난대림 상록수와 팽나무, 졸참나무 등의 낙엽지는 나무들이 섞여 있다. 나무그늘 밑 산책로를 걸으며 짙은 흙냄새와 바닷가 비린내를 동시에 맡는다.

해변에는 파도를 따라 수천 년간 오르락 내리락 했을 검은 자갈들이 오늘도 차르르 차르륵 소리를 내며 몸을 굴리고 있다. 과거에는 공룡알처럼 굵었고, 이제는 달걀처럼 작은데, 언젠가는 검은 모래알이 될 것이다.

완도의 정도리 해변에선 이런 자갈이 예쁘다고 무심코 집어가거나 공사자재나 조경용으로 쓰는 바람에 갯돌이 크게 감소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맨땅이 드러나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이 사라져 갔다. 이에 '갯돌 되돌리기' 운동을 벌여 주민들은 물론, 육지에서도 여행자들이 가져간 자갈을 '반납'해 옛 모습을 되돌렸다. 돌맹이 하나 풀잎 하나도 제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이 자연이다.  

보길도 산행과 유람을 마치고, '깨끗한 이별'이란 뜻의 청별(淸別)항을 떠난다. 언제 다시 올지 기약은 없지만, 오늘 각인된 윤선도의 풍류와 풍경은 오래 남을 것이다. 그의 시대처럼 정치의 다툼이 여전한 지금, 우리 시대의 윤선도는 어디 있을지 두리번거려 본다. 저무는 햇빛에 반짝거리는 바다에서, 교과서에 나왔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어부의 사계절) 중 ‘봄-4’를 읇어본다.

우는 것이 뻐꾸기인가, 푸른 것은 버드나무 숲인가
노 저어라 노 저어라
어촌 두어 집이 안개 속에 들락날락 보이는구나
찌그덩 찌그덩 어여차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至菊悤 至菊悤 於思臥)
맑고 깊은 연못에 온갖 고기가 뛰어 노는구나.

    


stone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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