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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용 작가 "만리장성 쌓듯 '고행'을 쌓았죠"

학고재갤러리서 中 목판활자 활용한 조각회화 신작 공개

(서울=뉴스1) 김아미 기자 | 2017-06-28 17:10 송고 | 2017-06-28 17:17 최종수정
이진용 작가. (학고재갤러리 제공) © News1

"미세한 에너지들의 무수한 빈도로 만들어 낸 작품이에요.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수백년에 걸쳐 바위에 구멍을 내는 것처럼요. '만리장성'을 쌓듯 고행을 쌓았죠."

트렁크와 고서(古書)를 이용한 회화 작업으로 유명한 이진용 작가(56)가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28일 기자들과 만나 중국의 목판활자를 이용한 이른바 '조각회화' 신작 '타이프'(Type) 시리즈를 공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진용 작가가 '컨티뉴엄'(Continuum)이라는 주제로 오는 30일부터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고서 이미지를 이용한 '하드백'(Hardbacks) 시리즈와, 목판활자를 활용한 '타이프' 시리즈,  그리고 타이프 시리즈와 동일한 방법으로 제작한 '컨티뉴엄' 시리즈 등 총 223점을 선보인다.
이진용 작가. (학고재갤러리 제공) © News1

특히 타이프 시리즈는 2014년부터 준비해 이번 개인전에서 국내에 처음 소개한다. 작가는 "44년 붓을 들었지만 올해부터가 시작이라는 기분"이라며 밝은 모습이었다.

신작 타이프 시리즈는 수행을 하듯 작품 하나하나에 무수한 반복과 고도의 집중을 통해 자신만의 '우주'로 응축시킨 작업이다. 펄프 소재에 흙과 화학 재료 등를 섞어 작가만의 혼합 주물(鑄物) 재료를 만든 다음, 300~400년 된 중국 목판 활자를 본떠 형태를 만들고, 수성 에폭시를 바르고 말리는 과정, 석분을 뿌리고 물로 씻어내는 과정, 닦고 광을 내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다.

에폭시 성분을 바르고 열흘 정도 건조를 시킨 다음 채색을 하고 또 다시 90% 정도의 색을 씻어내는 작업을 반복하고 나면, 마치 땅 속에서 발굴한 화석처럼 시간성을 지닌 오브제로 모습을 갖추게 된다.

상상 속의 고서 이미지를 구현한 하드백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수없이 많은 선들을 긋고 지우기를 반복해 책장 한 장 한 장을 표현한다.

이진용의 회화나 조각회화 작품은 구상이나 극사실주의 회화로 구분하기 쉽지만, 윤재갑 하오아트뮤지엄 관장은 전시 서문에 "구상도 사실주의도 아니다"라고 썼다. 윤 관장은 "이진용의 작업실에는 사방 빼곡히 책이 가득하지만, 책을 보고 그린 그림은 아니다"라며 "책의 체취를 맡고 그것을 그림 속에 옮겨 놓은 것으로, 시각이 아닌 '오감'으로 그린 그림은 '사물의 외형을 버리고 내재된 이미지는 취한다'는 뜻의 '사형취상' 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평했다.
Type, 2017, Mixed media, Size variable (학고재갤러리 제공) © News1

이진용 작가는 '골동품 컬렉터'이기도 하다. 작업실을 동서양 골동품들로 '발 디딜 틈 없이' 채워놓을 정도다. 타이프 시리즈 역시 25년 전 중국에서 구입한 수십만개의 목판활자 컬렉션을 토대로 시작된 작업이다. "수백년 된 골동품들이 작업의 원동력"이라는 작가는 "작품 100을 팔면 120을 골동품 사는 데 쓴다"고도 했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 현재도 부산을 근거로 작업하고 있는 작가는 무서울만큼 엄청난 작업량과 절제되고 규칙적인 생활을 자랑했다. 이를 테면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30분까지 목판 활자를 이용한 타이프 시리즈 작업을 하고, 이후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회화 작업을 하는 식이다.

먹고 잘 시간도 제대로 없이 일주일을 하루 같이 쓰며 작업한다는 작가는 "일상적으로 먹고 자는 생활로는 이같은 작업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내 스스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게 하는 작업"이라며 "작업실에서 고행을 즐긴다"고 했다.

강박적으로 노동력을 투하하는 작업을 하게 된 건 타고난 성격 때문이다. "유년시절 고찰(古刹)에 가면 손 끝에 묻어 나오는 먼지가 그렇게 좋았다"며 "수백년 누적된 에너지가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가장 미련한 짓이 딱 내 체질"이라는 설명도 따랐다.

"제 작업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에너지는 '막연함'입니다. 그 막연함에는 확장성이 있는 것 같아요. 천재적 순발력으로 하는 작업이 아닌 노동력으로, 제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어려운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미련하고 우둔한 선비처럼요." 전시는 7월30일까지.

고서 이미지를 차용한 '하드백' 시리즈 세부 모습. 2017.6.28/© News1 김아미 기자


한자 목판을 활용한 '타이프' 시리즈 세부 이미지. 2017.6.28/© News1 김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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