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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경 작가 "분단, 무속신앙…내겐 너무 뻔한 작업들"

5월 국제갤러리서 5년만에 개인전 앞둔 박찬경 작가 인터뷰

(서울=뉴스1) 김아미 기자 | 2017-01-15 16:16 송고 | 2017-01-15 19:08 최종수정
박찬경 작가가 12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의 작업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News1 안은나 기자


12일 목요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박찬경 작가의 작업실은 다분히 의외적이었다. 아무래도 한국 최고의 영화감독 박찬욱 씨의 동생이라는 '가족 명함'이 주는 편견 때문이었겠지만, 냉기 도는 그의 지하 작업실은 낯설면서 신선하고 동시에 영상을 주요 매체로 작업하는 예술가의 것이라고 하기엔 첨단 촬영 장비보다 책장에 꽂힌 인문학 서적이나 오래된 DVD 같은 것들이 먼저 눈에 띄는 곳이었다.

평론가로 먼저 활동했던 그가 1997년 서울 금호갤러리에서 '블랙박스: 냉전 이미지의 기억'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열고 미술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지 올해로 20년째다. '세트'(2000), '파워통로'(2004), '비행'(2005), '신도안'(2008), '그날'(2011), '갈림길'(2012), '만신'(2013) 등 그의 작업은 언제나 한국사회를 비추는 정치사회적 이슈들에 천착했다.

대통령 '비선실세'들의 국정농단 사태와 더불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정국을 뒤흔드는 이 때, '빨간 딱지' 붙고도 남음직한 작업을 해 온 작가인 그에게 '검은 칠'이 돼 있지 않았다는 건 또 다시 의외였다. "블랙리스트요? 뭐 어딘가에 서명한 사람들 기준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저는 없지 않을까요."

아무려나 상관없다는 투로 블랙리스트 정국에 대한 나름의 경험담을 이어갔다. 2014년 서울시립미술관의 세마(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 예술감독을 맡았을 당시 '귀신, 간첩, 할머니'라는 제목에 대해 국정원으로부터 '간첩이 무슨 뜻이냐'는 내용의 '문의' 전화가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영어로는 '스파이'(Spy)이니, 따지고 보면 007 시리즈도 간첩을 다룬 영화이고 분단을 주제로 한 영화에도 빈번히 등장하는 것이 간첩인데, 미술에서 간첩이라는 용어를 썼을 때 왠지 검열을 당하게 될 것만 같은 위축감, 그는 그것이 되레 '작명'의 의도였다고 했다.

분단, 냉전, 무속신앙 등, 박찬경이 내놓는 이야기들은 어쩌면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를 현대사회에 여전히 극복되지 못한 근대성을 되짚는 작업들이었다. "제 작업의 주제들이 독특하다고요? 너무 뻔한 작업을 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을 받는 게 맞아요. 그리고 저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놔야 하는 거고요. 우리나라에서 예술이란 정치, 사회와 무관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어요. 그 자체가 분단의 소산이라고 봅니다."

오는 5월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5년만에 개인전을, 이보다 앞선 4월에는 독일 베를린 세계문화의집에서 그룹전을 앞두고 있는 박찬경 작가를 만나 작업 이야기들을 미리 들어봤다.

박찬경 작가가 12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의 작업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News1 안은나 기자


◇분단, 냉전, 무속신앙…지금 우리를 말해주는 것들

"분단은 세대를 초월해 지금 한국사회의 성격을 규정짓는 가장 강력한 키워드입니다. 박근혜-최순실 사태도 따지고 보면 분단 상황과 무관하지 않아요. 원인과 결과를 구분해 해석할 순 없지만, 지금과 같은 통치체제가 만들어진 건 분단의 영향이 큽니다."

박찬경 작가는 지난해 5~6월 미국 뉴욕에 위치한 티나킴갤러리에서, 앞서 2015년 1~3월에는 영국 이니바 국제현대미술기관에서 각각 미국·영국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가 서구 관객들에게 보여준 건 분단 상황과 같은, 한국 현대사의 정치, 사회, 종교에 걸친 음성적인 유산과 잔재들을 비평적으로 접근한 작품들이다.

답답하리만큼 '답'이 보이지 않는 국내 현실 문제들을 채색하지 않고 보여주는 그의 영상 작품들은 해외에서 더 주목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 6월 스위스 '아트바젤'의 필름 프로그램에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소재로 한 다큐 필름 '비행'을 소개한 독일 큐레이터 막사 졸라는 "한국의 정신적 트라우마인 분단 현실에 대해 그간 예술계에서는 많은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으며, 복잡하고 고통스러워 때로 우리 시야 밖으로 밀려나 있는 이 주제에 대해 절대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찬경 작가가 분단 현실에 주목하게 된 건 동시대 또래들과 함께 체화한 반공 학습의 영향이 있었다. "반공 교육을 받았고, 데모도 해야 했고, 군대도 가야 했죠. 이 모든 게 우리 세대에 내면화된 거예요."

작가의 청년기를 지배한 정치사회 현실은 자연스럽게 작업 전반에 뿌리내렸다. 그는 "작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작업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예술이 현실에 발언해서는 안 된다고 자기검열하는 것은 독재국가에서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반면 토착신앙의 명멸을 다룬 '신도안, '만신' 등은 그에 비해 조금 특별한 주제라고 했다. 10여년 전, 그에게 일종의 '종교적 체험'이 있었는데, 심리학자들은 정신병에 걸렸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이름 붙이기에 따라서는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지만 '간증할 수 없는 어떤 체험'으로 인해 세계관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세월호 비극이 일어난 것도 그렇고, 결국은 한국의 근대성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져요. 다른 곳에서는 안 나타나는 현상이 여기서는 나타나니까. 이 장소의 특수성이 뭐냐, 왜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느냐를 생각해 보면, 그 중 매우 중요한 키워드가 '종교'라는 거죠."

그는 "한국은 신흥종교의 메카같은 곳"이라며 "한국에 왜 이토록 독특하고 다양한 종교현상이 벌어지는지, 종교문화들이 어떻게 왜곡, 억압, 변형됐는지를 들여다보면 우리사회가 보인다"고 했다.

박찬경 작가가 12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의 작업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News1 안은나 기자


◇다른 앵글로 바라보기, 미술이기에 가능한 일

분단이니 무속이니 하는 근대적, 혹은 전근대적 주제에 천착하는 이유는 결국 오늘을 제대로 보기 위함이다. "우리 현실을 제대로 보기 위해 거슬러 올라가 찾은 키워드들이에요."

"규범화된 장르 없이 우주처럼 넓은" 미술 영역에서야말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다양한 각도(앵글)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앵글로 바라보기'는 최근의 작업에서도 연결되고 있다. 오는 4월 베를린 그룹전에서는 1930년대 일본 교토대학 엘리트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교토학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생각이다. 일제 군국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사상가 그룹을 고찰하고 오늘의 일본을 다른 앵글로 바라본다.

"'카미가제'의 희생을 이념적으로 지원한 게 교토학파였어요. 실제로 문제가 많았고, 비난을 받기도 했죠. 하지만 이들은 나름대로 아시아가 세계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위기에 봉착한 서구 문명 대신 이제 아시아가 중심이 돼야 한다는 거죠. 우리는 일본에 대해서는 친일과 반일의 프레임으로만 바라봐요. 오늘날 한·일 관계를 극복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되는거죠. 이러한 문제들을 좀 더 다양하게, 다르게 봐야 합니다."

그는 "일본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구와 비슷한 속도로 근대화를 이룬 나라"라며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는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해결됐는지를 돌아보면, 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실마리가 보인다"고 덧붙였다.

5월 국제갤러리 개인전에서는 지난해 '타이페이비엔날레'에 먼저 선보였던 '시민의 숲'(Citizen's Forest, 2016)을 매만져 국내 관객들에게 처음으로 소개한다. 세월호 사건을 비롯해 한국 근·현대사를 소재로 한 영상작업으로, 당시 영국 대표 예술매체 '프리즈'(Frieze)에서 "타이페이비엔날레 쇼의 가장 빼어난(Striking) 작품 중 하나"라고 호평하기도 했다. 박찬경은 이 작품을 메인으로, 드로잉, 설치작업 등 신작을 내놓을 예정이다. 전민경 국제갤러리 디렉터는 "우연찮게도 지금 한국의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한 작품이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박찬경 작가가 12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의 작업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News1 안은나 기자


◇분노는 너무 쉬운 것…더 나아가야 한다

형인 박찬욱 감독과의 공동작업도 새해 추진하고 있는 일 중 하나다. 그는 2011년 박찬욱 감독과 함께 만든 스마트폰 영화 '파란만장'으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단편영화부문 '황금곰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들 형제는 '파킹 찬스'(Parking Chance)라는 팀 이름으로 2013년 가수 이정현의 노래 '브이'의 뮤직비디오를 공동 제작하기도 했다.

"형은 상업영화를 하는 사람이니, 돈 버는 일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작업하는 걸 해보고 싶다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기회가 생길 때 같이 한 건데, 그게 형에게도 해방감을 주나 봐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거꾸로 미술이라는 건 미술 관객에만 한정돼 있으니까. 성격이 다른 관객들을 만나는 것이나, 대중이 많이 보는 작품을 하고 싶을 때가 있죠. 그 '중간'을 찾는 프로젝트들을 한동안 같이 했었는데, 이제 다시 찾는 중입니다. "

형제의 새 프로젝트는 장편 상업영화다. 박찬경 작가가 시나리오, 연출을 맡고 박찬욱 감독이 제작을 맡는 방식이다. "상업영화는 오랫동안 준비를 해 왔어요. 각색하는 시간도 많이 걸렸고요. 형이 제작을 맡아준다 하더라도 펀딩은 또 다른 문제니까. 남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영화하고 싶음 하는 거지'라고 하는데 시나리오 들고 다니며 일일이 투자를 받아와야 해요."

그는 시나리오를 완성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이미 한번 '까였다'고도 했다. "상업적인 영화니까 재미있는 시나리오가 필요한데, 익숙하지가 않아요. 하면 잘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잘 안 되네."(웃음)

서로의 작품에 대한 코멘트를 하느냐고 묻자 "가족끼리 뭘 그런 걸 하느냐"고 답했고, "형이 유명인사이니 펀딩이 쉽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가족 도움을 받는다는 자체가 상당히 '거시기'하다"며 웃었다.

격동의 시대, 박찬경 작가는 예술인들에게는 지금이 매우 중요한 때라고 말했다. "분노도 해야 하고 비판도 해야 하지만 오히려 그런 것들은 너무 쉽다"는 거다.

"쉬운거 보다 더 나아가야죠. 미술인도 그렇지만, 직업의식이 중요해요. 우리 모두 직무유기를 한 거니까. 비판의 10%는 자기반성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고 보니, 대통령이 직업의식이 없었네요. '국정농단'이란 말도 이상하고요. 국정이 없었는데 농단이라니…."

박찬경 작가가 12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의 작업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News1 안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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