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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될 권리①] 시각장애인에게만 보이지 않는 모니터

회사 그룹웨어 웹접근성 보장 안돼…법은 있으나 마나?
차별 행위라도 처벌은 미미…정부·기업 관심 기울여야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2021-05-08 07:00 송고 | 2021-05-08 17:14 최종수정
편집자주 우리는 온라인을 통해 만나고 관계 맺고, 일을 하고, 논다. 하지만 만인을 위한 자유로운 광장인 줄 알았던 온라인 세상에도 입장을 위해 넘어야 할 턱이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온라인 세상은 가깝지만 먼 곳이다. 법은 턱을 없애고 경사로를 만들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여러차례 입장을 거부당한 이들에게 법은 멀게 만 느껴진다.
지난 4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자택에서 시각장애인 조영규씨가 자신의 노트북으로 'e나라도움'(국고보조금통합관리시스템) 홈페이지를 살펴보고 있다. 2021.5.4/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지난 4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자택에서 시각장애인 조영규씨가 자신의 노트북으로 'e나라도움'(국고보조금통합관리시스템) 홈페이지를 살펴보고 있다. 2021.5.4/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지난 4일 어린이날 휴일을 앞두고 연차를 낸 시각장애인 조영규씨(31)는 우울한 감정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휴가를 마치고 목요일 직장에 다시 출근하면 또 머리를 옥죄어 오는 고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 억울한 것은 그는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저 열심히 직장을 구했고 마음에 드는 일이라고 생각해 최선을 다하려고 했는데 일을 하기 위한 도구들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영규씨는 서울에 있는 한 장애인 관련 공직유관단체에 채용돼 지난달부터 일을 시작했다. 행정업무를 맡게 돼 업무 인수·인계를 받게 된 첫날부터 영규씨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영규씨가 사용하는 시각장애인용 '스크린 리더'(Screen Reader) 프로그램이 회사의 그룹웨어 시스템의 핵심 기능들을 인식하지 못해 업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스크린 리더는 컴퓨터 모니터 표시되는 화면을 음성으로 읽어주는 프로그램으로 시각장애인들이 컴퓨터를 이용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장치다. 시각장애인은 마우스 커서를 이용하기 힘들기 때문에 키보드의 여러 단축키와 탭(Tab)키, 방향키 등을 이용해 원하는 메뉴와 내용들을 찾는다. 방향키 등의 버튼으로 지정된 항목을 하나씩 넘기면 스크린 리더가 해당 항목의 내용들을 소리로 읽어줘서 파악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영규씨의 회사가 사용하는 그룹웨어의 경우 화면에 어떤 내용이 나오는지 알기 위해 키보드를 조작해 봐도 업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능들이 먹통이었다. 메일 확인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결제 시스템의 경우에는 기안 장성화면을 켰을 때 본문 작성 칸을 아예 인식하지 못했다.

"첨부파일 항목 다음에 본문 내용이 있을 텐데 지금은 바로 '문서 끝'으로 인식을 해요. 이러면 저한테는 중간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으로 인식이 되는 거죠." 영규씨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룹웨어 시스템을 사용하며 겪었던 문제를 재현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룹웨어 시스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같은 업체에서 개발한 사내 메신저 프로그램은 스크린 리더 프로그램이 전혀 인식하지 못해 사용이 불가능했다. 업무를 위해 꼭 사용해야 하는 국가기관의 웹사이트에서도 불편함은 이어졌다. 보조금 지급 등을 위해 사용하는 'e나라도움'(국가보조금통합관리시스템) 사이트에서도 문서 내용 확인, 문서 선택 등 필수적인 기능들이 지원되지 않아 사실상 사용이 불가능했다.

영규씨는 결국 장애인 근로지원인에게 계속해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원래는 제가 대부분의 일을 하고 특수하게 시각적인 업무가 필요할 때 도움을 받는 것인데 이제는 누가 일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사실 국내 법은 영규씨처럼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비장애인과 동일한 정보접근성을 지녀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적용 대상 확대로 2013년부터 모든 공공기관과 법인의 웹사이트에서 장애인들의 웹접근성 준수가 의무화됐다. 더불어 지능정보화기본법에서도 장애인과 고령자 등이 웹사이트나 이동통신단말장치를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법은 공공연하게 무시되고 있었다. 영규씨는 회사의 그룹웨어를 개발한 더존비즈온에 현재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했지만 돌아온 것은 "개선 계획이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취재가 진행되자 더존비즈온 측은 "제보자(장애인)를 차별하려는 어떠한 고의도 없었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향후에는 불편함을 느끼는 이용자가 없도록 노력하겠다"라면서도 프로그램 개발 등의 비용 문제로 '모든 업체가 일률적으로 시각장애인용 대용기능을 개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나마 공공기관 사이트인 e나라도움 측은 영규씨가 일하는 직장을 직접 찾아와 해결책을 모색하고 개선의 의지가 있음을 밝혔다. 하지만 e나라도움 역시 영규씨에게 '현재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올해 안에는 개선이 어렵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자신이 들었던 답변을 이야기하면서 영규씨는 "그나마 개선 의지를 보여 준 것에 대해서는 희망적이었는데 아예 개선할 계획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절망적이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영규씨와 같이 피해를 입는 장애인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한 원인으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에 대해 강하게 처벌하지 않는 관행과 정부와 기업의 무관심 등을 들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처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어기는) 차별이라고 할지라도 형사적인 처벌을 가하기가 쉽지 않다"라며 "신고가 되어도 경찰은 계도나, 사과 정도의 조치를 하고 종결하는 경우가 많고, 차별이 학대에 준하는 정도가 돼야 형사처벌을 받는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사무처장은 "피고용 된 장애인이 그만둘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소송을 제기하고 형사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렵다"며 차별 행위가 일어나면 당사자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하거나 민사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정도의 조치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김 사무처장은 인권위 진정의 경우 1년여 정도 시간이 걸리고 강제력 있는 조치보다 조정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서비스를 제공하는 당사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문형남 웹발전연구소 소장(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의 경우 "웹접근성이 계속된 노력으로 조금씩 좋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허점들이 있다"라며 "지식정보화가 계속해 진전되면 이런 문제들이 계속 터져 나올 텐데 정부가 이에 대해서 너무 방심하고 소홀히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문 소장은 정보접근성 문제가 계속되고 있음에도 이 문제를 해결할 예산이나 인력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 정부의 무관심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출처: 2020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 보고서)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출처: 2020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 보고서)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이런 상황에서 시각장애인들의 정보접근성은 크게 개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발간한 '2020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의 인터넷 이용률은 62.3% 전체 유형의 장애인 중 가장 낮았다. 일반 국민의 인터넷 이용률은 91.9%였다. 과기부가 웹접근성 품질인증 기관을 선정하고 인증을 발급하고 있지만 웹접근성 인증을 획득한 웹사이트는 1만여 곳 정도로 국내 전체 웹페이지의 1%도 되지 않는다.

한편, 영규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레베르시신경병증(Leber’s hereditary optic neuropathy)이라는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게 된 뒤 발병 두달여만에 시각을 거의 잃게 됐다. 현재는 시야의 주변부만 희미하게 보이고 중앙부는 안개가 낀 것처럼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면 살아갈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삶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가장 큰 역경은 취업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운이 좋게 몇몇 회사에서 일을 했지만 시각장애인을 채용하는 곳이 많지 않았고 대부분 단기 아르바이트 일자리뿐이었다. 그렇게 몇년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찾은 것이 지금의 직장이다. 너무나 원하던 일자리였고 적성에도 맞는 업무라고 생각했는데 일을 할 수 있는 도구가 없어 도움만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 너무 답답했다.

현재 영규씨는 자신의 상황이 변화하지 않을 것 같다는 좌절감에 회사에 업무를 변경해 줄 것을 요청한 상황이다. 그는 정부에서는 장애인들을 많이 채용하라고 하면서 정작 일을 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이렇게 무관심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potgu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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