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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발단된 국립극단…'검열' 논란 재점화

2016 창작극 담당 직원 "(박근형의) 개구리같은 작품 쓰지 마라"

(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 | 2017-03-20 12:05 송고 | 2017-03-21 12:42 최종수정
국립극단 사과문 (갈무리=국립극단 홈페이지)
국립극단 사과문 (갈무리=국립극단 홈페이지)

국립극단(예술감독 김윤철)이 2016년 자체 창작극 개발 사업인 '작가의 방'에 참가한 극작가 9명에게 "개구리 같은 작품을 쓰지 말아 달라"고 강요했다는 것이 지난 1일 발행된 계간지 '연극평론'을 통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작가의 방'은 국립극단이 마련한 창작극개발 사업이며 30대 극작가 10명을 자체 선정해 지난해 11월 5~13일 작품 6편을 '국립극단 작가의 방 낭독극장'(낭독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올렸다. 박근형 연출의 연극 '개구리'는 2013년 국립극단에서 올린 작품이며 박정희·근혜 전 대통령 부녀를 풍자했다는 이유로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검열과 '블랙리스트' 사태의 시발점이 됐다.
◇ 극작가 고연옥 계간 '연극평론' 통해 문제제기

극작가 고연옥은 '연극평론'에 게재한 기고문 '왜 한국의 극작가들은 교육 혹은 교정의 대상인가 - 국립극단 '작가의 방을 통해 들여다본 국립극단 창작극 부재의 이유'에서 국립극단이 '개구리'같은 작품을 쓰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작가의 방' 프로젝트에서 젊은 극작가를 이끄는 멘토 역할을 맡은 고 작가는 "검열 문제를 떠나서라도 국립극단은 극작가들을 예술가로 존중하는 태도가 없다"고 주장했다.

고 작가의 기고문이 논란이 되자 '작가의 방'사업에 참가했던 구자혜, 김슬기, 이오진 극작가들이 당시 상황에 대한 증언을 뒷받침했다. 구자혜는 "작가들이 '정부 혹은 국가를 비판하는 희곡을 써도 되냐'고 물으니, 정 팀장이 '노!'라고 답했다"고 했고, 이오진은 "‘사회비판은 극단에 가서 하시고, 국립극단을 위한 걸 써주세요’라고 해 모든 작가들이 ‘그런(개구리) 사태를 만들지 말라’라는 뉘앙스로 알아들었다"고 했다.
◇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 사과 "직원 견해일 뿐, 검열 압력 없었다"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이같은 내용이 언론보도와 SNS를 통해 확산되자 지난 17일 국립극단 홈페이지에 "직원 견해일 뿐, 검열 압력 없었다"는 사과문을 게재하며 진화에 나섰다.

김 예술감독은 사과문에서 "지난해 극단의 자체 프로젝트에 참가한 극작가들에게 ‘개구리’ 같은 작품을 쓰지 말아 달라고 강요했다는 보도는 정명주 국립극단 공연기획팀장의 개인적 견해일 뿐이며 압력은 없었다"며 박근혜 전 정부의 정치 검열과의 관련성을 부인했다.

그는 또 "3월 16일자 한겨레 보도 이후 국립극단 내부 조사 결과, ‘개구리’로 대표되는 사건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하는 과정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발언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면서도 "그러나 이는 해당직원의 개인적인 견해로서 문화예술계 검열과 블랙리스트에 따른 별도의 지시나 압력과는 무관하게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국립극단 직원의 개인적인 견해라고 하여도 국립극단 또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 이번 사태를 거울삼아 예술가들의 창작의 자유를 보장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고도 했다.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 © News1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 © News1

◇ 연극인들 "전형적 꼬리자르기" vs 정명주 공연기획팀장 "말꼬리 잡기식 마녀사냥"

극작가들과 연극인들은 국립극단 사과문에 대해 "직원 개인의 일탈로 축소하는 전형적 꼬리자르기"라고 반발했으나 당사자인 정명주 국립극단 공연기획팀장은 지난 19일 젊은 연극인들의 연대모임인 '대학로X포럼'에 반박글을 올려 "말꼬리 잡기식 마녀사냥"이라고 폄하해 재점화된 검열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연극인들은 국립극단의 사과문에 대해 일제히 성토에 나섰다. 김재엽 연출가는 "국립극단이 '개구리'에서 출발한 '자기검열 콤플렉스'(self-censorship complex)가 근본적인 문제"라며 "국립극단은 본인들이 만들고 제작한 작품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 없었고, 지금도 여전히 없다"고 꼬집었다. 김소연 연극평론가는 지난 17일 페이스북 연극인X포럼에 "이번 해명은 문체부가 '블랙리스트(문건)을 보지 못했다'는 식으로 피해갔던 것과 판박이처럼 똑같다"고도 했다.

'작가의 방' 프로젝트에 참가한 극작가들도 국립극단의 사과문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최초 문제를 제기한 고연옥 작가는 "단지 직원 한 사람의 말실수 문제로 축소하지 말고 좀 더 진솔한 답변과 반성을 요구한다"고 했고, 구자혜 작가는 "국립극단이 검열의 문제를 한 직원의 개인적 견해였다며 낙인찍는 것과 해당 직원이 '좋은 의도'였다고 강조하는 것 모두 이상하기 짝이 없다"고 했다.

특히 김슬기 작가는 "논란이 된 발언 이후에도 '작가의 방'에 참가하면서 내 의견을 제대로 발언한 적이 없었다"며 "그때그때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나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지고 바보 같았다"고도 했다. 이어 "작가의 작품 세계보다는 국립극단의 일정이나 목표가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나는 작가적 자존감을 점점 잃어갔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정명주 국립극단 공연기획팀장은 지난 19일 젊은 연극인들의 연대모임인 '대학로X포럼'에 반박글에서 "말꼬리 잡기식 마녀사냥"이라며 연극인들의 문제 제기를 폄하해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정명주 팀장은 "고연옥·구자혜 작가가 제기하는 ‘작가의 방’의 운영상의 문제에 있어서는 신중히 숙고하겠다. 의견의 차이는 있을 수 있고 아직 시행착오를 겪는 초기단계여서 개선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국립극단 작가의 방에서 검열로 인한 강요를 한 적은 없다는 점은 분명히 밝히고 싶다"고 운을 뗐다.

그는 "검열의 과거를 파헤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특정한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의심과 부정확한 기억을 바탕으로 말꼬리를 잡는 것은 마치 마녀사냥의 형국을 띠는 것 같다. 허심탄회하게 진실을 말하는 것이 두렵지 않게 해달라. 그래야 우리 모두 검열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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