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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확장] 평양에도 중심업무지구가 생길까?

변화하는 평양의 도시 계획과 풍경
류경호텔 인근 지역이 향후 개발 유력

(서울=뉴스1) 임동우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프라우드 건축사무소 공동 소장 | 2020-11-14 08:00 송고
편집자주 [시선의 확장]은 흔히 '북한 업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 주목받지 못한 북한의 과학, 건축, 산업 디자인 관련 흥미로운 관점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임동우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 뉴스1
임동우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 뉴스1
도시에서 흔히 '중심업무지구'라고 불리는 지역이 있다. 영어의 CBD(Central Business District)를 번역한 단어다. 서울에서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옛 4대문 안 지역과, 한국 금융의 중심지인 여의도를 비롯한 영등포 일대, 그리고 한국 경제의 상징이 된 테헤란로 일대의 강남지역 등이 대표적인 중심업무지구다.

중심업무지구의 발전이 늘 도시의 역사와 함께 한 것은 아니다. 근현대 도시는 산업혁명과 함께 성장했고, 도시는 오피스 건물이 아닌 공장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산업혁명을 지나며 도시는 생산을 위한 공장이 몰려있는 곳을 뜻 했으며,이곳으로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이 몰려들며 대도시로 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20세기에 들며 대량생산 시스템이 갖춰지게 되었고, 크다 못해 거대해진 공장들은 도시 내에서는 성장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기존의 대도시는 아니지만, 해상물류와 충분한 토지, 그리고 공업용수가 공급되는 지역을 찾아 떠났다.

그렇다면 대도시에서 사람들이 사라졌을까? 아니다. 2차 산업 공장이 떠난 도시에는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며, 이는 금융을 필두로 한 3차 산업의 성장 덕분이었다. 이제 도시의 사람들은 물리적인 생산을 하는 노동력이 아니라, 무형의 가치를 만들어 내고, 또 소비하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도시에는 공장보다는 오피스 업무 공간이 더 필요하게 됐고, 더욱 더 효율적인 업무와 도시 인프라의 구성을 위하여 중심업무지구가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사회주의 도시에서는 어떨까. 북한에 중심업무지구가 있을까. 답은 "현재로서는 아니오"다.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 도시에서는 기본적으로 3차 산업보다는 1, 2차 산업, 즉 직접적인 노동을 통한 생산 산업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들 산업에 종사하는 계층이 사회주의 혁명의 근간이 됐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에도 우리가 3차 산업이라고 여길 수 있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있긴 하다. 그곳에도 여행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건축이나 디자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북한의 산업을 지탱하는 것은 생산을 기본으로 하는 1, 2차 산업이다. 때문에 중심업무지구는 구조적으로 아직 북한의 도시에 적용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생산시설이나 주거, 혹은 문화시설이나 공원 등을 도시 내에서 어떻게 적절히 분포시킬 지에 대한 기준은 있지만 업무시설에 관한 내용은 없는 것이 북한 도시의 특징이다.

평양 양각도 호텔에서 바라본 대동강 주변 풍경. 2017.4.4/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평양 양각도 호텔에서 바라본 대동강 주변 풍경. 2017.4.4/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그리고 이는 도시 경관에서도 큰 차이를 불러왔다. 현재 서울에서, 아니 한국에서 제일 높은 건물은 잠실 롯데타워다. 그리고 이제 곧 그 지근거리에 그보다 조금 높은 현대 GBC가 세워질 예정이다. 두 건물 모두 100층이 넘고 500미터를 훌쩍 넘는 규모의 건물이다. 이 둘은 모두 업무시설이다. 물론 특수한 주거형식과 호텔이 포함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업무시설이다. 이들 전에는 오랫동안 서울의 상징이었던 여의도 63빌딩이 있다. 역시나 업무시설이다. 그렇다면 평양은 어떠할까.

가장 높은 건물은 물론 100층 규모의 류경호텔이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최근 80층 규모로 건설된 려명거리의 살림집, 50층 규모로 건설된 미래과학자 거리의 살림집 등 모두 주거시설이 초고층 건물을 형성하고 있다. 비단 김정은 시기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미 김정일 시기에도 통일거리, 광복거리 등에 40층 규모의 가장 높은 살림집들이 건설되었다. 업무시설의 부재는 도시 경관을 형성하는 방향도 다르게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떨까. 북한의 경제 구조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이미 상업과 소비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하였고, 이는 금융 서비스 산업의 태동에 영향을 끼쳤다. 사회주의 협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작게나마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크진 않지만 잉여자본이 발생하고 이를 소비하게 하기 위한 업종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변화는 필연적으로 건축의 변화를 가져오고, 도시의 변화를 가져온다. 베를린의 경우를 보자. 원래 베를린의 가장 활발한 중심가였던 포츠다머 플라츠는 전쟁 후 동-서 베를린을 나누는 장벽이 관통해 완전히 황폐화된 곳이었다. 하지만 장벽이 무너진 후 이곳은 베를린의 새로운 중심지 역할을 했다. 중심업무지구가 들어서면서 교통과 문화시설 등 다양한 용도가 접목된, 그야 말로 베를린의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나가는 역할을 하는 장소로 재탄생 한 것이다.

아마도 북한의 도시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중 평양은 북한의 대표적인 중심업무지구를 구축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 있는 후보다. 그러면 평양의 어떤 곳에 중심업무지구가 들어설 것인가.

중심업무지구라고 해서 꼭 도시의 중심에 있지는 않다. 파리의 경우 중심지는 신축, 높이에 대한 규제가 많기 때문에 중심업무지구인 '라데팡스'를 도심에서 약 5km 정도 떨어진 곳에 개발하였다.

평양도 파리처럼 도시 외곽에 중심업무지구를 새로 설정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보다 더 가능성이 높은 것은 전형적인 도심의 중심업무지구 설정일 것이다. 새로운 인프라와 배후시설 구축에 대한 부담을 덜고, 기존 도시 조직 내에서 더 효율적인 개발방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양시내에서 바라본 류경호텔. 2018.10.7/뉴스1 © News1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평양시내에서 바라본 류경호텔. 2018.10.7/뉴스1 © News1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그리고 평양에는 이미 중심업무지구에 매우 적합한 지역이 개발돼있다. 바로 앞서도 잠시 언급한 류경호텔이 있는 보통강구역의 일부다. 이미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건물에 속하는 류경호텔의 존재감만으로도 이곳은 중심업무지구로서의 입지를 충분히 다지고 있다.

사실 류경호텔은 1990년대에 북한이 국제 기업을 유치하겠다는 목표로 계획된 호텔이었다. 당시 고려호텔, 양각도 호텔 등 관광객을 위한 호텔 등은 있었지만, 기업인을 위한 호텔은 전무했고, 류경호텔은 여러 국제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하나의 선제적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그것이 착공한 지 불과 몇 년 후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며 골조공사만 마친 채 10년이 넘게 흉물스럽게 방치됐다. 따라서 언젠가 평양에 중심업무지구가 필요하게 된다면, 아마도 류경호텔 주변으로 여러 업무시설과, 컨벤션, 기타 상업 및 주거시설 등이 결합된 개발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지역은 평양의 중심으로 기준 삼을 수 있는 김일성 광장에서 불과 2km, 도보로 30분 내외 거리에 위치하며 이미 평양의 지하철 노선이 지나가고 '건설역'이 정차하는 지역이다. 보통강과 경흥거리 및 혁신거리로 둘러싸인 이 지역의 규모는 서울의 여의도 전체 면적 보다는 작지만 여의도 중심업무시설들이 밀집해있는 동여의도 규모 정도는 된다. 밀도 있는 개발을 통해 충분히 평양뿐만 아니라 북한 전체의 산업을 이끌 수 있는 업무지구로 개발 가능하다는 말이다.

류경호텔 주변이 중심업무지구로 개발될 수 있다는 제안은 사실 필자가 2011년 출간한 책에서 처음 주장했다. 북한은 작년에 류경호텔 주변 청사진을 발표하며 이 일대의 대규모 개발을 예고했다. 이 청사진만 보고서는 이곳이 중심업무지구의 역할을 할 예정인지 아닌지를 판가름 하기는 힘들지만, 아마도 류경호텔의 존재감을 생각한다면 작은 규모라도 업무지구의 도입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 평양은 작년 초 발표한 청사진을 바탕으로 대규모 공사를 진행 중이다. 이는 단순히 건물의 건설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도로를 정비하고 대규모 도시 축과 광장을 건설하는 것을 포함하는 작업이다.

이제 평양의 이러한 건축 도시적 변화를 단순히 정치적 선전을 위한 것으로 치부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 건축을 정치적인 도구로 활용하는 것은 어느 시대, 어느 정권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그것이 단순히 쇼를 위함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류경호텔 주변의 변화는 이미 평양 도시개발사에 또 다른 획을 긋는 사건이 될 것이다.

그 동안 북한은 'ㅇㅇㅇ거리' 개발이라는 방식으로 주로 살림집이 밀집된 지역을 개발해왔다. 하지만 청사진에서 드러나는 류경호텔 인근의 개발 방식은 최근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미래과학자거리나 려명거리 개발과는 또 다른 맥락을 보여준다.

거리에 면한 고층의 살림집 개발에서 벗어나, 지정된 특정 구역에서 복합적인 개발의 서막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북한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그대로 반영한 물리적, 시각적 변화일 것이고, 또한 이 새로운 개발이 앞으로 더 큰 사회경제적 변화를 촉진시킬 것이다.


seojiba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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