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은 2013년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FA컵 2연패에 성공했고 정규 리그까지 가슴에 품었다. K리그 역사상 시즌 더블은 2013년의 포항이 유일했다. 호불호를 떠나, 외국인 선수 단 한 명 없이 이룬 포항의 2관왕은 대단한 성과였다.
온갖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던 2013년을 생각하면 올해는 초라하다. 황선홍 감독의 마지막 숙원이었던 ACL은 8강에서 멈췄고 FA컵 3연패의 꿈은 16강에서 사라졌다. 토너먼트 대회에서 흐름이 끊기며 정규 리그 역시 탄력을 받지 못했다. 모든 원인이라 말하기는 어려우나, FC서울 탓이 크다.
결국 마지막에 웃은 자는 황선홍 포항 감독이었다. 1년의 기다림에 조급해하지 않고 90분을 마저 참은 인내의 승리였다. © News1 DB |
때문에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졌던 K리그 클래식 37라운드이자 올 시즌 마지막 맞대결은 여러모로 결승전 같았다. 각종 대회를 합쳐 모두 6번을 맞붙어 1승4무1패 호각세의 균형을 깨는 경기였다. 그리고 내년 ACL 진출권이 달린 3위를 가르는 무대였다. 이 승부에서, 결국 포항이 웃었다. 0-0으로 비겼으나 포항이 가져간 것이 훨씬 크다.
경기를 앞둔 비장함은 황선홍 감독이 더 강했다. 황 감독은 스플릿 라운드 시작에 앞서 “솔직히 최용수 감독만 봐도 치가 떨린다. 이기겠다가 아니라 이겨야한다”는 말로 서울과의 대결을 고대했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도 “포항의 2014년은 서울전 결과 때문에 엉킨 측면이 많다. 서로 힘든 상황이지만, 마지막에 다시 맞붙은 게 낫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정황상 전의가 끓어오를 포항이었다. 엉키고 꼬였던 포항의 2014년을 만든 서울을 상대로 빚을 갚을 절호의 기회였다. 이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면 포항은 마지막 라운드 결과에 상관없이 자력 3위를 확정, ACL 진출권을 따낼 수 있었다. 시원한 승리가 간절했을 상황이다. 하지만 1년을 기다린 황선홍 감독은 90분을 참아내는 선택을 했다.
후반 이후 다급한 쪽은 당연히 서울이었다. 서울은 무승부도 큰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포항은 승점 1점이 상당히 큰 포인트였다. 경기 전 '정치적 액션'으로는 화끈한 맞불로 37라운드 한 경기에 방점을 찍을 듯 싶었으나 결국 더 큰 것을 얻고 싶었던 '인내'를 이면에 숨기고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한 경기가 됐다.
노련한 황선홍 감독의 인내와 함께 포항은 승점 1점을 더 추가해 서울과의 승점을 3점차로 유지했다. 3위를 확정한 것은 아니나 상당히 유리해졌다. 오는 30일 수원전에서 무승부만 거둬도 자력으로 ACL에 나갈 수 있다. 설령 패해도 서울과 제주전 결과에 따라 3위가 가능하다. 1년을 기다린 것에 조급해하지 않고 90분을 마저 참았던 황새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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