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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도 배추도 '금값'…수입만 늘리면 해결될까?[팩트프레소]

[서상혁의 팩트프레소] 물가 고공 행진에 "농산물 수입 확대" 목소리
'식량 주권' 훼손 우려…수요 분산시키고 농촌 고령화 문제 풀어

(서울=뉴스1) 서상혁 기자 | 2024-04-29 05:30 송고 | 2024-04-29 08:36 최종수정
편집자주 현대 사회를 일컬어 '인포데믹(infodemic)의 시대'라고 합니다. 한번 잘못된 정보가 퍼지기 시작하면 막기가 어렵습니다.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은 수많은 정보 중 '올바른 정보'를 더 많이, 더 자주 공급하는 것이죠. 뉴스1은 '팩트프레소' 코너를 통해 우리 사회에 떠도는 각종 이슈와 논란 중 '사실'만을 에스프레소처럼 고농축으로 추출해 여러분께 전달하겠습니다. 제보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21일 오후 서울의 한 마트를 찾은 시민이 사과를 구매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 2월 우리나라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 물가 상승률은 6.95%로 OECD 평균인 5.32%를 넘어섰다. 먹거리 물가는 사과·배 등 과일이 주로 견인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사과 가격은 작년보다 88.2% 급등해 통계가 작성된 1980년 1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폭을 보였다. 2024.4.21/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21일 오후 서울의 한 마트를 찾은 시민이 사과를 구매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 2월 우리나라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 물가 상승률은 6.95%로 OECD 평균인 5.32%를 넘어섰다. 먹거리 물가는 사과·배 등 과일이 주로 견인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사과 가격은 작년보다 88.2% 급등해 통계가 작성된 1980년 1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폭을 보였다. 2024.4.21/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사과, 배, 배추 등 각종 농산물엔 '금(金)'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있습니다. 급기야 '다이아(다이아몬드)'를 붙이자는 농담까지 나올 지경입니다. 외식 물가까지 치솟으면서 김밥 한 줄은 어느새 5000원인 시대인데요.

이 때문에 농산물을 적극적으로 수입하자는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과일 중 하나인 사과가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수입이 능사는 아닙니다.
◇수입 늘리면 당장 가격은 안정되겠지만…"국내 생산량 줄어 식량 자급률 하락 불가피"

올해 농산물 가격이 급등한 것은 지난해 이상 기후 때문입니다. 비와 태풍의 영향으로 공급량이 급감했습니다. '공급 부족'이 가격 상승의 원인인 만큼 농산물 수입을 늘리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가격이 내려갑니다. 논리는 간단하죠.

하지만 이는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식량 주권이 훼손될 수 있어서죠. 천천히 짚어보겠습니다.
양배추 농가를 운영하는 가상의 인물 A 씨가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지난해 유독 비가 많이 와 양배추 출하량이 급감했죠. 예전 같았으면 시장에서 가격이라도 높게 받았겠지만, 수입 양배추가 물밀듯이 쏟아지는 지금은 마냥 손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내년도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전문가들은 농산물 수입 규모가 확대될수록 A 씨처럼 농사를 포기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국내 생산량이 줄어들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김종인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는 "수입을 통해 가격을 안정화할 경우 생산자들이 생산을 포기해 국내 생산 기반이 와해할 수 있다. 재배 작물의 전환이 쉽다면 충격이 덜 하겠지만 농가가 심을 수 있는 작물이 제한돼 있으며 고령 농가는 전환이 더욱 어렵다"고 설명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포도입니다. 2004년 자유무역협정(FTA)에 의해 수입이 시작됐는데요, 이로 인해 포도 농지는 2004년 2만 2909헥타르(ha)에서 2022년 1만 4655헥타르로 축소됐습니다. 생산량도 47만 5594톤에서 18만 8771톤으로 절반 이상 줄었죠.

노호영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예관측실장은 "한번 수입 농산물이 들어와 소비되면, 나중에 국산 농산물 생산이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소비자들이 국산을 선택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소비 수요는 여전한데 국내 생산량이 감소하면 어떻게 될까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수입을 더 늘릴 수밖에 없겠죠. 그렇지 않아도 대다수 수입 농산물은 '저관세 혜택'에 힘입어 시장에 값싸게 풀리고 있습니다. 이같은 논리로 수입이 확대될수록 '자급률'이 떨어지게 됩니다.

자급률이 떨어지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국제적인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석유뿐 아니라 밥상 물가까지도 휘청이게 됩니다. 농산물 수입이 늘어난다면 지금 당장은 숨통이 트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의 식량 주권이 훼손될 수 있습니다.

그러잖아도 현재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에는 빨간불이 들어왔습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식품수급표에 따르면 곡류 자급률은 2021년 18.5%로 20%대가 깨졌습니다. 과일은 2021년 74.2%로, 80%대를 유지했던 2000~2010년과 비교하면 많이 하락한 게 사실입니다. 우유의 경우 2003년 81%에서 2021년 45.5%까지 떨어졌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최하위권입니다. 2020년 한국의 곡류 자급률은 23.4%인데 반해, 미국은 72.9%, 영국은 121.5%, 캐나다는 무려 196.1%에 달합니다. 일본(31.1%)과 비교해도 낮습니다.

◇"농산물 수입, 매우 제한적으로"…농촌 활성화 등 공급 측면 구조적 문제 해결 병행해야

전문가들은 수입하더라도 매우 제한적으로 들여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장한 물량으로도 부족한 경우에만 '한시적'으로 수입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수요 분산'입니다. 사과 대신 다른 과일을 소비하게끔 유도하는 것이지요. 노 실장은 "농산물 바우처 지급 등을 통해 상대적으로 공급량이 많은 농산물을 구입하도록 유도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농촌 인구 감소'라는 구조의 문제도 같이 풀어야 합니다. 이상기후가 아니더라도 국내 농산물 가격은 공급량 감소로 인해 우상향 그래프를 그릴 수밖에 없습니다. 고령화 등으로 농촌 인구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죠.

통계청에 따르면 농가인구는 2010년 279만 2564명에서 2023년 202만 5602명으로 줄었습니다. 60대 이상 비중은 45.8%에서 69.4%로 상승했습니다. 이에 따라 경지도 줄었습니다. 2009년 173만 6798헥타르였던 경지는 지난해 151만 2145헥타르로 감소했습니다. 15년 만에 축구장 32만 개 넓이의 경지가 사라진 것이죠.

충북 오송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는 59세 김 모 씨는 "일할 사람이 줄어들면서 생산량도 10년 전에 비해 10~20% 정도 감소했다. 비료 등 생산비가 올라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기도 부담스럽다"고 했습니다.

백승우 전북대 농경제유통학부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게 현재 일부 품목에만 운영 중인 스마트팜 적용 분야를 확대할 필요가 있으며, 청년 농업인도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며 "수요와 공급뿐 아니라 유통·마케팅도 같이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농산물 수입을 찬성하는 시민들 사이에선 "농가에는 안타깝지만, 시장 논리에 의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옵니다.

하지만 먹거리는 시장 논리가 아닌 주권의 문제 연결돼 있습니다. 세계 각국이 국방뿐 아니라 '식량 안보' 지키기에도 주력하는 이유이지요. 시간이 오래 걸릴지언정, 우리의 주권을 지키는 결정이 내려지길 기대합니다.


hyu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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