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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개혁 이렇게]③PA간호사, 의사 대신 진료…'불법' 굴레 벗나

정부, 간호사 업무 보완 지침 시행…의료계 "지침 따라 적용 중"
"PA간호사, 법적 보호장치 마련해야…기피현상 일어날 수도"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2024-03-14 05:00 송고 | 2024-03-14 14:13 최종수정
편집자주 의대증원으로 촉발된 정부와 의료계 갈등의 본질은 비단 의사 수를 몇 명 늘리느냐의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간 의료 현장의 부조리들을 개혁하려는 몇 차례의 시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특정 집단의 반대에 부딪혀 좌초해야 했습니다. 지금이 의료 개혁의 적기라고 말합니다. 지금 또 물러서면 소모적인 갈등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료개혁 과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풀어야 할 지를 짚어봅니다.
전공의 이탈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간호사 업무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8일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2024.3.8/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전공의 이탈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간호사 업무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8일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2024.3.8/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전공의 집단사직이 4주째 이어지자 정부는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의사 업무의 일부를 진료지원(PA) 간호사가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현재는 시범사업으로 진행 중이지만 정부는 내친김에 법제화할 태세다. 일선 의료현장에서는 간호사의 업무범위 확대뿐 아니라, 수가 인상, 간호법 제정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1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복지부는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지난달 27일 간호사들의 업무를 확대하는 내용의 시범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8일부터는 시범사업 보완지침을 마련해 간호사들에게 심전도·초음파 검사, 심폐소생술, 응급약물 투여 등의 일부 의료행위를 허용했다.
간호사를 숙련도와 자격에 따라 전문간호사, 전담간호사, 일반간호사로 구분해 업무 범위를 설정해 놓았다. 전문간호사와 전담간호사는 위임된 검사, 약물 처방을 할 수 있고, 진료기록, 진단서, 전원 의뢰서 등의 초안을 작성할 수 있다. 또 그동안 의사의 업무를 대신하면서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 있었던 PA 간호사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지침을 마련했다.

지침에 따르면 간호사의 업무범위는 각 의료기관장(병원장)이 간호부서장과 협의 후 결정해야 한다. 의료사고 시 최종 법적 책임은 의료기관장이 진다.

빅5를 비롯한 대형병원에서는 간호사 업무범위 확대 지침을 의료현장에 적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현장에 적용이 가능한지 논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이번 지침으로 인해 사실상 간호사에게도 의사에게만 허용된 '진료'를 허용해 의료공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의료법 제2조에는 간호사의 업무를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규정해 놓았다. 이 때문에 간호사들은 의사의 업무를 대신 수행하면서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수술실에서 PA간호사로 근무하는 김모씨는 "이번 시범사업을 계기로 PA의 업무범위와 역할이 분명해진 만큼 법적다툼과 수가 등에 대한 논쟁이 적어질 것"이라며 "PA의 질 관리를 위해 교육체계도 마련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지침이 당장 현장에서 잘 적용될지를 두고 우려도 있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이번 간호사 업무 확대 등으로 인한 법적 책임 미비, 무급 휴가 강요 등으로 접수된 피해사례는 총 229건에 달한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김 모 씨(31)는 "의사가 하던 업무를 간호사가 맡게 되었지만, (의료진 이탈로) 일을 가르쳐주거나 감독할 사람이 없어 의료사고가 날까 불안하다"며 "의사가 맡던 업무를 간호사와 의사가 나눠 맡아야 하기 때문에, 업무를 얼마나 어떻게 나눠야 할지에 대한 혼란도 크다"고 했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이 모 씨(31)도 "동맥혈검사(ABGA), 동맥관삽입술(A-line)은 중환자실, 응급실에서 간호사가 의사 대신 비일비재하게 해왔다"며 "이를 단순히 법제화했다고 해서 의료공백을 메우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PA간호사들이 심폐소생술, 응급약물투여 등 위험한 행위를 했을 때 법적으로 보호해줄 방안과 행위 당 수가를 보존해줘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의사들의) 필수의료과 기피현상처럼 PA간호사를 지원하는 간호사들이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시범사업이 의사의 업무를 간호사에 전가한 측면이 있다"면서 "간호사 업무 범위를 의료기관장과 간호부서가 협의해 설정하도록 재량권을 준 것은 현장 혼선을 초래할 수 있으며, 의료사고 발생 시 간호사들이 보호받을 장치가 부족하다"고 했다.

의료공백이 장기화될수록 간호법 제정이 재점화될 가능성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일 중대본 회의에서 "숙련된 진료지원 간호사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 근본적인 의료전달 개편을 함께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간호사들은 간호법을 제정해 간호사의 업무범위와 책임소재가 명확히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한간호협회는 "정부의 '간호인력 활용 의료체계 개편'에 맞춰 논란의 여지를 없앤 간호법이 재추진되어야 한다"며 "지난해 추진되었던 간호법은 일부 이익단체의 '의료계를 분열시키는 악법'이라는 프레임 속에 결국 좌초했다"고 말했다.

간호법 제정안은 지난해 4월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제정안을 두고 의사단체에서는 간호사의 단독 개원을 허용할 수 있다며 반대했고, 임상병리사 등 다른 보건직군에서는 업무 범위를 침해한다며 반대했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은 같은해 5월 "유관 직역간의 과도한 갈등, 사회적 갈등이 직역간 협의와 국회의 충분한 숙의 과정에서 해소되지 못했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rn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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