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검찰 "법치를 무너뜨린 날…법안, 부동산 계약만도 못하게 취급하나"

70년 형사사법체계 붕괴 우려…"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격앙
검찰총장의 국회 수사 보고 "검찰 중립성 어디갔나" 비판 쇄도

(서울=뉴스1) 장은지 기자, 정혜민 기자 | 2022-04-27 10:59 송고 | 2022-04-27 14:28 최종수정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2022.4.18/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2022.4.18/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민주주의의 타락이자 종말, 법치를 무너뜨린 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못 박은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자 검찰이 폭발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본회의까지 강행 처리한다는 소식에 전례없이 격앙된 분위기다. 전과는 차원이 다른 위기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27일 새벽 민주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단 6분만에 개정안을 강행처리하자 검찰은 70년 역사에 전례없는 치욕의 날이라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고검장급 간부들이 사실상 전원 사의를 표명한 상황에서 일선 검사장들도 줄사표 대열에 동참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회 법사위는 이날 0시 11분께 상정 6분만에 검수완박 법안인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기립표결로 통과시켰다. 사실상 국회 본회의만 남겨놓은 상황이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중재에 나서지 않는다면 늦어도 29일 국회 본회의 통과 가능성이 높다.

한 검사장급 인사는 "정말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보여줬다"며 "검찰 수사권을 박탈해 국민이 얻는 이익이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또한 "국회도 앞으로 동일성이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만 법안을 표결하라"고 꼬집었다.

검찰은 단지 검찰 수사권 박탈로 인한 위상이나 권한 축소에 대한 불만 차원이 아니라, 70년을 이어온 형사사법체계의 붕괴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소위 '검란'의 주축이었던 특수부 검사들의 반발이 주를 이뤘던 전과는 다른 국면이다. 이번엔 검찰 조직의 다수를 차지하는 형사부와 공안부 검사들이 전면에 나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검찰의 직접수사뿐 아니라 보완수사까지 사실상 무력화하는 법안이라 당장 일반 국민들이 피해자가 되는 범죄 수사가 크게 제한되기 때문이다.
곽계령 대구지검 형사3부 검사는 게시판에 글을 올려 "수사와 기소의 분리가 원칙이라면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도 해당 입법 의결에 참석하면 안된다"고 비판했다. 곽 검사는 "수사한 검사가 기소할 것이 뻔해 사건 처리(기소)를 못하게 하는 논리라면, 입법 발의에 동의한 의원들은 당연히 해당 의결을 동의할 것으로 보이는데 왜 참석해 의결권을 행사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번 검수완박 입법에 동의한 의원들은 모두 의결에 불참하고 나머지 의원들이 해당 입법의 정당성을 살펴보면 되겠다"고 꼬집었다.

다른 검사들도 "무슨 천벌을 받으려고 이러느냐", "이들의 행태는 반드시 심판받고 평가받을 것", "5천만 국민의 권익과 직결된 법안을 1건의 부동산 계약만도 못하게 취급하는 것이 분통 터진다"고 반발했다.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공동취재) 2022.4.26/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공동취재) 2022.4.26/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검찰청법 개정안에 신설된 '24조4항'은 "검찰총장은 부패범죄·경제범죄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범죄에 대한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부의 직제 및 근무하고 있는 소속 검사와 공무원, 파견 내역 등 현황을 분기별로 국회에 보고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 내용은 당초 여야가 합의한 중재안에는 없던 내용인데 민주당이 막판에 밀어넣었다. 이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 현직 차장검사는 "권력비리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들의 현황을 국회에 보고하라니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은 물론 삼권분립까지 훼손해 앞으로 계속 문제가 될 것"이라며 "헌법에 위반되는 과잉입법"이라고 지적했다.

일선 검사들도 내부 게시판 글을 통해 "총장이 직접 수사 부서 현황을 국회에 보고한다니 신세계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필요하다고 하더니 결국 국회에 보고하라 하느냐. 앞뒤가 맞느냐", "민주당이 밀어붙인 개정안은 마치 원수에게 복수하는 듯한 내용"이라고 반발했다.

선거 범죄 수사권 박탈 문제도 여전히 남았다.

"정치인만 발 뻗고 자는 법안"이라는 반대 여론에 개정안에는 선 거범죄에 대한 수사권 폐지를 연말까지 유예하도록 수정했다. 오는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 공소시효(6개월)가 끝나는 연말까지 선거범죄 수사권을 검찰에 존치하자는 취지다. 다만 이 역시 국회의원들은 대상이 아니어서 '국회 방탄법'이다.

한 검찰 간부는 "선거범죄 수사권 박탈을 유예했다고 해도 이번 지방선거까지만 적용되는 것이니 국회의원들은 싹 다 빠지는 것"이라며 "명백한 국회 방탄법"이라고 비판했다.

대검은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한해 평균 4000~5000여건의 지방선거 사건이 부실 수사돼 불기소, 무죄가 속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대검 공공수사부는 이날 언론 브리핑을 열고 "지방선거는 전국적으로 사건 수가 4000∼5000건에 이를 정도로 현저히 많아 어느 기관이든 단독으로 수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수사 뿐 아니라 기소와 공소유지에서도 현장의 대혼란이 불가피해졌다. 사건을 수사한 검사가 기소를 못하게 막으면서 '대리 기소', '차명 기소'라는 비판도 나온다. 재경지검 한 검사는 "수사 검사 입김대로 기소할 수 있고, 또 수사 상황을 모르는 검사가 기소를 맡으면 사건 법리를 새로 다시 검토해야 하는 혼란과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며 "수사한 검사와 다른 검사가 기소하고 공판에는 수사 검사가 들어가면 공판 현장에서 변호인들이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을 하나하나 100% 다투기 시작할 텐데 공소유지 현장에서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검찰뿐 아니라 법조계가 한목소리로 반발하고 있지만 검찰이 민주당을 막아설 카드는 거의 없다. 국회 본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는 만큼 '줄사표' 외엔 항의 표시 방법도 남지 않았다. 한 현직 부장검사는 "어처구니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없다는 현실에 더 허탈하다"며 "후배들을 무슨 낯으로 보겠느냐"고 했다.


seeit@news1.kr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