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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도심 골목에서 나체로 발견된 노인의 숨겨진 이야기

딸 정신질환, 아들 지적장애…월 200만원 생계비
"어머니 병원으로 옮기자"는 권유 완강히 반대…결국 병원서 사망

(전주=뉴스1) 이지선 기자 | 2021-12-10 17:22 송고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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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후 8시30분께 전북 전주시 완산구 서신동의 한 다세대주택 골목. 70대 여성이 옷도 걸치지 않은 채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 목격됐다.

이 모습을 본 한 주민은 "나체 상태의 여성이 밖에 앉아있다"며 112에 신고했다.
발견 당시 저체온 증세를 보인 이 여성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소방대원 등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

도대체 어쩌다 이 여성은 한겨울 주택가 골목길에서 저체온증이 올 때까지 추위에 떨어야 했을까.

3층짜리 다세대 주택이 모여있는 이 골목에 숨진 어머니와 딸인 A씨(47) 가족이 이사를 온 건 1년 반 전이었다. A씨와 거동이 불편한 노모, 지적장애가 있는 오빠 등 3명이 함께였다.
10일 전주시 완산구 서신동주민센터 등에 따르면 이 가정에 지원되는 돈은 세 사람의 주거비와 기초수급생활비, 장애연금 등을 모두 합해 매달 200여만원이었다.

이사온 뒤로 큰 소동이 없었던 이들 가정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난 건 지난 9~10월께부터다. 이웃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큰 소리가 났다고 했다.

A씨의 어머니는 거동을 할 수 없어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고, 심장과 위장, 고혈압, 갑상선, 정신질환 약을 복용하는 등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다.

이웃들의 민원과 신고를 통해 A씨 가정의 이야기를 알고 있던 주민센터 직원들은 A씨를 만나 어머니를 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A씨는 "내가 모시겠다"며 매번 강하게 반대했다.

그러는동안 어머니 건강 상태는 점점 악화돼 갔다. 최근들어 체력도 부쩍 떨어졌다.

이런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국가가 지원하는 요양보호사가 매일 이 집을 찾았다. 요양보호사는 어머니 목욕과 식사, 집안 청소 등을 도왔다.

하지만 정신질환으로 인해 오랜 시간동안 약을 복용해온 A씨는 어느날은 온전한 정신상태로 타인과 소통이 가능했지만, 또 어느날은 요양보호사에게 폭언을 쏟아내며 "마음에 들지 않으니 관두라"고 막무가내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때문에 A씨 집에 오는 요양보호사는 수시로 바뀌었다. 지난 9일은 요양보호사가 그만둔 뒤 새로운 요양보호사가 배정되지 않았던 날이었다.

거동을 할 수 없는 어머니는 이날도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다. 오후 7시께 A씨는 "어머니가 씻지 않아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집 밖으로 내쫓았다. 옷은 커녕 속옷도 입지 못한 상태였다.

어머니는 1층에 위치한 집 현관문 밖 차고에 있던 의자에 앉은채로 1시간30분 가량을 하염없이 떨었다.

경찰이 발견했을 당시 어머니는 조금씩 말도 할 수 있는 상태였지만, 파랗게 질려있었다. 결국 어머니는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지난 10월부터 집주인과 이웃들의 신고에 따라 집중적인 관리가 들어갔었다"며 "하지만 오빠는 어린아이 수준의 지능이고, 딸도 대화가 어려운 수준인만큼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고 판단해 11월께 구청에 '고난도 사례관리'를 올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입을 하기 위해 어머니에 대한 입원 권유 등 여러차례 노력을 했지만 딸의  반대가 워낙 완강해 강제입원도 어려웠다"며 "이런 상황에서 너무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존속학대치사 혐의로 A씨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A씨는 본인의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정확한 사인을 조사하는 한편,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letswin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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