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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남교사 할당제'가 '볼드모트'인가

2020년 전국 초등학교 교사 77.1%가 여성
학교 현장에선 '남교사 기근'에 고충 토로

(서울=뉴스1) 장지훈 기자 | 2021-02-04 10:00 송고 | 2021-02-04 16:34 최종수정
서울 동작구 서울공업고등학교에서 지난 1월13일 진행된 2021학년도 공립 유·초·특수학교(유 ·초) 임용 2차시험에서 응시생들이 시험장으로 향하고 있다. 2021.1.13/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 동작구 서울공업고등학교에서 지난 1월13일 진행된 2021학년도 공립 유·초·특수학교(유 ·초) 임용 2차시험에서 응시생들이 시험장으로 향하고 있다. 2021.1.13/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성경만큼이나 많이 읽혔다는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에는 유명한 악당이 등장한다. '볼드모트'라는 인물인데 얼마나 악독한지 웬만큼 담이 크지 않고서는 그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는 일조차 두려워한다. 없는 사람 취급하고 속으로만 떠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국 시·도교육청이 2021학년도 공립 유·초 교사임용후보자 선정경쟁시험(임용시험) 최종합격자를 최근 발표한 뒤로 교육계 관계자로부터 "남교사가 너무 적어 큰일"이라는 이야기를 자꾸 듣다 보니 볼드모트가 떠올랐다.
"교원 성비 불균형을 해소할 대책이 시급하다"는데 남교사 할당제를 논의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기함을 하는 일이 많아서다. 도입 논의가 필요하다면서도 여성계가 들으면 큰일 날 일이라며 말끝을 흐리고 만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서울 공립초 임용시험 합격자 303명 중 남성은 40명(13.2%)에 그친다. 경기(18.6%) 대전(15.0%) 세종(11.1%) 광주(10.0%) 등 다른 지역 상황도 비슷하다.

교육통계연보를 보면 교직의 여성화는 퍽 심각하다. 1980년만 해도 전국 여교사 비율은 고등학교 17.1%, 중학교 32.8%, 초등학교 36.8%에 불과했지만 2020년에는 고등학교 54.8%, 중학교 70.5%, 초등학교 77.1% 등으로 급상승했다.
남교사 할당제는 10년도 전에 추진됐다가 여성계의 극렬한 반발을 부른 끝에 좌초된 바 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2007년 교육부에 도입을 건의했지만 근거가 미약하다는 이유로 반려됐다. 서울시교육청이 이듬해 교육부에 재차 건의했지만 남교사가 적어 교육 현장에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실증 연구가 없고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이후로 남교사 할당제 논의는 쏙 들어가 좀처럼 수면 위로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남교사는 갈수록 주는데도 말이다. 오죽하면 초등학교 6년 내내 여성 담임만 만나고 졸업한 학생이 부지기수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서울은 지난해 기준 전체 초등학교 교사의 87.0%가 여성이라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교육행정학회 교육행정학연구 학회지에 실린 '교사와 학생의 성별일치에 관한 실증적 분석' 연구에 따르면 초등학교 4학년 2939명이 6학년이 될 때까지 추적 분석한 결과 1365명(46.4%)이 4~6학년 동안 한 번도 남자 담임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학교에 남교사가 적은 게 과연 '문제'인지는 논쟁거리다. 경쟁을 통해 우수한 교사를 확보한다는 취지를 고려하면 남교사 할당제가 교사의 질적 하락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미국·독일·영국 등 선진국에서도 여교사 비율이 80%를 상회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문제 될 게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역차별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크다.

다만 학교 현장에서 남교사 기근을 걱정하는 앓는 소리가 계속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적절한 성역할 모델을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을 우려하는 교사가 많다. 교육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남교사와 여교사가 함께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실적으로 선천적인 성별에 따른 특성이 다른데도 남교사가 부족하다 보니 업무 분장이 쉽지 않다는 토로도 나온다. 여성이라고 못해낼 일은 없지만 남성이어서 수월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체육수업과 생활지도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다른 공무원과의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2003년부터 행정·외무·기술고등고시·7급·9급 등 공무원시험에서는 어느 한쪽의 성별이 전체 합격자의 30% 미만인 경우 합격선 범위 안에서 추가 합격시키는 '양성평등채용목표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교사는 적용되지 않아서다.  

여기에 2000년대부터 교대마다 전체 입학생의 25~40%를 남학생으로 채우는 '남교대생 할당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임용시험에서는 이런 제도가 없어 출구가 막혔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대를 나와 교사가 되지 못하면 무엇으로 먹고사느냐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이 2008년 3월 공개한 '교원의 양성균형 임용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학부모의 80.0%, 교사의 74.0%가 남교사 할당제에 찬성했다. 여교사 찬성 비율도 69.2%나 됐다. 13년 전 연구이긴 하나 한 교원단체 관계자는 "남교사가 더 준 지금 조사하면 찬성 비율이 더 높을 것"이라고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남교사 할당제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체육수업이나 생활지도에서 남교사 부족에 따른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면서도 "민감한 문제라 논의하기 이르다"고 말했다.

한 시·도교육청 관계자는 "아직도 사회 전체로는 '유리천장'이 높다는 말이 나오는데 누가 총대를 메고 남교사를 더 뽑자고 하겠느냐"고 했다.

남교사 할당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남교사가 적은 게 문제이긴 한 것인지, 문제라면 어떻게 개선할지 꺼내 놓고 논의는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일수록 더 치열하게 논쟁해야 하는 데도 발만 구르는 교육계를 보면 남교사 할당제가 정말 볼드모트가 돼 버린 것 같다.


hunh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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