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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팅게임 오버워치 자동조준핵 '악성프로그램' 아니다…왜?

파기환송한 대법 "일반 조준사격과 동일한 경로로 작업수행"
최초 사격 없이 클릭으로 헤드샷 '에임핵'은 악성 인정 여지

(서울=뉴스1) 손인해 기자 | 2020-10-16 06:45 송고 | 2020-10-16 09:57 최종수정
오버워치. © 뉴스1
오버워치. © 뉴스1

게임 상대방 캐릭터를 자동 조준해주는 프로그램은 정보통신망법이 금지하는 '악성 프로그램'에 해당할까. 

대법원이 온라인 슈팅게임 '오버워치'에서 공정성을 해치는 것으로 악명 높았던 이른바 '자동조준 프로그램(에임핵)'은 악성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프로그램을 해킹해 인위적으로 캐릭터의 능력치를 끌어올리는 '핵'이 게임 유저들 사이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상황에서 법원이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주목된다. 

◇ "자동조준핵, 악성 프로그램 아니다" 2심 뒤집은 대법

15일 법원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이날 정보통신망법 및 게임산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모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박씨는 2016년 7월부터 1년간 오버워치에서 에임핵을 3612차례 판매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씨는 에임핵을 팔아 벌어들인 수익은 총 1억9923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날 쟁점은 정보통신망법 위반 여부였다. 앞서 1·2심 모두 게임물의 정상적 운영을 방해할 목적으로 사업자가 제공·승인하지 않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포한 혐의(게임산업법 위반)에 대해선 유죄로 인정한 반면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판단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정보통신망법 제48조2항은 정보통신시스템과 데이터 또는 프로그램을 훼손·멸실·변경·위조하거나 그 운용을 방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악성 프로그램)을 전달 또는 유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1심은 이씨가 판매한 에임핵이 "메모리나 게임 코드에 특별한 손상을 가하는 것이 아니어서 게임의 데이터나 프로그램을 훼손·멸실·변경·위조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한 반면 2심은 이를 뒤집었다. 

에임핵을 이용하면 게임 운용자가 전혀 예정하지 않았던 외부 프로그램에 의한 자동 탐색과 자동 조준이 이뤄지는데, 이는 게임이 예정하고 있던 정상적 게임의 수행방식과 이용자의 수행능력에 따른 등급부여 시스템을 해치는 것이란 취지였다. 

◇ 클릭만으로 헤드샷 날리는 에임핵이라면 달라졌을까?

대법원은 1심의 논거 상당 부분을 받아들이며 무죄 취지의 이유 3가지를 내세웠다. 

첫째, 에임핵이 이용자 본인의 의사에 따라 해당 이용자의 컴퓨터에 설치돼 그 컴퓨터 내에서만 실행되고 정보통신시스템이나 게임 데이터 또는 프로그램 자체를 변경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에임핵이 정보통신 시스템이 예정한 대로 작동하는 범위 내에서 상대방 캐릭터에 대한 조준과 사격을 더욱 쉽게 해줄 뿐이고, 에임핵을 실행하더라도 일반 이용자가 직접 상대방 캐릭터를 조준해 사격하는 것과 동일한 경로와 방법으로 작업이 수행된다는 점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에임핵이 서버를 점거함으로써 다른 이용자의 서버 접속 시간을 지연시키거나 서버 접속을 어렵게 만들고 서버에 대량의 네트워크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등 정보통신시스템 기능 수행에 장애를 일으킨다고 볼 증거도 없다고 대법원은 밝혔다. 

업계에선 그중 대법원이 밝힌 두번째 근거에 주목한다. 

이번 사건에서 에임핵은 최초 사격을 성공한 후에야 상대방 캐릭터를 자동조준해 상대를 패배시킬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법원이 일정 부분 '플레이 요소'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취지다. 

박씨가 판매한 에임핵은 처음 상대방 캐릭터를 사격하는 데 성공하면 캐릭터 근처에 나타나는 붉은 색 '체력 바'의 이미지를 분석해 게임 화면에서 동일한 이미지를 인식, 해당 좌표로 마우스 커서를 이동시키는 작업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도록 프로그램을 설계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한두 차례 저격해야 발동되는 방식이 아닌 아무런 조작 없이 마우스만 클릭해도 상대방 캐릭터의 헤드샷을 날리는 방식의 보다 강도 높은 에임핵의 경우엔 정보통신망법상 악성 프로그램으로 인정될 여지가 있는 셈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법원이 내세운 첫번째나 세번째 근거는 정보통신망법상 랜섬이나 디도스처럼 정보 탈취나 위변조에 해당하는 것으로 다른 에임핵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며 "두번째의 경우 더 손쉽게 상대방 캐릭터를 제압하는 에임핵의 경우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 역시 향후 '핵' 유포자에 대한 정보통신망법상 처벌 가능성이 완전히 닫힌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의 의의로 "게임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무조건 정보통신망법이 금지하는 악성프로그램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 강남구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News1 구윤성 기자

◇ 핵 판매자 검거에 유통망 단속도…AI에 학습시켜 차단도

게임업계는 게임 유저들에게 박탈감을 주고 게임 내 경제 생태계를 교란하는 핵 근절에 나서고 있다.

넥슨의 1인칭 슈팅게임 '서든어택'의 경우 지난해 13만9376명의 불법 프로그램 사용자를 제재했다. 불법 프로그램 유통망도 집중 관리해 같은해 1515개 사이트를 차단했고 불법 홍보영상 1039개를 삭제했다. 올해 6월 중순까진 불법 프로그램 판매자 5명을 검거, 이용자 11만820명을 단속했다.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핵을 잡아내기도 한다. 넥슨의 AI 조직인 인텔리전스랩스가 개발한 자체 분석 플랫폼인 넥슨애널리틱스를 이용해 서든어택에서 벽을 투시하는 종류의 '월핵'을 사용하는 유저의 화면과 정상 유저의 화면을 AI에게 학습시켜 이를 차단하는 식이다.

펍지 주식회사가 개발하고 크래프톤에서 유통하는 서바이벌 슈터 게임 '배틀그라운드'도 지난 6월부터 게임 로직 상 판별이 가능한 종류의 불법 프로그램이 확인되는 경우 실시간으로 경기에서 추방되도록 기능을 변경하고 해당 사용자가 즉시 제재될 수 있도록 시스템 보완 작업을 하고 있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핵이 계속해서 변형된 형태로 발전해 나오기 때문에 이번 대법 판결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 쉽게 예상하긴 어렵다"면서도 "게임 공정성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최대한 제재하는 방향으로 내부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s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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