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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인생 최고의 경험, 옥토버페스트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2020-08-27 12:00 송고 | 2020-08-27 14:14 최종수정
슈파텐브로이 천막 내부 모습. 조성관 작가
슈파텐브로이 천막 내부 모습. 조성관 작가

내가 글감을 찾는 방법의 하나는 지난 수첩을 한 장씩 넘기면서 수첩에 기록된 메모를 꼼꼼히 살피는 것이다. 메모는 날짜별로 그날 책이나 신문에서 읽었던 핵심 골자나 사람들과 만남에서 얻은 지식이나 지혜를 적어놓은 것들이다.

메모하지 않으면 모든 건 사라진다. 명민하지 못한 내 경우는 더 그렇다. 총명불여둔필(聰明不如鈍筆)이라 했던가. 내가 이런 것까지 적어놓았구나 싶은 것들도 간간이 보인다. 이런 메모들을 다시 읽으며 행간의 의미를 들여다보다 보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스파크가 튈 때가 있다.
비말과 떼창의 향연!  
 
2018년 수첩에서 10월을 펼쳤는데 '옥토버페스트'가 튀어나왔다. 그 옆에는 이런 메모도 보였다. 'Our Crew, Our October, Octoberman' 이것은 미국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를 보면서 메모한 것이다.  

왜 '옥토버페스트'라고 메모했을까. 끝내 그 까닭을 찾아내진 못했지만 한 가지 생각이 팍 스쳤다.

2020년 옥토버페스트는 물 건너갔구나?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는 세계적인 맥주 축제다. 옥토버페스트는 브라질의 리우카니발과 함께 세계 3대 축제에 들어간다.

옥토버페스트는, 코로나 시대의 어법을 적용하면,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비말(飛沫)의 향연이다. 목이 꺾일 정도로 마시고 목이 터져라 소리치고 노래 부른다. 옥토버페스트는 떼창의 해방구다. 부산의 사직야구장을 세상에서 제일 큰 '야외 노래방'이라고 한다. 옥토버페스트는 세상에서 가장 큰 '실내 노래방'이다.  

2020 옥토버페스트 취소! 어쩌다 한번 가는 외국인이야 아쉽다 정도로 끝나겠지만 독일인에게는 이건 보통 상실이 아니다. 옥토버페스트를 위해 최소 9개월 전부터 준비하는데. 독일인에게 옥토버페스트는 누구나 기다리는 중요한 축제다.
옥토버페스트 축제장의 전경. 조성관 작가
옥토버페스트 축제장의 전경. 조성관 작가
옥토버페스트는 결혼식 피로연에서 기원한다. 1810년 10월 12일 바이에른 왕국의 황태자 루트비히와 작센 공국의 테레제 공주의 결혼식이 열렸다. 왕실은 뒤풀이로 결혼 당일부터 10월17일까지 성대한 축하연과 함께 민속경기를 열었다. 피날레로 기획한 게 경마였다. 이 경마 이벤트에 뮌헨 시민들이 열광했다.

왕실은 1년 뒤에 같은 날, 같은 장소에 경마 경기를 열었다. 이후 매년 경마 경기가 열렸다. 여기에 지역의 소규모 맥주 축제가 자연스럽게 결합하면서 1819년부터 옥토버페스트라는 이름이 붙었다.

1810년에 시작된 옥토버페스트는 21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런 맥주 축제가 지금까지 열리지 않은 건 24회뿐이다. 콜레라 창궐,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프로이센-프랑스전쟁, 1차세계대전, 2차세계대전 기간 중이었다.  

옥토버페스트는 9월 중순부터 10월 첫 주까지 뮌헨의 테레지엔비제에서 펼쳐진다. 옥토버페스트 기간에 독일 중남부에서 기차를 타면 민속의상을 입은 성인남녀를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고향의 전통의상을 입고 옥토버페스트에 참가하러 가거나 참가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다. 옥토버페스트는 독일 전통의상의 전시장이다. 옥토버페스트 기간에는 뮌헨 시내의 호텔 방값이 치솟는다.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낭패를 당한다.
고향의 전통의상을 입고서 축제를 즐기는 젊은이들. 조성관 작가
고향의 전통의상을 입고서 축제를 즐기는 젊은이들. 조성관 작가
이 축제를 즐기러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옥토버페스트의 참가자들은 대부분 독일인이다. 외국인들은 10~20% 정도다. 약 20일 정도의 축제 기간 평균 600만 명 이상이 축제장을 찾는다고 한다.  

축제가 펼쳐지는 공원 주변에는 경계가 삼엄하다. 정문의 경찰들은 작은 핸드백까지 샅샅이 살핀다. 경찰은 폭발물 탐지견을 동원해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테러리스트들의 침입을 막는다.

나는 2017년 옥토버페스트 마지막 날을 가족과 경험했다. 뮌헨시가 선정한 파울라너, 아우구스티네르브로이, 뢰벤브로이, 슈파텐브로이 등 6대 맥주 회사들은 도수와 분위기가 다른 특색 있는 천막들을 2~3개씩 설치해 손님들을 불러 모은다.
전통의상을 입고 즐거워하는 한 커플. 조성관 작가
전통의상을 입고 즐거워하는 한 커플. 조성관 작가
나는 10여 개의 천막을 둘러보았다. 자리 예약을 하지 않아 적당한 자리를 잡기 위해서였다. 맥주 브랜드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첫 번째 천막에 들어갔을 때 입이 딱 벌어졌다. 수천 명이 닭장의 닭들처럼 다닥다닥 붙어 맥주를 마시며 왁자하게 떠들고 있었다. 맥주 브랜드가 유명할수록 대체로 천막도 크다. 어떤 천막은 길이가 축구경기장만 했다. 한 텐트에 1만명까지 입장한다는 말은 공연한 말이 아니었다.

천막 크기는 맥주 회사의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내부의 구성은 대동소이하다. 천막은 1층과 2층이다. 천막 중앙부에 대형 무대가 설치된 것이 보통이다. 어떤 천막은 공연무대를 2층에 설치하기도 했다. 로열석은 여느 공연장처럼 무대 바로 앞이다. 가수들의 표정과 춤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가 있다. 1층 무대 주변의 로열석은 대부분 예약으로 자리가 매진된다. 로열석의 경우 기본 메뉴가 정해져 있다.     
레벤브로이 천막 전경. 조성관 작가
레벤브로이 천막 전경. 조성관 작가
'스위트 캐롤라인' 부를 때 떼창 폭발   
 
나는 이 텐트 저 텐트를 전전하다 뢰벤브로이 텐트를 선택했다. 맥주 맛은 잘 모르지만 브랜드가 낯익고 분위기도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1층은 문 입구에서부터 꽉 찼다. 2층으로 올라가 무대가 잘 보이는 곳에 세 사람이 겨우 자리를 잡았다. 이미 불콰해진 옆 테이블의 바이에른 사람들과 금방 친구가 되었다.  

밴드가 연주하는 노래는 대부분 독일 노래다. 외국인들은 거의 알지 못하는 노래들이다. 신기한 것은 처음 들어보는 노래들이고 가사도 알 턱이 없지만 신나는 데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밴드는 간간이 올드 팝송을 배치한다. 이때가 되면 독일인과 외국인이 일제히 떼창을 부른다. 존 덴버의 '테이크 미 홈, 컨트리 로즈'(Take Me Home, Country Roads), 닐 다이아몬드의 '스위트 캐롤라인'(Sweet Caroline), CCR의 '프라우드 매리'(Proud Mary) 등. 떼창이 최고조에 이르는 곡은 가수가 '스위트 캐롤라인'을 부를 때다.

"~~~ Hands, touching hands / Reaching out, touching me, touching you / Sweet Caroline oh, oh, oh / Good times never seemed so good ~~~"

음식도 아주 훌륭하다. 전기구이통닭과 소시지가 가장 인기가 높은 메뉴다. 전기구이 통닭은 내가 여태껏 먹었던 것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민속 의상을 입은 독일 여성들이 1000cc 맥주잔을 한 손에 세 개씩 번쩍 번쩍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습에서 동양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념품을 파는 사람들도 가끔 지나다닌다. 스위치를 누르면 통닭 모양의 인형이 음악과 함께 뒷다리를 부딪히는 통닭모자도 하나 기념으로 샀다.(이 모자는 작년에 우리나라에서도 유행이 되었다.)
옥토버페스트에는 맥주 축제 외에도 다양한 놀이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조성관 작가
옥토버페스트에는 맥주 축제 외에도 다양한 놀이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조성관 작가
내가 가족들과 뢰벤브로이 텐트에서 놀고 있을 때 페친(페이스북 친구)인 대학동기가 옥토버페스트에 와있는 것을 페북에서 확인했다. 그는 마슈탈 텐트에서 지인들과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음악은 텐트의 밴드마다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그는 "마슈탈 텐트에서는 테크노 디스코 음악이 많이 나왔는데, 춤을 추느라 앉아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내가 뢰벤브로이 텐트에서 머문 시간은 두 시간 반 정도. 나는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목이 쉬었다. 나는 살면서 옥토버페스트에서처럼 신나고 즐거운 축제를 경험해본 일이 없다.(리우카니발은 경험하지 못해 비교할 수는 없지만) 맥주와 음악 앞에서 언어는 심리적 허들이 되지 못했다. 텐트 안의 모든 사람은 맥주와 음악으로 하나가 되었다. 지금까지도 그때의 감흥이 생생하다. 내 인생에서 이와 비슷한 경험은 '2002 한일월드컵' 때가 유일했던 것 같다. 그때 광화문 거리와 홍대 앞 삼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환호하고 떼창을 했던 기억!  

옥토버페스트에서 탈진할 정도로 즐기고 나니 어떤 에너지가 내면의 깊은 곳에서 뽀글뽀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축제의 기억이 오랜 세월 축적되고, 이런 축적된 경험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때 그런 사회는 뭔가 달라도 다를 것이다.


auth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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